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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지고, 별이 태어나다

아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엄마

by 라이테 Mar 0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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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집안에는 한 세기를 사신 두 분이 계십니다. 정확히 한 세기(100년)를 넘게 사셨습니다. 한 분은 1924년생 큰고모님이고 한 분은 1925년생 큰이모님입니다.


큰고모님은 제가 태어났던 탑천이 흐르는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셨어요. 국민학교 소풍지로 단골이었던 **산으로 난 길을 지나 경사가 50도쯤 되는 가파른 내리막길이 끝나는 곳에 큰고모님 댁이 있었어요. 그 오솔길이 조금 무섭다 싶으면 멀더라도 돌아가는 길이 한 개 더 있기는 했지요. **산은 청와대까지 진출한 화강암으로 유명했는데 그 화강암 채석장이 큰고모님 동네에 있었어요.


바쁘신 부모님의 보살핌이 헐렁해지고 심심할땐 어디든 갈 곳을 궁리하곤 했던 어린 소녀에게 조금 멀다 싶어도 갔다 오면 개꿀인 곳이 두 군데 있었지요. 아버지 매거진에 나오는 농방이모네와 큰고모님 댁이었어요. 거긴 함께 놀만한 또래가 있었고 어른이 늘 댁에 계셔서 간식을 챙겨주셨기 때문이에요.

(잠깐, 개꿀은 비속어가 아니에요. 붕어만세 작가님 사자성어에서 알게 된 어엿한 명사로 쓰이는 단어입니다. )


렇지요. 라이테는 어릴 때부터 먹성이 좋았답니다. 육해공특수전 가리는 게 거의 없어요. 한정된 간식으로 여러 형제가 나눠먹으려면 뭐든 닥치는 대로 먹게 되어 있어요. 그렇다고 오빠가 구워 먹었던 음지나 개구리 뒷다리, 메뚜기는 먹어 본 적 없고요.


어린 저는 큰 고모님 댁으로 동생을 데리고 가끔 놀러 갔어요. 서너 살 아래 5촌 조카살고 있었고 무엇보다 큰고모님이 댁에 계시면서 소소한 집안일을 주로 하셨기에 끼니때가 되면 특별한 반찬이 없더라도 밥상을 차려주시고 간식거리도 내어주시고 하셨지요. 집 뒤쪽 그늘진 텃밭에 늘 토란과 쪽파를 심으셨는데 토란줄기로 만들어주시는 토란전이 그렇게 맛있었어요. 게다가 결혼한 고종사촌 오빠의 아내인 올케언니가 열 살 남짓한 우리에게 '아가씨, 아가씨'하고 부르는 그 호칭이 속살 사근한 배같았어요. 엄마에게 매일 앙칼진 잔소리만 듣다가 꽃잎 같은 그 소리를 들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몰라요. 보너스 즐거움으로 올케언니가 방을 비운 사이에 또 다른 5촌 조카의 분유통을 열어서 꿀꺽. 아시죠?? 아마 공감하시는 분 계실 거예요.


어쨌든 그런 보살핌들이 참 따스해서 그 먼 길을 앙감질로 촐랑거리며 오갔어요. 물론 부모님의 심부름으로 다녀오기도 했었지만 그런 심부름이라면 언제든 신이 났지요. 한참 놀고 있으면 아버지가 퇴근하시는 길에 자전거로 우릴 데리러 오시고 집으로 가는 길엔 아버지의 자전거 뒷자리에 타고 돌아갔지요.


큰 이모님은 8남매의 여섯째인 저희 어머니의 큰 언니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여섯 살에 친정어머니를 여의셨는데 당시 큰 이모님만 결혼한 상태였답니다. 줄줄이 동생이 일곱이나 되고 막둥이는 겨우 두 살. 친정이 이러니 결혼했어도 엄마 없는 친정 동생들이 큰 이모님 눈에 얼마나 밟혔을지 짐작이 갑니다. 저희 어머니를 비롯해서 이모님들이 시어른을 모시고 사는 큰 이모님 댁을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듯 하며 엄마의 부재를 채웠다고 합니다. 얼마나 시어른 눈치가 보였을 것이며 동생들은 안쓰럽고 그랬겠어요.

지금도 가끔 어머니 말씀하시는 당시의 일화가 있어요.


한국전쟁 휴전 직후라서(어느 시대 얘기냐고 놀라시는 소리 다 들려요. 특히 초맹 머머리 고전무님^^) 어느 집이든 양식이 귀했던 시절이지요. 친정에서 동생이 언니집이라고 찾아왔기에 시부모님 눈치를 살피며 밥은 먹였는데 돌아가는 길에 손에 들려 보낼 게 도무지 없었답니다. 생강 주산지라 집집마다 생강 저장굴이 있는 곳인데 생강을 보내봤자 배고픔을 달랠만한 먹거리가 아니었고 그래서 아직 밑이 덜 들어 겨우 손가락만 한 이른 고구마를 캐서 간신히 누룽지와 함께 손에 들려주었다고 해요. 쌀을 좀 퍼주려고 해도 어르신들 눈치가 있어서 그럴 수 없었노라고 말씀하시고는 뒤돌아서서 행주치마로 눈물을 닦으셨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하십니다.

큰 이모님 댁은 딱 한 번 가봤어요. 지금이야 차로 40분 남짓이면 갈 거리인데 역시 바쁜 부모님이 큰 이모님 댁에 어린 우리를 데리고 가실만한 일은 없었으니 그랬을 것입니다. 지금은 그 동네에 H자동차 공장이 크게 들어서서 오래전 사라진 동네가 되었어요.


아버지 매거진도 아닌데 뜬금포로 한 세기를 사신 두 어르신 이야기를 왜 하나 궁금하시지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요.




지난 2주 전쯤 아들의 졸업식날이었습니다. 지방 소도시에서 6시 16분 기차를 타고 용산역에 도착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로 두 번째 졸업식 참석이었어요. 중학교 때는 딸 고등학교 졸업식 날과 겹쳐서 딸 졸업식 가느라(저는 큰길만 건너면 있는 아들 중학교 졸업식 가고 싶었으나 아들이 누나에게 양보해서 차 끌고 딸에게 갔어요. 그날 눈길이 미끄러워서 운동장에 세워둔 차가 운동장 벗어나는 오르막을 오르지 못해 바퀴 다 타는 줄 알았어요. 에효. 바퀴 타는 냄새 진동 T.T) 가지 못했고 고등학교 졸업식은 코로나 시기여서 참석하지 못했어요.

서울에서는 친정 언니가 참석하기로 하고요. 그날 서울 날씨는 한 주 동안 이어진 한파로 얼마나 춥던지 남쪽지방에 살던 제가 단단히 캐시미어 롱코트와 폭넓은 모직 머플러로 휘감고 무장했건만 정말 추웠습니다. 도시의 칼바람을 제대로 맞았지요.

전체 졸업식 외에 별도로 아들이 속한 학과에서는 개별 졸업식이 진행되는 탓에 졸업식 시간이 12시 30분부터였어요. 점심 식사가 애매한 시간이라 일찍 올라와서 언니집에서 한 템포 쉬었다가 아점으로 간식을 먹고 함께 졸업식에 참석하기로 했어요. 용산역에 내려 지하철을 한 번 환승하고 막 건대입구역에 하차했을 때 친정 식구들 단톡방에 알람이 떴어요.


'큰 이모 돌아가셨단다.'


오빠의 카톡메시지였어요.

장례식장은 제가 사는 곳 이웃 소읍이였어요. 먼저 친정 오빠가 부모님을 모시고 당일에 조문을 다녀오기로 했고 저는 졸업식을 마치고 이어지는 임관식에 또 참석하느라 4시가 넘어서야 모든 행사가 끝났습니다. 시간이 넉넉하면 언니와 고궁이라도 걸어볼 요량으로 하행 밤 기차를 예매했는데 오랜 시간 이어진 행사와 추운 날씨에 고궁길을 포기했어요. 간신히 학교 앞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아들은 친구들과 저녁모임 선약이 있다고 언니집까지 태워다 주고 돌아갔습니다. 기차 시간이 될 때까지 머물다가 밤기차로 내려왔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은 시간이라 조문은 다음날 가기로 했습니다.

다음날은 어머니 대학병원 외래 모시고 가는 날이라 오전 시간을 비워두었습니다. 일찍 준비하고 두 군데 외래 모시고 다녀와서 바로 그 길로 조문을 가기로 했습니다. 일찍 일어나 병원 갈 채비를 하는데 다시 오빠에게 메시지가 들어왔습니다.


"새벽에 큰고모 돌아가셨단다."


저희 집안 최고령 어르신 두 분이 하룻 사이 소천하셨어요.


큰고모님은 코로나로 몇 년 동안 요양원에 계시다가 작년 가을에 댁으로 돌아오셨다고 하기에 추석에 인사드리러 찾아뵈었었지요. 그때까지만 해도 정정하시고 말씀도 잘하셨는데 노환으로 점차 기력이 쇠하시고 일주일을 병원에 계시다가 소천하셨어요. 이렇게 빨리? (한 세기를 넘게 사셨으니 빨리는 아니고요. 여생이 더 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떠나실 줄 알았다면 지난 설에 한 번 더 찾아뵈었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었어요. 먼 거리도 아닌데 설에 워낙 눈이 많이 내려서 인사드리지 못했어요. 상황이 이렇게 되니 동생과 언니도 급하게 퇴근 후 서울에서 내려오기로 했어요.

어머니 외래 검사 결과가 그다지 좋지 않아서 추가 검사를 예약하고 기다리고 하느라 오전 시간이 다 지나버렸고 오후엔 직장에 출근을 해야 해서 조문은 저녁에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10년 넘게 만나 뵙지 못했던 이모님들과 외숙을 만나 뵈었어요. 불금이 지나고 주말 새벽 한 시가 넘어서 집에 귀가했습니다. 고모님 조문은 주말 아침에 가기로 했습니다. 아들은 서울에서 주말에 내려오기로 했고요.




이제 친척친지분들 소천이 시작되었구나 싶으니 마음이 먹먹했어요. 물론 이전에 먼저 소천하신 친인척이 계셨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최고령 어르신이 계셨고 집안에 90수를 넘으신 어르신이 다수 계시기에 무겁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친인척 조문이 먼 일은 아닌 데다 태어날때는 순서가 있어도 떠날는 순서가 따로 없고 잔치집보다 초상집에 마음을 두라는 말씀처럼 경사보다 애사에 더 예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집안의 어르신이 소천하시면 예를 갖추어 성심껏 조문을 해야 하는 것이 자손의 도리입니다. 생각해 보니 아들을 데리고 조문하러 장례식장에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들에게 첫 장례식장 경험은 남편이 떠났을 때 상주로서의 역할이었으니 참 얄궂기도 했네요. 상주로서의 역할과 조문자로서의 역할이 다르기에 아들에게 조문하는 도리에 대해 알려 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주말 오후에 도착한 아들에게 집에 들러서 깨끗하게 씻고 조문에 합당한 옷을 단정히 입고 오라고 일러두었습니다. 제게 큰고모이지만 아들에게는 얼굴 뵌 적은 있는지 그렇다면 언제인지 기억에도 없는 외고모할머니(별칭으로, 아버지의 고모와 이모를 부르는 말이 고모할머니와 이모할머니이며 어머니의 이모와 고모를 부르는 호칭 자체가 없습니다 T.T)입니다. 바쁜 시대에 지척에 살지 않으면 일부러 찾아뵙고 예를 갖추지 않아도 크게 결례가 되지 않는 관계이기도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직계 3대가 아닌 방계혈족 3대는 그런 관계가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가문마다 풍습이 다름을 인정합니다.


장례식장에 종일 머물면서 고종사촌 언니, 오빠들과 육촌 오빠들의 상차림을 봐주고 응대를 하며 쏟아져 나오는 옛이야기들을 담소로  나눴습니다. 아버지 매거진에 나오는 사이다 빈 병 이야기 [그 거짓말]의 영문오빠 아내인 고종사촌 올케언니도, 어릴 때 큰 고모님 댁에서 함께 놀던 비슷한 또래의 5촌 조카도 30여 년 만에 만났습니다. 한 세기를 넘게 살아오신 어르신의 죽음은 그렇게 친인척들의 격조했던 만남을 성사시켰습니다.


아들은 검정 슈트를 단정히 입고 도착했습니다. 굳이 검정 슈트가 아니어도 화려한 색상 계열의 옷이 아니라면 상관없으나 처음으로 가르치는 조문방법에 대해 최대한 격식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저희는 크리스천이기에 거기에 합당한 방법으로 이래저래 일러주고 저도 아들 옆에서 함께 조문했습니다.

백수를 넘게 누리신 어르신이라 애통함이 크지 않았고 중고차 꽃분이 구입 때처럼 막막하지도 않았지요. 다만 아들이 아빠 생각 많이 났을 거라는 것은 예상했습니다. 장례식장이 그때와 같았거든요.


이제 첫발을 내디딘 아들의 직업은 군인입니다. 직업군인으로 승승장구하면 그 끝은 별(장성급 군인)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하루하루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기쁘게 살아가는 소시민적인 삶을 참 좋아합니다. 반면 아들이 먼 미래를 그리며 큰 꿈을 꾸어보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포부는 크게 가져볼 일이지요. 아직은 귀엽고 어리기만 한 아들의 어깨와 모자에도 먼 그날 별이 달렸으면 하면 마음을 품습니다. 마냥 헛된 꿈을 꾸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경우에 합당한 직업의식과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범사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두 어르신께서 이 세상 소풍을 다 하시고 별이 진 그날은 별을 꿈꾸는 아들이 전문직업군인으로서 기본 소양을 잘 마친 날이었습니다. 먼 훗 날 꿈꾸던 별(장성급 군인)이 아들의 것이 된다면 별이 진 날은 새로 별이 태어난 날이 되는 것입니다.




조문을 마치고 친인척들 사이를 오가며 아들에게 인사를 드리게 했습니다. 또 언제 뵐지 모르는 분들이지만 그것도 조문 예절에 포함되는 것이지요. 그 사이 생각지도 못하게 아들의 주머니가 소소하게 채워졌습니다. 한 달도 안 되어 첫 월급을 탈 텐데 하면서 민망한 엄마와 아들이 서로 눈을 마주치며 조용히 웃었지요.


"아들, 엄마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법이야. 아니지. 엄마 말을 잘 들으니 조문하고 돈이 생기네. 아들 네가 좋아하는 그거 있잖아. 반띵 어때??"


파렴치한 엄마는 이번에도 등골을 좀 빼려고 아들의 주머니를 한 번 찔러보았지요.

아들은 빛의 속도로 주머니를 부여잡고 가자미 눈으로 푸른 광선검을 엄마에게 찔러댔죠. 그러면서 한 마디 했어요.


"대신 할머니 할아버지 모셔다 드리는 건 내가 할게. 택시비로 퉁친다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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