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를 가지 않고서는, 인도를 갔다고 할 수 없어'
그런 말을 참 무수히도 들었다. 바라나시에 대한 온갖 공포스럽고 추악한 이야기들을 듣고, 결국은 또 찬양하는 소리를 들었다. 한 번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그곳. 정말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바라나시. 생과 사가 공존한다는 그곳이, 4년간 인도 여행의 마지막 종착점이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기에 고민도 많았고, 많이도 알아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지만 바라나시는 결코 아이들과 함께 해서는 안될 여행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예전의 바라나시에 비해 정말 많이 깨끗해지고 달라졌다고 하고, 지금도 분명 그곳은 달라지고 있기는 하다.
만 7세였던 둘째 아들은 바라나시 여행이 몰디브보다, 스페인보다 좋았던 자기 인생 최고의 여행이었다고 한다. 어떤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좋아하는 형들과, 누나들과 함께 어울려 길거리 소똥을 피해 다니고 강아지들을 쫓아다니며 가트에서 뛰어다니던 기억, 불타오르는 화장터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숙연해지던 그 마음이 마치 하나의 모험처럼 참 인상 깊게 각인된 모양이다.
알록달록한 바라나시의 풍경은 내가 원하던 바로 그 모습의 인도였다. 저 멀리 보이는 갠지스강은, 리쉬케시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나는 갠지스강이다. 상류였던 리쉬케시에 비해 확실히 악취가 나고 더러운 갠지스강이었지만, 겨울철이라 한결 나았다. 여름철에는 악취가 견딜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바라나시는 마스크는 필수이다. 1월이었던 겨울이라 악취가 심하지는 않았지만 흙먼지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첸나이의 흙먼지와는 비교 불가였다. 아이들과 함께 이것저것 피해다니며 골목길을 다니느라 사진은 많이 찍지 못했지만, 함께 눈으로, 마음으로 새긴 그곳의 풍경은 일치했다. 좁고 더러운 골목길을, 마치 탐험이라도 떠나듯 씩씩하게 잘 다니던 아이들의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
이른 새벽 철수 보트를 타고 해돋이와 가트 풍경을 감상했던 보트 투어는 일품이었다. 한국말이 유창하신 철수 아저씨는 바라나시 출신의 인도분이신데, 한비야님께서 '철수'라고 이름을 붙여주신 이후에 그 이름을 사용하신다고 했다. 15년간 바라나시에서 보트를 운영하시는데, 모든 설명을 한국말로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조용하고 어스름한 새벽 가트의 모습은 참 아름다웠다. 바라나시의 새벽 공기가 이처럼 시원할 줄이야. 찰랑찰랑 갠지스 강물 소리와, 기도하는 소리 외에는 적막만이 채우고 있는 시간. 추워서 다들 돌돌 말고 마스크로 무장한 아이들이 '철수 보트'라는 한글을 발견하고 신기해한다. 보트가 출발하자 출렁, 강물 소리가 일렁였다. 반짝이는 불빛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꿈인지 생시인지, 몽환적인 기분이었다.
천천히 배를 타고 갠지스 강을 한 바퀴 돌았더니 주변이 밝아오고 있었다. 어디선가 갈매기떼가 몰려들자 아이들이 또 흥분하기 시작했다. 끼룩끼룩 소리를 내면 갈매기떼가 소리를 듣고 몰려오는 모습을 보고 너도 나도 갈매기 흉내를 낸다. '끼룩 끼룩, 끼룩 끼룩...'
바알간 해가 강물 위로 떠오른다. 인도 생활에서의 마지막 여행. 바라나시, 갠지스 강, 그리고 해돋이... 짧은 순가이었지만 해가 갠지스 강 위로 솟아오르는 동안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바라나시에는 아직도 초벌구이 찻잔이 존재한다. 전통 초벌구이 찻잔은 짜이 한 잔을 마시고 바닥에 던져 깨버리는 친환경적인 일회용 컵이다. 지금은 종이컵으로 대체가 되었지만, 예전에는 인도에서 다들 이 초벌구이 컵을 사용했다. 아이들은 신기해하면서 짜이 한 잔에, 구운 빵을 곁들여 배를 채운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가트를 따라 산책하는 일은 바라나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가트 곳곳에 널려 있는 빨래터를 구경하고, 곳곳에 그려진 가네샤와 시바와 같은 신들의 그림을 구경하는 재미, 길거리 똥개 강아지들이 쫄래쫄래 따라오는 모습에 귀여워 한참을 머물었던 추억들이 담겨 있는 곳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길거리에서 흔들고 춤을 추며 동영상을 찍는 인도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고, 우리도 다시 한 번 공연을 해볼까 하는 농담을 던졌다. 성스럽기 그지없는 갠지스 강물을 담아가는 통을 파는 할아버지도 보고, 우리가 보기에는 너무나 더러운 갠지스 강물에 온몸을 담그고 목욕을 하는 사람들도 본다.
모든 풍경이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바라나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가장 바라나시 다운 곳이 바로 갠지스강 가트가 아니겠나. 알록달록한 색채며 아침 햇살이며, 기도 소리와 이름 모를 악기들 소리, 꼬리를 흔들며 따라오는 강아지들, 목욕하는 사람들의 찰방대는 물소리, 빨래터의 빨래방망이 두드리는 소리와 새들의 날개짓... 그 모든 것이 조화로웠던 바라나시의 아침이었다.
그리고 아르띠 뿌자가 한창인 바라나시의 밤, 다샤스와메드 가트 위에서 갠지스 강의 여신에게 바치는 성스러운 의식이 매일 밤 정성스레 바쳐진다. 다시 철수 보트에 몸을 싣고 화장터의 불타오르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절대로 꺼지지 않은 불, 바라나시의 화장터. 말로만 듣던 화장터 앞에서 무섭다거나 참담하다거나 하는 생각보다는, 그저 경건한 마음이 가득해졌다. 마음이 하염없이 가라앉고 또 가라앉았다.
아이들에게 미리 이곳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았을 때 어떻게 받아들일지 조금 걱정스러웠는데, 놀랍게도 조용히 철수 아저씨의 설명을 들으며 그곳을 응시한다. 하염없이 그곳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고 후에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딸은 얼마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을 했다고 말했고, 아들은 엄마가 오래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전통과 신비로움을 가득 담고 있는 바라나시에, 에어컨을 단 유람선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바라나시와 정말 어울리지 않은, 모디 총리의 작품. 바라나시 보트업자들이 파업을 하며 항의했지만 유람선은 우리의 눈앞을 유유히 지나갔다. 바라나시는 바라나시다워야 한다고, 철수 아저씨가 눈시울을 붉혔다. 변화는 꼭 필요한 것인가. 그렇다고 해도 전통과 문화와 역사와, 이들의 일상을 무시한 변화라는 것은 옳은 일일까. 변해가는 바라나시의 한 축을 보면서, 완전히 변해버리기 전의 바라나시에 올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다음에 만날 바라나시는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