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인도 여행 - 라다크 레

by 티마스터 바유

대학생 시절,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책 <오래된 미래>를 읽고 무척이나 깊은 감명을 받았다. 헬렌 니어링의 책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와 함께 나의 베스트 북으로 손꼽으며 몇 번이나 탐독을 했는지 모른다. 20년 전부터 지금까지 나의 버킷리스트 가장 상위에 있었던 라다크 왕국, 레의 여행. 인도에서의 마지막 해에, <오래된 미래>의 배경이 된 '레' 여행을 감행하기로 했다. 더불어 아미르 칸의 영화 <세 얼간이>의 배경이 된 판공초까지.


나의 열망을 이해해준 신랑은, 혼자서는 절대 보낼 수 없지만 고산병의 위험 때문에 아직 어린 아이들도 함께 보낼 수 없다며, 과감히 휴가를 내고 아이들을 봐주기로 했다. 혼자서는 안 된다는 신랑의 말에, 나는 레 여행을 꿈꾸던 또 다른 친구에게 여행을 제안했고,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었던 친구는 고민 끝에 과감하게, 두 아이와 함께 여정을 계획했다. 신랑 덕분에 홀홀단신이었던 나까지 여자 둘, 남자 아이 둘, 네 명의 모험이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걱정인 것은 고산병이었다. 가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는 고산 지역의 증후군. 만일을 대비해 여러 가지 상황을 대비하고 준비했지만, 가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용기와 추진력이 필요했다. 우리의 여정은 라다크 레에서 시작해서, 탁톡 곰파가 있는 삭티, 판공초, 훈더르, 그리고 다시 레로 돌아오는 열흘간의 일정이었다.


예전에는 비행기가 없어, 육로가 열리는 여름에만 갈 수 있었다는 라다크, 레. 해발고도 3500m, 인도 잠무 카슈미르 주에 자리를 잡고 있는 옛 라다크 왕국의 수도 레. 비행기 안에서부터 펼쳐지는 자연의 경이로움에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숙소에 도착하자, 줄레! 라다크어 인사말로 우리를 반겨준다. 내가 꿈꾸던, 작은 텃밭이 있고 꽃이 한 가득 피어 있는 작은 게스트하우스. 화려하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하고 깔끔하기 그지없는 게스트하우스가 마음에 쏙 들었다.


고산 지대에 적응하기 위해 이곳에서 2박 3일을 머물고 더 높은 지대로 이동하기로 한다. 다행히 일행 모두 큰 무리 없이 고산에 적응했지만,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조금씩 숨이 가뿐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조건 쉬어야만 하고, 천천히 움직여야 하는 레의 첫날은 마치 24시간이 48시간이라도 되는 냥 느릿느릿 흘러갔다. 매 시간, 매 분, 매 초를 충분히 누릴 수 있었던, 마치 순례자의 길과 같았던 여행.


고산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된 다음 날은 레의 구석구석을 마음껏 구경하고 누릴 수 있었다. 레 왕궁에서 내려다본 올드 타운, 구 시가지는 고대 왕국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하늘은 손을 내밀면 닿을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파랗고 맑았다. 웅장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돌산을 배경으로 타르초가 바람에 끊임없이 휘날리는 모습도, 그 소리도, 모든 게 완벽하게 어우러진 풍경이었다. 타르초 하나 하나에는 기도문이 적혀 있는데 타르초를 스쳐간 바람을 맞은 사람에게는 그 기도문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삭티

레보다 조금 더 높은 3800m에 위치한 삭티에서는 함께 간 아이들이 열에 시달려 해열제를 옆에 두어야만 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심하지 않은 편이라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물을 잘 챙겨 먹으면서 천천히 적응해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어디로 고개를 돌려도 눈을 뗄 수 없는, 내 생전 처음 보는 웅장한 풍경들이 사방에 펼쳐져 있었다. 때론 민둥산, 때론 돌산, 때론 푸른 산... 흙의 색깔도 어쩜 이리 다양한지! 사진으로 아무리 담아내도 그 감흥이 다 전달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천혜의 자연 환경을 가진 스위스보다 몇 백 배 더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림 같은 풍경 속에서 탁톡 곰파 축제를 즐기며 라다크 인들이 나누어주는 버터차를 마셨다. 주섬주섬 옷섬에서 자신의 찻잔을 꺼내는 라다크인들의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다. 각자 취향대로, 다양한 색깔과 다양한 모양의 컵이 참 예뻤다.


전통적인 라다크 옷차림을 한 고령의 할머님 한 분과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를 나누며 사진도 찍고, 시간을 나누었다. 흡사 우리나라의 탈춤을 연상케 하는 곰파 축제는 춤사위가 연신 이어지면, 사후 세계와 신들을 향한 기원과 존경, 감사를 담고 있는 내용이었다. 이를 통해 다시 한 번 그들의 믿음을 공고히 하고, 현 세계에서의 바른 삶을 다짐하게 되는 그런 마음.


마날리가 인도의 스위스라고 불린다지만, 이곳만큼 아름답지는 않은 것 같다고, 마날리에 다녀온 친구가 내 사진을 보고 말했다. 정말 그랬다. 삭티는 이른 새벽부터 캠프 파이어를 하며 발리우드와 컬리우드 노래를 틀어놓고 신나게 따라 부르던 늦은 밤까지,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비현실적인 곳이었다.


판공초

아쉬운 마음과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삭티를 떠나 판공초로 떠나던 날, 하늘은 맑고 파랗기만 하다. 라다크 여행을 하면서 느낀 점은, 날씨에 따라 분위기가 너무나 달라진다는 점이다. 파란 하늘일 때는 한없이 아름답고 꿈 같은 이곳이지만, 잿빛 하늘일 때는 온 세상이 무채색으로 변한다. 판공초에 도착했을 때는 부디 파란 하늘이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다시 여정을 시작한다.


장장 대여섯 시간을 달려야 판공초에 도착하는데, 가는 길 내내 펼쳐지는 절경에 잠시도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세상에서 두 번째로 높은 도로라는 해발고도 5360m의 창라에서 기념사진을 한 장 찍는다. 감탄과 탄성만 있었던 건 아니다. 불어난 개울물에 자동차 바퀴가 빠져 꼼짝도 못하는 차 뒤로 늘어선 줄을 보고 불안과 걱정 가득했던 순간도 있었고, 아찔한 절벽 밑에 아직도 남아 있는 자동차의 잔해를 보고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입이 절로 벌어질 만큼 환상적인 풍경은 계속되었고, 마침내 판공초가 그 신비로운 모습을 드러냈다. 판공초야, 내가 너를 드디어 만나는구나! 정말이지 감격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대륙이 이동하면서 서로 부딪혀 바닷물이 이곳에 갇혀 호수를 이루었다는 판공초. 그래서 호숫물이 지금까지도 짭잘하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거울에 비친 것처럼 호수 안에 담겨 있는 모습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아름다웠다. 맑은 날만 볼 수 있다는 이 전경을 마음껏 누렸다. 지구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을 줄은 몰랐다. 지금까지 보아온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비현실적이었는데, 판공초의 모습은 믿겨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 게다가 호수 중간즈음에 피어오르는 파아란 물안개가 신비로움을 더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다시 한 번 느꼈지만, 자연만큼 놀랍고 아름다운 것은 없는 것 같다. 집에 두고 온 신랑과 아이들 생각이 간절히 나는 순간이었다. 세 얼간이 촬영지에서 영화 장면을 떠올리며 사진도 찍고, 호숫가에 앉아서 하염없이 판공초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중에서, 그리고 분명히 앞으로도 영원한 베스트 여행지로 남을 곳이었다.


해발고도 5300m에서 보낸 판공초의 밤은, 비가 내렸고 천둥이 쳤고, 아이들과 동행한 친구가 아팠다. 고산증 때문이었을 것이다. 불안한 밤이 무사히 지나고 이른 아침 다음 목적지로 내려가면서 증상이 조금 더 완화되었다. 너무 아름다웠던 판공초의 낮의 감동만큼이나 두려웠던 판공초의 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만하기 정말 다행이었다.


훈더르

장관에 장관이 계속되는 라다크 여행. 그림 같은 숙소는 넓은 텃밭을 가지고 있어 그곳에서 요리하는 음식은 전부 텃밭에서 따온다고 했다. 발코니에 앉아 초록빛의 풍경을 즐기면서 커피 한 잔과 함께 그 동안의 모험담을 나누었다. 훈더르의 아름다운 풍경과 파란 하늘과 맑은 공기는 모든 긴장과 피로를 풀어주었다. 훈더르의 누브라밸리는 라다크의 최북단 지역으로 이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지닌 곳이라고 했는데, 과연 그러했다.


구름과 맞닿아 있는 산, 눈 앞에 잡힐 듯한 구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신비로운 풍경을 마음껏 즐기며 훈더르의 산속에 숨어 있는 곰파들을 구경하고 거대한 금빛 부처님 상도 보았다. 웅장한 대 자연 속에 앉아 있는 거대한 부처님 상은, 여전히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어디를 가도 천혜의 자연환경이 펼쳐져, 매 순간이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리고 이동한 곳은 다름아닌 사막. 하늘 위의 사막이라고 불린다는 누브라 밸리의 모래 언덕에서는 낙타 투어를 할 수 있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파란 하늘과 모래 언덕을 배경 삼아 타는 낙타 투어는 생각보다 즐거웠다. 그리고 놀랍게도 낙타 투어에서 돌아오는 순간, 하늘에 쌍무지개가 뜬 것이다! 다들 잔뜩 흥분해서 사진 찍기에 바빴고, 쌍무지개는 꽤 오랫동안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었다. 여행길 내내 운이 가득했던 우리의 여행, 쌍무지개까지 우리의 행운을 더해준다며, 행복해했다.


다시 레

레 시내에는 살구가 가득했다. 탄탄하게 잘 익은 살구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첸나이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새콤달콤한 살구를 잔뜩 사서 맥주 안주로 삼기도 했다. 어딜 가나 흩날리는 타르초를 바라보며, 그 기도문의 바람이 나에게도 스쳐 지나가기를 빌었다.


레 시내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카페에 앉아 맛있는 커피를 한 잔 마시고, 김치볶음밥과 닭도리탕, 삼겹살까지 파는 한국 식당 아미고에서 마지막 만찬을 즐기고, 레에서 지는 해를 마지막으로 감상하고 숙소로 돌아와 별이 가득한 달밤을 즐기면서 라다크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냈다. 다시 생각해보아도 모든 것이 생생한 라다크 여행. <오래된 미래>에서 걱정했던 것처럼, 오랜 전통이 무너지고 젊은이들이 서양의 문물을 찾아 떠나고 있는 라다크의 모습이 보일 때마다 안타깝고 마음 아팠지만, 그래도 내가 이렇게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건, 너무 다행이고 너무 감사한 일이라며, 이기적인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다운 자연이 살아 있는 평화로운 라다크, 레. 작은 텃밭을 꾸리고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삶을 꿈꾸는 나에게, 이보다 더 적합한 곳은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돌아갈 그날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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