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지 않습니다. 나는 모르는 일입니다.
보스는 별별스러운 데가 있다.
어떤 날 보스 왈, “황 회장은 지시를 해놓고는 말을 바꾸는 통에, 아래 직원들이 일하기 힘들어한다고 하더라고. 윗사람이 그러면 쓰나? 전날 지시해놓고, 다음날 아침이면 자기가 언제 그랬냐고 한대. 그럼 직원들이 어떻게 일을 하나?“
옴마? 주어만 본인으로 바꿔도 아주 딱 들어맞는데요, 보스. 늘 한 입으로 두말하시는 분께서, 겨 묻은 개를 나무라시는건가요. 자기객관화가 잘 안 되는 보스에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사실을 말했다. “그럼요. 상사가 말을 바꾸면 같이 일하기 너어무 힘들죠.” 내 문장의 주어가 당신인 줄은 알아듣지 못했다.
아주 오래전 보스와 해외출장을 갔을 때의 일이다. 현지 정부 인사와 네트워크를 쌓기 위한 가벼운 미팅이 있었다. 우리측 법인장도 동석한 자리에서, 기분좋은 인사치레와 가벼운 대화들이 오갔다. 보스는 1990년대 해당 국가를 처음 방문했던 때를 회상했다. 수도는 물론이고, 국가 전역에 자동차가 250여대 밖에 없던 때라고 했다. 수도의 거리엔 사람과 인력거가 오갔고, 자동차는 드물었다고 했다. 보스 왈, “그 때는 등허리에 곰을 들쳐업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도시에 와서 팔려고 시골에서부터 업고 온다더라구요.” 정부인사는 그 옛날엔 프랑스에 주로 체류했던 탓인지, 자신은 그런 풍경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현지인보다 현지를 더 잘 아는 양반이 나의 보스였다. “아유, 정말이라니까요. 그런 사람들이 더러 있었어요. 아직도 이 나라에 곰이 있습니까?” “그럼요, 있을 겁니다.” 보스는 난데없이 ”그럼 웅담도 구할 수 있습니까? 한국 사람들은 정력에 좋다고 살아있는 곰의 쓸개즙을 먹기도 합니다.“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으악, 보스. 대화가 왜 그 쪽으로 튀는 건가요. 이런 얘기는 굳이 하실 필요 없는 것 같은데요. 보스는 한술 더떠 그 분께 곰을 잡자고 했다. 맙소사. 음식에 대한 비위가 약해 아직 그 나라 음식도 못 드시는 분이 대체 왜 저러시나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행히 곰은 잡지 않았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얼마 후 보스는 당신이 곰을 잡자고 말했단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 “보스, 그 때 등허리에 곰 들쳐업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웅담이 몸에 좋으니 함께 곰을 잡자고 하셨는데요.” 보스는 거의 펄쩍 뛰며, 내가 왜 그런 말을 해. 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어, 라고 하시는게 아닌가. 단기성 기억상실이야 뭐야. 본인이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이 창피해서 그러시는건가. 보스는 결단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내가 왜 그런 쓸데없는 말을 하냐며 딱 잡아 뗐다. 옆에 있던 법인장께서 슬쩍 말을 보태주셨다. “그 때 곰 잡자고 하셨습니다.” “에이, 내가 언제 그랬어. 절대 그런 적 없어.” 리플리씨야 뭐야. 그 때 알았다. 보스는 한 입으로 두말하는 분이라는 걸. 아휴. 그때 도망쳤어야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