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윤 Nov 05. 2020

멋쟁이 희극인 박지선 님 고마웠습니다.

나이를 먹으며 코메디 프로그램을 보고 잘 웃지 않게 된 게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머리가 굵어지며 코메디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따지는 게 많아졌고 웃음도 인색해졌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유난히 좋아하고 꼭 웃음 짓게 하는 희극인도 있었다.

박지선 님, 나는 그녀의 코미디, 글, MC 모든 것을 좋아했다.

심지어 그녀의 취향마저 좋아했다.


그녀가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에 나와 수줍게 본인이 얼마나 유희열 님의 라디오를 열심히 듣고 자라났는지 말할 때 그녀는 나의 마음을 읽고 가기라도 한 듯이 나와 같은 마음으로 팬심을 드러내 주었고

그녀가 방송에 나와 샤이니를 응원할 때 나도 같이 샤이니 음악을 듣고 있었으며 펭수를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이젠 놀랍지도 않다며 그녀의 펭수 사랑에 공감하곤 했다. 그냥 이젠 내가 알지 못하던 것이라도 그녀가 좋아한다고 하면 왠지 나도 분명히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에 한번 더 찾아보게 되기까지 했었다.


그녀가 나오는 방송이나 MC 모든 회차를 챙겨볼 순 없었지만 적어도 그녀가 나오는 방송은 꼭 찾아보려 했고 프로그램의 재미 유무와 상관없이 그녀의 이야기는 매번 나를 깔깔거리게 만들었다. 나는 그녀의 폭력적이지 않은 코메디가 좋았고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이 좋았고 그녀가 좋았다.


11월 2일 그녀의 부고 소식이 수많은 메세지 알람으로 알려왔지만 단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한 채 애꿎은 컴퓨터 모니터만 노려보며 눈이 빠져라 일을 했다. 내가 "이게 무슨 일이야, 너무 슬퍼" 따위의 답장을 하게 되면 이게 모두 사실이 될 것만 같아서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믿을 수가 없어서 현실을 외면하기 바빴다. 그리고 계속 외면하고 싶었다. 그런데 온 세상이 그녀는 이제 떠났다고 말한다. 아직도 믿기지 않아서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데 이젠 유희열의 스케치북 특집 코너에 나와주고 샤이니의 새 앨범을 듣고 함께 비명 질러주고 펭수 아이템을 방송에 들고 나와 자랑하며 나의 부러움을 살 그녀는 없다고 한다.


우연히라도 그녀를 만나게 된다면 나는 꼭 그녀에게 "제가 참 웃음에 박한데 덕분에 많이 웃을 수 있었어요. 고마워요."라는 말을 꼭 한 번쯤 해보고 싶었었다. 살다 보면 언젠가 그런 기회가 올지도 모르지라고 여유롭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젠 그 말을 해볼 기회가 영영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후회가 밀려온다.

직접 보지 못해도 그녀가 본인 이름을 검색해 봤을 때 우연히라도 볼 수 있게 블로그에라도 감사 표시를 좀 남겨볼걸, 얼마나 멋진 사람이라고 느껴지는지 적어볼걸, 그녀에게 얼마나 많은 위로를 받고 있는지 다 표현해 놓을걸 뒤늦은 후회만이 떠오를 뿐이다.


너무 늦어버린 걸 알지만 멋쟁이 희극인 박지선 님 그곳에선 행복하세요. 아프지 마세요. 정말 고마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홋카이도 3. 숲의 시계는 두근두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