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의 그 날이 오긴 와주었다. 천년 만년 준비만 할 것 같았는데 출발이란걸 하게 되는 날이 와주었다. S도 나도 그저 감격스럽고 들뜬 마음으로 에어인디아 AI 317기에 몸을 실었다. 에어인디아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참 이 항공사에 대해선 쌓인것도 많고 할말도 많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애드온 서비스라는 구미 당기는 혜택과 저렴한 항공권에 혹해서 인터넷에 그 수많은 악평에도 불구하고 선택한 항공사였다.
애드온 서비스란? 에어인디아 왕복 해외 항공편을 이용 시 인도 국내선 항공 2편을 무료~매우 저렴한 금액으로 예약할 수 있는 서비스, 해외 항공권 예약 당시 결제전에 신청해야 하며 우리의 경우 바라나시>델리 편도를 2만원 정도에 결제하는 저 수많은 악평을 감내할 달콤한 가격적 메리트가 있었다. 물론 작년 애드온 서비스 가격 개편 이후 이 메리트는 많이 줄었다.
기내에 들어선 순간 첫 감상은 기내에 커리 향신료 냄새가 좀 진하게 나는구나. 생각보다 비행기가 꽤 좋은걸? 정도의 무난한 감상 수준이었다. 수많은 악평 내용 중엔 불친절한 승무원들에 대한 평가도 있었지만 승무원들도 그 정도면 무난하게 친절한 정도였다.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에어인디아에 대해 내 감상은 '솔직히 이정도면 꽤 괜찮은데' 정도 였던것 같다. 두 번의 인도여행, 그리고 두 번의 에어인디아 이용으로 이젠 학을 떼버렸지만
우리의 인도행은 역시 떠나는 그 날 까지 험난했다. 하필 당일 쏟아진 엄청난 폭설로 비행 출발시간이 1시간 30분이나 지연되어 향신료 냄새 진하게 나는 기내에 갇혀 하염없이 내리는 하얀 눈만 쳐다보고만 있어야했다. 열흘전, 예약한 기차에 문제가 생긴 뒤로 떠나는 날까지 긴장의 끈을 놓은 적이 없기도 했고 이제껏 겪었던 수많은 난관들에 비하면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는 이 정도 수고로움은 별것 아니었다. 그 때 쯤엔 오히려 뭐랄까 알 수 없는 믿음 같은게 생겼다. 그렇게 꼬일대로 꼬였어도 결국은 매번 해결되어 출발 비행기까지 탄걸 보면 난관은 있을지라도 결국은 해결이 되겠지라는 묘한 확신같은게 생겨있었다. 믿음대로 폭설 난관도 결항까지 되는 사태는 일으키진 않았다. 드디어 비행기는 활주로를 내달리기 시작했고 지독히도 힘들게 준비한 여행도 드디어 시작이었다.
얼마 뒤 기내식이 나왔고 처음 경험해보는 인도식 커리에 둘 다 무척 흥분해 있었지만 두번째에 또 커리 기내식이 나왔을 땐 커리 향에 이미 진절머리가 나서 속이 좋지 않았고 결국 비행기에서 질린 커리덕에 인도에서 커리를 제대로 못즐기게 되었다. 사실 그렇게 금새 지독하게 질려버린건 커리의 맛보다는 기내에 들어설 때 부터 나던 그 커리향이 기내식 이후로 더더욱 진하게 멤돌며 10시간 내내 우리 코끝을 괴롭혀댔다. 코끝을 멤돌았다기보다 커리향신료 향에 파뭍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결국 먹성 좋은 우리였지만 두 번째 기내식은 거의 손대지 못한채 반납해야 했다. 세계 각국의 비행기를 다양하게 타본 경험이 있는 S의 말로는 본인 여행 역사상 기내식을 남겨본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할 정도였다.
그렇게 홍콩 경유 약 1시간 30분 포함 총 10시간 30분 동안의 비행 끝에 11시가 넘어서야 델리 간디공항에 도착했다. 원래 도착시간보다 2시간 늦은 도착이었다. 공항에 첫 발을 내 딛을 때 무척 감격스러웠지만 그 감격스러움을 즐기기엔 공기가 숨구멍을 턱하고 막아버렸다. 공항 내부 대기가 노랗고 옅은 안개가 낀 듯 희뿌얬다. 계속 터져나오는 기침에 S와 대화 한마디 나눌 수가 없었다. 말로만 듣던 극악무도한 인도의 미세먼지 때문이었다. 당시 한국도 미세먼지가 심하긴 하지만 미세먼지 수치 100을 넘기 전이었고 델리는 미세먼지 수치만 200을 훌쩍 넘고 있었다. 몸소 200이 넘는 미세먼지를 경험하고 나니 미세먼지가 400혹은 측정 불가까지 뜬다는 바라나시가 벌써부터 걱정되었다.
마스크를 쓰고 숨쉬기가 좀 수월해지고 나서야 공항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예전에 어느 방송인이 마음 수련을 위해 인도에 갔다가 같이 간 동행이 공항에 내리자마자 바로 돌아가는 티켓을 끊었다던데 왜 그런지 이해되지 않을만큼 공항은 멀끔하고 깔끔했다. 물론 당시엔 간디공항이 새로 지어진지 10년도 안되었단 사실을 알지 못했었기에 품을 수 있는 의구심이었다. 어쨌건 우린 운좋게 멀끔한 신축 공항으로 우선은 안도 할 수 있었다.
모든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오자 벌써 시간은 새벽 한시, 적당한 자리를 찾아 공항노숙에 돌입했다. 이 노리끼리하고 뿌연 공항에서 노숙으로 시작하는 이 여행이 그저 끝나는 그 날까지 무탈하길 바라며 잠깐씩 눈을 붙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