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윤 Dec 06. 2020

인도 4. 빛과 그림자

델리

2017년 12월 21일



그림자


빈 벤치 잡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말에 돗자리까지 챙겨 왔건만 우린 꽤 널찍한 벤치 하나를 통으로 차지할 수 있었다. 혹시나 싶어 1자리를 비워뒀지만 빈자리가 많았던 탓인지 떠날 때까지 빈자리인 채로 남아있었다.


남은 3자리에서 2자리는 번갈아가며 우리의 잠자리가 되어주었고 1자리는 짐 지킴이의 자리가 되었다. 하지만 반은 앉고 상체는 누운 그 자세로 쉽게 잠이 올리 없고 내내 울려 퍼지던 공항 시그널 송은 자장가가 되어주기보다는 수능 금지 송처럼 수면 금지송이 되어 자꾸 뇌리에 맴돌아댔다. 결국 잠이랄 것도 없이 1시간 반씩 머리만 붙였다 뗀 채 4시 15분이 되었다.

S를 깨워 공항전철 첫차를 타기 위해 나섰다. 우리가 알아온 첫차 시간은 4시 50분이었지만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공항 안내데스크를 찾아 첫차 시간을 묻자 청천벽력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5시 30분"


믿기지 않아 다시 물었다.

대답은 변함없이 똑같이 돌아왔다.


"5시 30분"


6시에 출발하는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로 향하는 사땁띠익스프레스 열차를 타야 하는 우린 앞이 캄캄해져 왔다. 재차 물었지만 귀찮다는 듯 똑같이 돌아온 대답에 짧은 시간 동안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이 새벽에 그 악명 높은 인도 택시를 타야 하나 싶어 약간의 공포과 택시는 또 어디서 타야 할지 얼마나 걸릴지에 대한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뒤덮었다. 복잡한 머리로 우선은 공항 밖으로 나서다 마침 교통정리를 하던 직원에게 다시 한번 확인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이 우릴 살려주었다. 


"6시"


재차 물었고 대답은 역시 똑같이 6시였다. 우리가 원한 4시 50분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안내데스크와는 다른 시간대를 당당하게 말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이 사람들 사실 잘 모르는 게 아닐까? 하는 희망적인(? )의심이 들었고 택시를 어디서 타야 할지에 대한 고민대신 공항전철역 입구로 향했다.



꽉 닫힌 매표소 앞에서 내 머리는 또 한 번 하얘졌다.


공항 전철역으로 내려가자 처음 보인건 토큰을 구매할 매표소가 비어있는 광경이었다. 대신 무인발권기 앞에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고 무인발권기라는 기계의 이름이 무색하게 기계 옆에서 대신 표를 뽑아주는 사람 한 명이 줄 선 사람들에게 돈을 건네받고 대신 토큰을 뽑아주고 있었다. 


그 앞을 어슬렁 거리며 어리바리함을 만천하에 떨치고 있을 때 회색 운동복에 엄청나게 큰 슈트케이스를 두 개나 끌고 있던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도움이 필요해요?"

"혹시 오늘 첫차가 몇 시에 있죠?"

"4시 49분이요. 어디까지 가요?"

"뉴델리역이요"

"저기서 토큰을 뽑으면 돼요. 날 따라와요."


사실 이미 공항직원들에게 인도인에 대한 의심과 실망만 쌓여있을 때였고 갑자기 불쑥 다가온 그가 못 미덥기도 했지만 도움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기에 경계심 반 의지하는 마음 반으로 그를 따라갔다. 


그 회색 운동복의 남자는 본인의 커다란 캐리어도 내팽개친 채 우리를 無人발권기를 有人발권기로 사용하고 있는 남자에게 찾아가 우리가 가야 하는 역과 두 명분의 토큰이 필요하다는 사실들을 대신 전하며 우리의 곁을 지켜주었다. 한 사람 당 60루피씩 총 120루피를 내야 했기에 500루피를 내밀어 보았지만 잔돈이 필요하다며 "체인지 체인지"를 외쳐댔다. 


정말 우애 곡절 끝에 귀하게 얻은 토큰


5시도 안된 새벽에 도대체 어디서 체인지를 해오라는 말인지 첫차 시간이 10분도 안 남은 상황에서 다시 한번 머리가 하얘지는 순간이었다. 그때 우리 옆을 지키던 회색 운동복의 그 남자가 갑자기 본인의 터질 듯이 두둑한 지갑을 꺼내 열어 100루피 다섯 장을 건네주었다. 우리에겐 빛보다 더 빛과 같은 존재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100루피 한 장을 계속해서 뱉어내는 기계 탓에 우리의 티켓팅은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1분 1초가 아쉬워 마음이 초조한 그 때 그가 다시 건낸 20루피 덕에 우리는 무사히 두개의 토큰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거기서 그의 호의가 끝난 건 아니었다. 우리가 가는 방향의 플랫폼 위치 앞까지 정확히 에스코트 해준 뒤에야 그 커다란 캐리어 두 개를 이끌고 유유히 모습을 감추었다.


그는 괜찮다고 했지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가지고 있던 구권 20루피를 조심스레 내밀어 보았을 때(구권은 가게에서도 잘 안 받아주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길 보고 갔던 터라 구권을 내밀 때 꽤 조심스러웠다.) 흔쾌히 받아주던 그의 모습과 우리가 잘 내려가는지를 지켜보고 떠나가던 그의 뒷모습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을 모습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짐가방을 쇠사슬로 묶어가면서까지 지켜야 하는 인도에서 짐을 20m이상 내팽개쳐 놓으면서까지 어리버리 외국인들을 도와준 그 성의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저 멀리 뉴데리역이 희미하게 보인다.


그래도 어찌어찌 첫 번째 고비를 넘기고 공항전철을 타고 뉴델리역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진짜 인도 풍경을 처음 마주한 소감은 <혼돈의 카오스> 그 말 밖엔 떠오르지 않았다. 생긴지 몇년 안된 깔끔한 공항과 공항 전철로 포장된 인도가 아닌 또 다른 인도를 마주하게 된 순간이었다.

미세먼지로 뿌연 대기 공기와 새벽의 어둠 속에서도 귀를 찌르는 경적소리의 릭샤와 차들, 길 중간중간 늘어질 대로 늘어져 퍼진 개떼들 그리고 코를 찌르는 냄새, 우리에게 달라붙는 사기꾼까지 정말 눈뜨고 코베이기 딱 좋은 곳이란건 이곳을 두고 말한게 아닐까 싶었다.


뉴델리역에 들어서기 전 우리가 뽑아온 e티켓을 역 앞에 서 있던 여자아이들 무리에게 보여주며 어느 게이트에서 타야 할지 물어보기로 했다. 그때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불안한 아이들의 눈동자 사이로 허름한 행색의 한 아저씨가 끼어들어 꽤 자신 있는 말투로 3번 게이트라고 말하자 불안한 눈동자만 굴리던 여자아이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있게 맞장구를 쳐댔고 또 철썩같이 믿어버렸다. 


릭샤 천국

이미 공항에서 한번 당해놓고도 정신을 못 차린 걸까? 회색 운동복 남자 때문에 다시 한번 신뢰의 마음이 솟구치기라도 한 걸까? 그냥 우리가 바보였던 걸까? 그렇게 우린 또 당하고 말았다. 3번 게이트까지 어렵사리 찾아갔지만 우리가 타야 하는 기차 번호는 보이지 않았고 도대체 해도 뜨기 전에 몇 번이나 머릿속이 하얘져야 기차를 제대로 탈 수 있는 건지 시간은 흐르는데 또 한 번 머릿속이 하얘지고 있었다. 


이젠 누군가에게 뭘 묻는다는 게 무서울 지경이었으나 또 그렇다고 이보다 더 나은 방법 또한 없었기에 우리 앞을 지나던 행인에게 또 한번의 모험을 감행했고 정말 하늘이 우릴 버린건 아니신지 마지막까지 인도인들의 뻥 위에 놀아나다 기차를 놓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사땁띠 열차에서 주는 간식과 주스


인도 공항을 나서고 한 시간 반 정도에 일어난 이 상황은 인도 여행 내내 꽤 중요한 핵심 예습 경험과도 같은 것이었다. 내가 인도 여행 중 가장 곤란하고 힘들었던 점은 인도인들의 당당한 뻥이었다. 좋게 말해 뻥이지 알지 못하는 내용을 너무 당당하게 자신 있게 말해주는 그들 덕에 나는 사실 몇 번이나 곤란한 상황에 빠지곤 했다. 그때마다 왜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지 않는지 왜 뻥을 치는 건지 당황스러울 따름이었지만 후에 알게 된 인도인들의 나름의 이유에 이해가 되기도 했지만 헛웃음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인도인들은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는 글귀를 어디선가 읽게 되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싶었지만 인도인들은 본인이 알지 못하는 내용이라도 상대방이 원하는 대답을 해주지 못했을 때 상대방이 실망시키는 것보다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는 게 낫다는 인식이 있다는 것이었다. 내 인식과 머리론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대목이었지만 그들의 문화와 인식이 그렇다고 하니 그저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 밖에...


하지만 저런 내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인도인들의 사고방식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들의 나름의 배려와 상냥함이 엿보이기도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상대방을 실망시킬 바에야 뻥이라도 쳐서 상대방을 기쁘게 하자는 의도이니 도를 넘긴 했지만 그들 나름의 배려 이리라. 그리고 실제로 내 인도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에는 회색 운동복 남자를 비릇한 따뜻한 배려와 때로 과도한 오지랖으로 챙겨주는 인도인들의 정 때문에 만들어진 아름다운 기억 또한 그들의 과도한 배려 덕에 만들어질 수 있던 것이기도 하니 너무 뚜렷한 양면을 가진 빛과 그림자가 아닐까 싶다. 

작가의 이전글 인도 3. 드디어 출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