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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윤 Jan 21. 2022

타요 이모는 너무 감동이야

20220121

지난 주말

예쁜 선물 하나를 받았다.

주말 특근으로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시간도 없었지만

꼭 와야 한다는 친구의 반 협박에 집에서 일하던 복장에 비니 하나 눌러쓰고 친구를 만나러 갔다.


그리고 쭈뼛쭈뼛 나와 인사를 하는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친구의 딸 S가

나에게 봉투 꾸러미 하나를 내밀었다.

결혼이 빨랐던 친구의 딸은 올해 벌써 초등학교 4학년이다.

이제야 꼬물대는 친구의 어린 아기들보다 먼저 이모란 호칭에 선물 해준 아이다.


친구가 소곤소곤 귓속말로

어제 저거 고르느라 방학 때 현관밖에도 안 나가던 아이가

이모들 온다고 무려 시내까지 외출하셨었단다.

봉투를 뜯기도 전에 벌써 감동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봉투를 열어보니 양말 세 켤레가 들어있다.

다른 한 친구의 양말은 죄다 하얀색인데 내건 유독 알록 다록 하다

내 마음이라도 읽은 건지 아이 엄마인 친구가

"어제 추워 죽겠는데 이모들한텐 어떤 게 어울릴까? 이모들은 어떤 걸 좋아할까? 라며 심사숙고에 심사숙고를 거듭한 나름 맞춤형 선물이야. 일주일 용돈 3천 원인데 너네 둘한테 한 달 용돈 다 쓴 거야"


내가 양말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고 귀한 2주 치 용돈으로 이모들에게 어울릴 양말을 고심하고 있었을 모습을 생각하니 감동의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그런데 내건 왜 이렇게 화려한 거야? 나 너에게 어떤 이미지인 거니?

이모 이렇게 화려한 취향까진 아닌데... 흠흠


이모에게 어울릴 선물까지 준비하고 마음 쓸 만큼 이 아이가 큰 건가? 내 딸도 아닌데 대견하고 아쉽고 미묘한 마음이 일렁였다.

다른 어린이도 아니고 S에게 새해 선물도 받는 날이 오다니 세상은 역시 길게 살고 볼 일인가 보다.

S는 섬세하고 숫기 없고 낯가림도 심한 그리고 무려 나의 660 공식을 깨버린 첫 아이 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윤오는 6세 이하 60세 이상에게 참 잘 먹히는 타입이라며 나름 불패신화를

가진 공식이었는데 특히 6세 이하에겐... 처음으로 날 별로 좋아하지 않던 아이였다.


놀러를 가도 인사도 잘하지 않고 뚱하기만 했다. 아무리 불러봐도 외면하기 일쑤였다.

몇 번 비위를 맞춰보려 했으나 원체 좋아하질 않으니 속 좁은 이모는 쳇! 그럼 나도 안 놀아! 라며

더 이상 어울려 놀기를 포기했더랬다. 그러다 네 살 즈음? S가 타요버스에 한참 심취해 있던 때였다.

그림 그리기에 능숙지 않던 친구는 타요버스를 매번 그려 달라 조르는 아이를 내게 넘겨버렸고

나는 앉은자리에서 아의 "또, 또" 소리에 맞춰 약 세 시간가량을 타요버스만 몇십 장을 그려야 했다.

그땐 정말 눈감고도 타요버스 색칠까지 마칠 수 있을 지경이었다.


그게 꽤 기억에 남았는지 내 이름을 발음하기 힘들어하던 아이는 그 뒤로 나를 타요 이모라 부르기 시작했다.

내 앞에선 여전히 뚱하고 인사하길 거부하긴 매 한 가지였는데 이상하게 또 없으면 그렇게 타요 이모 노래를

부르며 찾더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러다 막상 찾아가면 여전히 뚱한 아이의 모습에 날 찾긴 한 거냐며 되물으면 몰라 그렇게 찾더니 또 저래.라고 친구조차 자기 딸을 모르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할 뿐이었다.


나랑은 정말 상극 같던 이 아이의 취미는

집에서 그리고 만들고 접고 오리고 붙이고

낯설지 않은 내 과거 판박이 같은 모습이었다.


아이도 본인과 내가 조금 비슷한 과란걸 알게 된 건지 나에게 함께 그림을 그리자고 이야기한다던지

만들기 놀이를 자랑한다던지 내가 가져간 뜨개 꾸러미에 관심을 보이며 제법 내게 꽤 친밀한 관심을 표해주었다. 이 겨울이 끝나기 전 그 아이에게 꼭 목도리 뜨는 법을 알려줘야겠다. 어릴 적 내 모습과 꼭 닮은 그 아이에게 내가 딱 11살이 되던 해에 배운 목도리 뜨기 방법을 선물해야겠다.


나의 첫 조카

나의 첫 660 공식 파괴자

아마 나의 첫 뜨개 제자가 될 사랑스러운 이 아이와

나는 왠지 꽤 절친이 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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