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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윤 Jan 04. 2022

연하장이 사라졌다.

20220104

12월 30일 저녁 퇴근길 문득 연하장을 돌려볼까란 생각이 떠올랐다. 

별 이유는 없었다. 말은 다들 연말이라 하지만 연말 느낌도 새해 느낌도 체감 되질 않았다. 

코로나로 송년회도 없고 어릴 때처럼 tv를 끼고 살아서 연말 시상식으로 연말 기분을 느끼는 나이도 지나있었다. 며칠 이르게 주고받고 있는 카톡의 새해 복 많이 받고 내년엔 하는 일마다 잘 되길 바란다는 몇 줄의 메시지들이 연말과 새해를 느끼게 해주는 전부였다. 


그래서 그 메시지를 연하장에 담아 보내 보기로 했다. 

받는 이들만이라도 새해 기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뿌듯하지 않을까 하는 나름의 아이디어였다. 

곧바로 집으로 향하지 않고 시내에 있는 좀 큰 펜시점에 들러 카드 코너 앞에 다다르고 나서 적잖게 당황해버렸다. 


생일카드, 감사카드 등등이 빼곡히 있는 카드 코너에는 연하장의 모양새로 있는 카드는 단 한 장도 없었다. 

1월 1일이 한참 지난 것도 아닌데 정말 단 한 장도 없다니, 예쁜 연하장 받고 좋아해 줄 사람들의 얼굴만 떠올렸다가 막상 마주한 현실은 이런 거라니. 직원을 다급하게 찾아 물어보았지만 거기 없으면 없는 거란 건조한 답변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그렇구나. 이젠 연하장을 쓰는 시대가 아닌 거구나. 이 큰 펜시점에서 연하장 한 장 내놓지 않은 건 품절이 되었거나 사람들이 찾지 않으니 굳이 갖다 놓지 않았다는 두 가지 결론뿐인데 아무래도 전자 같진 않았다. 

생각해보니 나도 내가 연하장을 언제쯤 써봤더라 떠올려봐도 최근 몇 년간은 확실히 없었다. 


나도 잊고 있었고 다른 이에게도 잊혀간 연하장이었나 보다. 

어쩔 수 없이 당장 내일 회사 동료들에게 돌릴 몇 장의 감사카드, 생일 카드 외에 아기자기한 카드 몇 장을 골라 그날 밤 연하장 메시지를 빼곡히 담았다. 

몇 명 쓰지도 않았는데 손이 아파왔다. 요즘 핸드폰과 컴퓨터로 모든 쓰기 역할을 대신하다 보니 펜을 쥐고 글을 오랫동안 쓰는 데에는 힘이 들었다. 노트필기 몇 장쯤은 거뜬히 해내던 내 손은 공책 한 페이지도 안될 분량에도 이미 힘에 겨워할 만큼 나약해져 있었다. 대충 휘갈겨 쓰고 싶진 않아 꽤 정성 들여 쓰려고 했지만 네 번째 연하장부턴 글씨체가 무너져 가고 있었다.  


한 글자 한 글자 정성 들여 쓰는 메시지도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로 보내던 뻔한 메시지와는 다르고 싶었다. 아니 종이에 메시지를 적어 보낸다는 건 가볍게 보내던 메시지엔 담을 수 없는 진심을 담을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상대방이 바로 보고 반응할 수 없다는 점은 조금 낯간지러운 소리도 응원도 마음도 다 담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편지의 힘이었다. 


다음 날, 다른 시내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들른 펜시점엔 반갑게도 연하장 분위기 물씬 나는 고풍스러운 연하장들이 즐비했다. 역시 아직 나처럼 연하장을 찾는 사람이 다 사라진건 아니란 반증 같아 기쁜 마음에 몇 장을 또 골라 들었다. 연하장 쓰는 게 보통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된 다음 날이라 정말 많이 친한 친구 넷에게만 메시지를 담아보았다. 회사 동료들에게 쓸 때와는 또 다른 더 깊은 진심이 뭍어 나왔다. 


그리고 그들의 소중함이랄까 고마움이랄까 왜 메시지로 보낼 때 느끼지 못 해던 기억과 감정들이 밀물 들이닥치듯 내 마음과 머릿속을 가득 채우게 되는 건지 이게 편지의 힘이었던가? 이게 그 힘이라면 왜 그 옛날에 그 수많은 연애편지로 수많은 연인들이 탄생한 건지 조금 납득이 될 만도 하다. 


연하장을 받은 이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연하장이 뭐예요?라고 묻던 어린 동료의 반응도 있었고 회사의 가장 어린 동료는 애니메이션에서나 주고받는 걸 봤지 실제로 받아보는 건 처음이라며 감격해하는 반응부터 꽤 많이들 연하장이란 건 처음 받아본다며 감동하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펜시점에서 연하장이 사라질만했던 건가. 


친구들 또한 요즘 다들 카톡으로나 주고받던 새해 메시지였는데 연하장을 받게 되다니 너무 감동이라며 죽어서도 친구를 하자는 감동이 너무 과했던 친구의 반응과 다정한 너의 마음에 새해부터 마음이 따뜻해졌다는 메시지까지 한 장 한 장 써 내려가며 기운이 쪽쪽 빠지는 기분이었건만 이 맛에 쓰는 건가보다.

아, 물론 깜짝 이벤트처럼 우편함에 넣어 놓고온 내 연하장을 먼저 발견하신 친구 어머니께서 윤오에게 청첩장이 왔다는 오해를 잠깐 사기도 했지만 그 또한 직접 써서 보낸 연하장이었기에 일어날 수 있는 재밌는 해프닝이었기에 친구와 메세지로 깔깔대며 한번 웃고 말았다. 

꽤 여러 장의 연하장을 보내 놓고도 내게 돌아온 연하장은 없지만 돌아온 감사인사들로 내 새해의 시작도 꽤 특별하게 풍성해졌으니 이걸로 내 신년 또한 특별해졌으니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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