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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윤 Jan 25. 2022

오 왜 그럴까 조금 낡은걸 좋아해

20220124

이제 핸드폰을 좀 바꾸는게 어때?

오늘 또 들은 말이다. 


신형 핸드폰이 매년 쏟아지고 오래 써도 2년 약정 기간 정도 맞춰쓰는게 최대인 요즘 시대에 

5년이 넘은 내 핸드폰은 보는 사람마다 눈에 띄는 고대 유물쯤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이제 핸드폰 좀 바꾸란 말에 "왜~ 아직 쌩쌩해 현역이야"라는 말로 맞받아 치는게 자동으로 술술 고정멘트처럼 나올 만큼 나는 이 말에 익숙해져 버렸다. 

사실 내가 가진 이런 고대유물급 물건은 한 두개가 아니다. 


예전에 사용하던 CD플레이어를 들고 마지막 수리센터 방문 때는 수리기사님께서 이 정도면 사람으로 치면 100살 넘은 노인이에요. 더 이상 사용하는건 노인 학대에요. 이제 그만 놔주세요. 라는 말까지 들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 말을 듣고도 내 노인학대는 6개월 정도는 더 이어졌지만...


그 밖에도 비와 눈과 자외선에 찌들어 얼룩덜룩해진 8년쯤 쓴 가죽가방을 빈티지라고 우기며 들고 다니는 내모습에 그건 빈티지가 아니라 그냥 지지리궁상이라고 놔주라던 친구의 말에 눈물을 머금고 떠나 보낸 가방부터 내 손에 들어온 이상 쉽게 나가는 물건은 찾기가 어려운 편이다. 


신발장에 신발이 가득하지만 나는 내 발에 맞게 잘 늘어난 3년된 하얀스니커즈를 애용한다. 

지난번 스니커즈는 5년을 신다가 바닥에 구멍이 나서 바꿨다. 스니커즈가 그렇게 없는 편도 아니다 

신발장 안에 뜯지도 않은 런닝화부터 스니커즈까지 최소 6켤레는 될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한켤레의 낡은 스니커즈를 유독 좋아한다. 적당히 알맞게 낡아있는 그 스니커즈를


내 낡은 물건들 중 최고는 중학교시절 체육복 바지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학교에 들어간 해에 리뉴얼 된 촌스러운 보라색 체육복바지를

나는 여태 끼고 살고 있다. 동창 친구들에게 이 이야길 하면 기함들 하지만 

교복은 버릴지언정 세상에서 가장 편한 이 체육복 바지는 포기할 수가 없다.  


나는 이 처럼 낡고 손 때 뭍은 물건들을 좋아한다. 

미니멀리스트 분들은 물건에 정을 붙이고 사연을 붙이는건 미련한 짓이라고들 한다. 

그렇게 모든걸 끌어안고 살 순 없다고 그 사실을 나도 머리론 알고 있고 그래서 모든 낡은 물건을 끌어안고 사는건 아니지만 유독 애착이 가고 좋아하는 낡은 물건들이 있다. 


내 손에 내 몸에 내 마음에 딱 알맞게 맞춰진 세월의 흔적과 주름과 손떼는 돈을 주고 사려고 해도 살 수 없는 나만의 시그니처가 담긴 물건들 이기에 나는 낡은 물건들을 좋아한다. 내 영혼이 깃들었네 하는 거창한 수식어는 붙이지 않겠지만 내 몸과 서로 맞춰가며 길들여진 그 물건들의 낡음을 사랑한다. 


나를 위해 애써준 그 노고와 나와 함께한 그 세월을 나는 좋아한다. 

그래서 노인학대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더 이상 수리가 불가능 하다는 말을 들을때까지 그 cd플레이어를 고집했다. 그 CD플레이어의 시작이 내 손에서 시작되었으니 내 손에서 떠나보내고 싶었다고 하면 미련한 감정이입 이려나? 그냥 기계 덩어리일 뿐이라고 현대인의 필수품이라고 하는 핸드폰 속도가 그래서야 어떻게 쓰겠냐는 핀잔을 듣곤 하지만 그냥 내 핸드폰의 마지막까지 보고 싶은건 나의 욕심인걸까? 또 한번의 노인학대인걸까? 


쉽게 취하고 쉽게 바꾸고 쉽게 버리는 세상에서 

나의 이런 행동은 미련함과 지지리궁상 그 어드매일지도 모르지만

이 세상에 쓰이기 위해 만들어 졌지만 유행에 뒤쳐져서 조금 낡아서 한번 고장 났다고 버려지는건 사람이건 물건이건 참 서글픈게 아닐까 싶다. 노인학대라고 놀려도 좋다. 지지리 궁상이라해도 좋다. 과한 감정이입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내 낡은 물건들이 그 쓰임을 다하는 그 날까지 함께 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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