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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금과 불행 사이

빗속 교통사고를 목격하고

by 이디뜨

"비 오는 불금이네."

아이를 차에 태워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익숙한 시간, 익숙한 차, 익숙한 길. 유일한 변수는 날씨였다.

급격하게 낮아진 온도에 비까지 더해지자 어쩐지 발걸음을 재촉하게 되는 그런 금요일 밤이었다.

금요일 밤 10시쯤은 학원들이 일제히 마치는 시간이다.

정차해 있거나 이동 중인 차들이 많고, 비까지 와서 혼잡함이 1.5배는 더했다.


가는 빗줄기가 속도를 올려 내리자, 어느새 차 앞유리는 차들의 불빛이 빗물에 번져 무지갯빛 시야를 만들어 냈다.

라디오에서는 연신 비노래가 흘러나왔다.

'이런 날은 특히 운전 조심해야 돼.' 하고 생각하며 나는, 우회전을 하기 위해 맨 오른쪽 차선으로 옮겨갔다.




마치 생각이 끝나자 사건이 눈앞에 펼쳐진 듯, 앞에 정차해 있는 시내버스가 이상했다.

버스 기사분이 내려서 누군가와 함께 시내버스 앞쪽 출입구 밑에 무언가를 살피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도로 바닥에 사람다리가 보였다.

심장이 쿵!

얼핏 바퀴 아래에 사람이 깔렸나 싶기도 했는데, 유심히 보니 그건 아니라 다행이었다.

"교통사고인가 봐. 어떡해. 119 부르자!"

"엄마! 잠깐만. 시내버스 안에 사람도 많고, 이미 신고했을 것 같은데?"

빗물이 10mm는 고였을 법한 도로 가장자리에 하얀 양말과 검정구두를 신은, 앙상한 발목을 한 사람이 미동도 없는 채로 옆으로 누워 있었다.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아니라면, 단 1초도 그렇게 누워 있을 만한 곳이 아닌 사거리 횡단보도 앞이었다.




얇은 다리가 교복 입은 학생 같아서, 내가 학원가의 붐비는 도로 위 운전자라는 사실이 새삼 아찔했다.

'학생이 횡단보도에서 길 건너려다 우회전하려는 버스에 치인 걸까?'

내 머릿속에 갖가지 상상이 떠오르는 가운데, 버스에서 승객들이 한두 명씩 내렸다.

이미 버스가 정차한 지 한참은 되었는지, 승객들은 각자 우산을 펼치고 누워 있는 사람을 슬쩍 한번 보고는 저마다 발걸음을 옮겼다.

새로 버스를 타든, 택시를 잡든 해야 한다고 치자.

몰려들어 웅성웅성 걱정하는 다급한 모습이 아니어서 사고경위가 더욱 궁금해졌다.

내가 본 다리가 마네킹이 아니라 사람다리가 맞나 싶었다.




그때 구급차와 소방차가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좌회전을 하기 위해 신호를 받고 있었다.

복잡한 사거리 뒤로 늘어선 차들의 꼬리가 점점 길어졌다.

버스 바로 뒤에 있던 내 차를 빨리 빼주어야 할 것 같아서, 나는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옆좌석에 앉은 딸아이가 고개를 돌려 밖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엄마! 근처에 오토바이가 쓰러져 있네. 학생은 아닌 것 같아. 헬멧을 써서 다행이다. 써도 충격이 컸겠지만."

"오토바이와 버스가 좁은 길에서 우회전하려 하다가, 버스 기사님 시야에 안 보여서 오토바이를 친 걸까?"

부디 큰 사고가 아니길, 그 사람은 충격으로 잠시 동안 기절한 것일 뿐이길 간절히 바랐다.




각자의 이유로 마음이 불타는 어떤 금요일.

떡볶이나 치킨을 시켜 식탁에 둘러앉아서 "불금이다." 하고 외치곤 했던 그런 수많은 날들 중의 하루일 뿐이었다.

누군가는 가을비로 차갑게 적셔진 도로에 누워, 모르는 사람들의 반쯤 무관심한, 반쯤 한발 물러선 걱정의 시선을 받았다.

그 시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몇 분 전의 나처럼 당연한 듯 불타는 금요일외쳐대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저 아무 일 없는 일상이니까.




가족들이 별일 없이 집에 잘 모이는 것, 하루를 마치고 가족들 얼굴을 보는 일을 시계 보듯 가벼이 여겼다.

시계 초침의 인생처럼 당연하게 반복되어서, 가끔은 만나면 반갑다는 인사에 인색한 날도 있었다.

'불금'이라는 말은 빗속에 미동도 못하고 누워서 구급차를 기다릴 일 없는, 내 가족의 사고 소식을 전화로 듣고 놀라서 주저앉을 일 없는 평범한 날들에만 해당되는 말이었다.

사고가 나의 일, 우리의 일이 절대 될 리 없다는 확신은 만용이다. 불안이라는 불청객이 가끔씩 우리 마음에 경종을 울려 줘서, 조심이 습관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나는 이날 이후로, 불금은 물론이고 그 어느 날에도 의미를 부여하기가 두려워졌다.

손에 든 유리어항처럼 일상은 너무 쉽게 깨질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잔잔한 물속에서 수초 사이를 가르며 뽀그르르 헤엄치는 구피라고 생각해 보자.

돌 뒤에 숨기도 하고 가족과 친구와 장난도 치며 위아래, 좌우로 헤엄치는 매 순간은 기적이다.

손에 든 어항이 무사히 옮겨지고 있을 때나 유지되니까.

그저 아무 근심 없이 잠들 수 있는 하루, 아무 이름도 붙이지 않고 감사로 마무리할 수 있는 하루라면 족하다.

그날 차갑게 누워 있던 그분이 부디 무사하셨길 바란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그분의 무사함을 빌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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