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도쿄'를 읽고
엄마가 돌아가시기 한해 전 겨울, 크리스마스즈음이었다.
엄마의 항암이 끝나기를 기다려 일본 여행을 예약했다.
상태가 차츰 호전되기도 했고, 투병에 지친 엄마에게 기분전환을 시켜드리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엄마 평생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해외여행을, 꼭 한번 같이 가고 싶었다.
자유여행은 엄마가 힘드실까 봐, 온천 일정을 낀 패키지여행을 선택했다.
엄마는 많이 걷는 일정에는 버스에서 내리지 않는 대신, 마음이 움직이는 곳에 잠시 내려서 소녀 같은 모습으로 즐거운 순간을 만끽하셨다.
앵무새를 많이 볼 수 있는 곳에서는 직접 팔을 뻗어 앵무새와 사진을 찍었다.
녹차밭에서는 구수한 차 한잔과 녹차 아이스크림을 맛보며 밝은 미소를 짓기도 하셨다.
단 하나, 음식이 문제였다.
엄마는 생각보다도 훨씬 음식을 못 드셨다.
환자였다는 것을 감안하고라도, 엄마는 비위가 약한 편이었다.
그런 엄마의 특성을 더 예민하게 살펴서 준비해야 했다.
고춧가루가 안 들어간, 달고 짠 일본음식 중에는 엄마가 드실 것이 거의 없었다.
밥과 함께 나오는 미소된장국도, 생선구이도, 일본식 우동도 한입 드시고 수저를 놓으셨다.
숙소에서 햇반과 김, 김치, 튀김우동 컵라면 국물로 느끼한 속을 달래셨다.
엄마를 위한 여행이 엄마를 고생시키는 여행이 된 것 같다는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엄마는 조용히 수저를 놓고 물을 들이키며, 기다려 주시는 행동 말고는 어떤 내색도 안 하셨다.
"비싸기만 하지 먹을 거 없다."
"엄마 이런 음식 싫다."
"왜 이렇게 많이 걸어?"
응당 나올 수 있는 불평불만이라도 한 마디 하셨다면, 나는 덜 미안했을까?
초등학교 고학년 두 손주들도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다정한 말씀뿐이었다.
"ㅇㅇ 이랑 같이 오니까 좋네. "
"ㅇㅇ이가 할머니 손 잡아 주니까 좋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치고 우에노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피자는 잘 드시지만 잃은 입맛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때, 멀리까지 달큰한 향을 풍기는 군고구마 리어카를 보시고는, 엄마 눈이 반짝였다.
나는 얼른 달려가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군고구마를 한 봉지 샀다.
"얘들아! 할머니 드실 음식 찾았다."
노란 봉투에 든 군고구마를 받아 드신 엄마는, 3일 만에 입맛을 되찾으셨다.
그때부터 군고구마를 조금씩 떼어 물이랑 드시며 남은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그해 겨울 엄마와 함께한 도쿄 여행은 아직도 내게 두 가지 다른 감정으로 남아 있다.
'엄마 건강에 무리였어. 내 욕심이었어.'
'엄마와의 소중한 추억을 남겼으니 다행이지.'
엄마가 돌아가시고 작은엄마가 장례식장에서 말씀하셨다.
"엄마가 딸이랑 일본여행 다녀와서 얼마나 좋아하신 줄 아나? 잘했어. 잘한 거야."
춥지 않은 겨울의 도쿄. 깨끗한 거리와 고요한 풍경.
병색을 잠시 거두고 앵무새들과 군고구마에 눈을 반짝였던 엄마의 시간.
오늘 밤엔 그때 찍은 사진들을 찾아보며 엄마와의 추억을 되새기고 싶다.
2016년 겨울 시즈오카 현의 한 화조원에서
'엄마의 도쿄'(김민정)', 도서관에서 제목만 보고 눈길이 머문 책
'엄마의 도쿄' 책은 20년 동안 도쿄에서 타향살이하며 느낀 감정을 엄마와의 에피소드로 그려낸 에세이이다.
제목처럼, 작가 본인보다는 엄마의 삶과 그 속에 담긴 애환을 딸로서 섬세하게 그려냈다.
이 책에서 건진 다섯 개의 키워드는 거의 10년 전 내가 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여행을 되짚어보게 했다.
'엄마, 도쿄, 암, 딸, 음식'
지방의 한 목장을 운영하는 부잣집으로 시집간 엄마는, 38세에 남편을 여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자식 둘과 먹고살기 위해 신주쿠에서 심야식당을 운영하던 엄마는, 암을 선고받아 수술을 받고도 심야식당 문을 닫지 못했다.
인생 이야기로 인연을 맺어온 손님들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심야 식당을 닫을 수 없다는 이유로, 작가는 엄마가 평생 가보고 싶어 했던 바티칸과 로마, 밀라노를 홀로 여행한다.
가는 곳마다 잠시 머물러서 다양한 형태의 묵주를 사면서, 두 아이를 홀로 키우며 목주를 놓을 수 없었던 엄마의 인생을 이해하게 된다.
작가의 엄마는 요즘 말로 '쿨'한 분이셨다.
이방인이자 솔로로 두 아이를 키우며 특유의 씩씩함과 지혜로 작가에게 여러 교훈을 남겼다.
"당당한 태도로 살아. 자유롭게 선택하고 마음껏 즐겨. 그렇지만 삶의 모든 책임은 네게 있다는 걸 잊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