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부모님에 대한 말은 후에 할 거라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만, 이미 유아기에 자리 잡은 부정적인 성정이 바뀌긴 쉽지 않았죠. 게다가 어른들이 더 안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었고요. 저도 노력을 안 해본 건 아닙니다.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도 해보고 말을 좀 아끼면서 조금 더 당차게 말하는 연습도 했어요. 그나마 다행인 건 그곳에서 같이 어울려주는 친구들이 생기긴 했지만 그마저도 얼마 안 가 떨어졌습니다.
딱히 시비 걸지 않아도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때리거나 화장실에서 발을 거는 등 수위는 점점 높아졌고, 집에서 게임만 한다며 혼내는 이모와 엄마의 잔소리에도 공부는 뒷전이었어요. 공부에 집중하라고 보내 놨더니 교우관계도 성적도 점점 더 악화되자 다시 전학을 했습니다. 이번엔 가족 품으로 돌아와서요.
저는 이미 자기혐오가 강한 상태였고, 소극적인 답답한 사람이었어요. 그건 누가 봐도 좋은 먹잇감이죠. 또 끌려다니고 놀림받는 일상에, 어머니는 교회를 다니게 했어요. 거기서 만난 같은 학교 여자애와 친하게 지내면서 왕따 일상에서 조금 벗어났죠. 그 애가 속된 말로 쎈캐였거든요. 실제로도 체급이 다른 아이였고요.
교회를 다니지만 겉멋 들었더라고요. 나중엔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남의 아파트 옥상에서 맥주 마시는 모습까지. 저에게 권했지만 저는 극구 사양했어요. 학생이 무슨 담배와 술인지 그건 좀 아니라고 생각돼서요. 그리고 그 아이는 제가 재미없다 생각했는지 버리더라고요. 서로 집을 드나들며 동생까지 친하게 지냈는데도요.
그리고 파생된 다른 친구들과 어울렸지만 그마저도 와해됐습니다. 어떤 불량한 여자애가 한 친구를 주차장에 끌고 가서 폭력을 행사했고, 저는 구할 수 없어 그저 앞에서 기다렸는데 같이 기다린 친구와 집에 갔던 다음날 저를 무시하더라고요. 왜 인지는 몰랐어요. 그저 당할 뿐.
그리고 불량한 여자애는 이번에 제가 재수 없다며 화장실에서 때리더군요. 아프니까 하지 말라고 외쳤지만 그만두지 않았고 울먹거리며 다 맞고 나오니 전에 맞았던 친구와 데려다준 친구가 화장실에 들어오려다 나가더라고요. 아는데도 돕지 않았죠.
얼마 뒤에 주차장에서 맞은 아이는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집에 같이 데려다준 아이가 저에게 편지를 전해줬어요. 자기는 전해줬다면서 그 후로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요. 편지 내용에는 자기는 제가 말리지 않아서 미웠대요. 그리고 저 맞을 때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내용도 있었어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이제 와서. 그저 자기 짐만 덜을 뿐인 편지. 그날 찢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완전히 놀림감이 되었어요. 게임을 좋아해서 다녔는데 펌프 기계에서 뛰고 있으면 웬 후배들이 인사하길래 반갑게 인사했었지만, 그런 일련의 일이 생긴 후에는 인사하면 피식 웃으며 지나가더라고요. 코끼리가 펌프에서 뛴다며 놀리는 애들도 생겼고요. 당연히 그런 얘기를 들었으니 오락실은 못 갔죠.
그리고 2학년이 되는 해. 천만다행이랄지 지금까지 잘 지내는 절친을 만납니다. 저는 스스로 이 친구를 부처라고 칭해요. 중간에 속상한 짓 많이 했는데도, 계속 친하게 지내주고 고등학교도 같이 가고 힘들 때 맛난 거 사주고 그래 줘서요. 나중에 왜 이런 이상한 애랑 계속 친했냐고 물으니, 상종 못할 애네라고 생각한 적 있는데도 착하긴 착해서 그냥저냥 지낸 거라고 하데요. 솔직히 저한테는 은인이나 마찬가지예요. 이 친구 만난 후로는 누가 심하게 괴롭히고 놀리고 하는 일이 줄어들어서요.
이 친구와는 친해지고 서로 집을 엄청나게 드나들었습니다. 딱히 같이 놀지 않고 따로 놀아도 말 걸면 대답해주고 수다 떨다가 과자 먹고 그래도 편했거든요. 뭐 그래도 다른 아이들과 이런저런 사건들이 많았지만 이 후로는 왕따 생활을 청산했습니다. 나름 다른 친구들과 잘 지냈다고 할만했고, 고등학교도 그랬으니까요. 대학교 시절은 어땠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