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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선생 Jul 15. 2022

아이들과 문화생활

 

"선생님, 드라마에 나오는 재벌 같아요!"

 

내가 이런 소리를 들은 이유는 다름 아닌 '미술관'을 다녀왔기 때문이었다. 그때만 해도 페이스북에 일상을 자주 올릴 때였고, 나는 아이들과 온라인 소통도 적절하게 하는 편이라 애들이 내 여가활동을 잘 알 수밖에 없었다.  

 

미술관에 간다고 해봐야 분기에 한 번이 고작이었고, 뮤지컬이나 연극 관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내가 대단하게(?) 문화생활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거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 건 좋아해도 공연이 익숙하진 않아서 한 번 다녀온 게 다고, 무용은 모르는 게 더 많아서 제대로 된(내가 직접 돈을 지불하고 관람한) 공연은 한 번 정도밖에 없다.  

 

그런데 아이들은 내가 어쩌다 한 번 가는 미술관과 공연을 가지고 드라마에서 볼 법한 재벌을 연상했다. 자기들과는 너무 다른 세상의 이야기인 것처럼 말이다.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아이에게 되물으니, 아이의 입에선 그런 건 비싼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대극장 뮤지컬의 경우 아이들 시각의 고가는 맞으나, 미술관과 박물관은 고가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장소다. 아이와 대화를 해보니, 그 아이는 그런 곳에 가 본 경험이 전무했었다. 경험이 없는 아이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문화생활을 하고 있는 내가 신기했던 모양이었다. 아이는 더 나아가 "왜 그런 게 재미있어요?"라고 물었다. 제대로 된 경험이 없는 아이에게 박물관이 왜 재미가 있는지, 미술관을 뭐하러 가는지 이해를 못 하는 건 두말할 것도 없다. 그건 말로 설명이 불가능한 부분이었다.  

 

그림은 실제로 보면 그 질감과 빛, 색의 느낌이 다르다. 가까이서 볼 때와 멀리서 볼 때가 다르고, 거기서 오는 놀라움이 있다. 연극은 배우들의 살아있는 연기가 영화나 드라마와 다른 감동으로 다가온다. 뮤지컬은 시선을 뗄 수 없게 화려하지 않은가? 그 감동은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나는 아이에게 결국 말로 그것을 다 설명할 수 없었다.

 

내가 갓 성인이 되었을 때, 스스로 문화생활을 즐기러 갔던 친구들은 대부분 어려서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취미활동의 폭을 넓힌 이들도 있겠지만, 어려서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 보다 쉽게 문화예술을 즐겼다. 어려서 미술학원 좀 다녀본 친구들이 많아서 인지 친구들의 취미 활동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미술 전시를 보는 활동이다. 다양한 친구들과 함께 미술관을 가보면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관람을 한다. 도슨트의 설명을 듣거나, 전체적으로 훑고 마음에 드는 작품만 오래 감상하거나, 도록의 설명을 꼼꼼하게 보거나, 동행인과 그림을 두고 한참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친구들은 미술관을 즐겼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해 미술관에서의 활동이 자연스러운 친구들과 달리, 경험이 없는 친구들은 애초에 미술관에 가자는 제안을 의아하게 받아들이거나, 조금도 그 상황을 즐기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처음엔 나는 적응을 못하는 친구들이 의아했다.


대학생활 중에 유럽에 갈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나는 들떠서 루브르에 방문을 했었다. 유명한 작품들이 흘러넘치는 그곳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실 어떤 작품이 아니라, 바닥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던 아이들이었다. 지도교사로 보이는 사람이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저마다의 스케치북에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엄청난 화가가 되지는 않겠지만,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루브르는 그런 추억을 상기할 수 있는 따뜻한 풍경일 것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미술과 가까워진 아이들이 있어서 파리가 여전히 예술의 도시인 것은 아닐까 했다.


누구도 처음부터 문화 예술을 즐길 수는 없다. 어떤 예술이 자신의 취향이 될 것인지 처음부터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다. 경험이 있어야 알고, 느끼고, 배울 수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험이 필요하다. 어려서부터 다양한 문화 예술에 노출되는 경험이 필요하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는다.' 내 친구들 중에 미술관을 처음부터 즐겼던 친구는 단 한 명도 없다고 장담한다. 나 역시 처음부터 미술관에 흥미를 느낀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미술관이 낯설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다녔고, 그러다 보니 취향이 생겼고, 취향에 맞는 전시는 찾아보게도 되었다. 나에게도 어려운 문화 예술이 있다. 그리고 그런 분야는 명백하게 내게 경험이 없다. 무엇을 즐겨야 하는지 어디서 즐거움을 찾아야 하는지 전혀 모른다.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 어른이 되어 의식적으로 찾아보고 공부하려고 하지 않는 한 친숙해지기 힘들다.


"박물관 너무 싫어요. 재미없어. 루브르 왜 가는지 모르겠어요."


모든 사람들의 취향이 같을 수는 없다. 박물관을 싫어하는 취향의 아이도 있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그걸 싫어하는 취향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국립중앙박물관도 한 번 가보지 않은 아이가 있는 반면, 어린 나이에 루브르까지 다녀온 아이도 있다는 사실이다. 초등학생 때 가족과 프랑스 여행을 했던 아이는 루브르 이야기에 질색을 했다. 너무 재미없는 곳이었고 그곳에서의 시간이 아까웠다고 투덜거렸다. 그 아이의 투덜거림을 만일 내가 앞서 말했던 그 아이가 들었다면 어떤 얼굴이었을까? 당연히 두 아이는 서로 다른 지역의 아이들이었다. 초등학교 때 이미 해외에 있는 박물관까지 섭렵했던 그 아이가 있던 그 동네에선... 나의 취미생활은 그저 호불호의 차이를 가지는 활동이었다. 중고생이 되어 바빠서 가질 못하는 경우는 있어도, 어려서 대극장에서 뮤지컬 관람을 한 경험 정도는 당연히 있고, 방학마다 엄마 손에 끌려서 미술전시도 여기저기 다녀왔다. 우리 큰 조카도 중학교 겨울방학 과제가 미술관 다녀와서 감상문을 내는 것이었으니 억지로라도 안 다녀올 수가 없었다. 학교 과제로든 부모의 강권이든 미술관, 박물관, 뮤지컬, 연극, 발레, 클래식 공연 등 문화생활을 폭넓게 접하는 아이들이 있다.  


슬픈 것은... 아이들의 경험의 차이가 단순히 부모의 취향 차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양한 문화 경험이 많은 아이들이 있는 지역은 중산층 이상의 가정이 많은 지역이었다. 아이들은 대부분 비싼 아파트에 살고, 사교육도 다방면으로 받고 있고, 다니는 학교에서도 이에 발맞추어 예술 활동을 권장했다. 반면 문화 경험이 부족한 아이들이 있는 지역은 그렇지 못했다. 사교육을 할 여유(?)가 있으니 중산층 이상이라는 단순한 생각은 안 했으면 한다. 무리를 해서라도 사교육을 보내는 집들도 있고, 원비를 밀려가면서도 보내는 집들도 있다. 그런 부모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주말에 여유를 가지고 문화생활까지 챙길 수는 없다. 돈을 버시느라 바빠서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월에 한두 번 외식하는 시간이 다인 분들도 많다. 그런 가정의 환경 차이가 아이들의 문화생활의 차이를 가지고 온다는 것은 조금 서글프다.

 

나에게 재벌이냐고 물었던 바로 그 아이도 그런 경우였다. 삼 남매를 키우시는 아이의 부모님은 매일이 바쁘셨고, 아이는 평일은 학원에서 주말은 PC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금전적인 여유가 완전히 없는 집안은 절대 아니었다. 그래도 최신형 핸드폰을 쓰고, 편의점에서 본인 양껏 사 먹을 용돈도 주시는 집안이었다. 다만, 아이가 부모와 보낼 시간은 없었다.  

 

내가 아이들의 졸업 선물로 공연 관람을 해주게 된 건, 나의 큰아들 녀석이 한몫했다. 대화를 하다가 아이가 보고 싶어 하는 뮤지컬을 알게 되었고, 당시에 그 공연은 하고 있지 않았어서 대신 다른 대극장 공연을 골라 보여주었다. "제가 쌤 덕에 이런 걸 다 보내요."라고 말하던 아이로 인해서 나는 더 많은 아이들에게 이런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이들이 다양한 문화를 즐겼으면 좋겠다. 그것이 건강한 어른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문화 예술이 밑바탕에 있으면 아이는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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