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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선생 Sep 01. 2022

창과 방패

때때로 나는 학교 선생님들 강력한 방패에 맞서 싸우는 창이 되는 것 같다.


한 지역에서 오래도록 수업을 하다 보니 특정 학교의 분위기나 시험 형식을 추적(?)하게 된다. 공립학교의 경우 주기적으로 선생님들이 바뀌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패턴이 없지는 않다. 학교 선생님들의 의도는 그렇지 않겠지만, 치열한 시험의 전장에서 이기기 위해 전략을 세우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익숙한 형식을 반복하던 A학교에서 갑자기 긴 서술형을 예고하신 분이 계셨었다. 국어 답안이 5~7 문장에 달하는 긴 서술형이 되어서 해당 학교 아이들이 고생을 했었다. 단답으로만 이루어지면 다소 뻔해지는 정답의 틀에서 벗어나서 아이들의 사고를 키우기 위한 방법이셨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죄송하게도 우리 아이들은 그것을 대비하여 예상 질문의 모범 답안을 여러 개 만들고 그것을 암기했다. 한 문제에 적게는 9점 많게는 15점에 달하는 고난도 문제가 나오던 그 전투에서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다 승리를 했다. 예상 문제를 추리고 모범 답안을 만들어 암기를 했으니 우리 아이들이 서술형으로 인해 난처할 일은 없었다. 물론 A학교 내에서의 상황은 달랐겠지만 말이다. 이후로도 그 선생님은 서술형을 내는 일을 멈추시지는 않았지만, 2학기가 되어서는 확연하게 뻔한 문제의 유형으로 돌아가셨다. 무려 15점이나 걸려 있던 그 긴 문제로 인해서 아이들의 불만이 꽤나 많았던 것이 중요하게 작용했으리나 추측만 했었다. 과연 그 15점 문제에서 승리한 아이들 중에 학교 교육'만' 받은 아이들이 몇이나 되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분명히 그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수업시간에 한 것으로 충분히 할 수 있다고는 하셨었다. 나는 아이들이 수업에 했던 내용들을 살폈고 예상 질문을 뽑았고 우리 애들은 그 대비를 하고 갔었다. 창의적이고 각자의 개성이 담긴 답안 들이었겠지만, 그 답안들을 미리 작성하는 과정에 내 손길이 닿았던 것이 사실이다. 과연 그분은 우리 학생의 답안이 오로지 아이의 머리에서만 나왔다고 생각하셨을까?


A학교의 사례는 좀 특이한 경우로 치더라도, 고등학교 시험에 교과서 외부 지문이 나오는 일은 이제 너무 당연한 상황이다. 다양한 문학 작품을 공부하고 비교해 보는 것이 좋다는 점엔 나도 동의한다. 단지 가끔 이런 작품들을 준비하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사교육을 받지 않는 아이들에게 이게 과연 공정한 경쟁이 될까? 업계에 있는 내가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 모순이지만 말이다.


B학교에선 교과서의 일반적인 순서와 다르게 진도를 나갔던 적이 있었다. 해당 학교는 교육열이 높은 편에 속하는 곳이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방학 동안 중간고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B학교 선생님은 노골적으로 그 부분을 지적하셨다고 했다. 해당 학교 아이들은 당연히 골이 나서 성토를 했다고 했다. 철저한 대비책(?)을 세우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전적으로 나 같은 사교육 때문이다. 창이 날카로워지니 방패가 더 단단해지는 수밖에 없었으리라 생각했다. 덕분에 그 시험을 준비할 때 우리 학생들이 배로 고생을 하기는 했다. 


그 후, 나는 그다음 겨울 방학 교육과정을 완전하게 정비해 버렸다. 내 입장에선 단단한 방패가 막으니 내 창의 날을 더 열심히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 해의 B학교는 또 변칙으로 진도를 나갔다. 그리고 다시 해가 바뀌었을 때. B학교는 다시 다른 학교들처럼 정상진도를 나갔다. 아마도 나를 포함한 여러 창들이 두터워진 방패를 공격해서 더는 B학교의 전략이 통하지 않게 된 탓이리라.


이 전쟁에 승자가 있기는 할까? 모두의 마음은 오직 아이들이 잘 되는 것일 텐데 말이다. 물론, 소시민인 나는 그저 나의 안위와 우리 아이들의 안위를 위해서 산다. 그래서 나는 계속 창이 되어 공격하고, 이걸 막고자 학교에선 더 큰 방패를 만든다. 그러면 또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나와 같이 창을 든 사람을 찾겠지. 그렇게 모두가 이 끝없는 모순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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