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거북선생 Jun 02. 2022

그때 조금만 더 열심히 할 걸.

며칠 전 일이다. 집에 있을 때 핸드폰을 유심히 보지 않는 성격 탓에 부재중 전화를 뒤늦게 확인했다. 어쩐 일인지 졸업생 '태산(가명)'이가 전화를 했기에 나는 곧 문자를 보냈다. 혹여 무슨 일이 있나 염려스럽기도 하고, 모처럼 아이의 전화를 못 받은 것이 내심 아쉽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그저 실수였다고 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싶었지만 내심 아쉬웠다.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다음 날 아이는 학원에 놀러 와도 되냐고 물었다. 그걸 내가 거절할 이유가 있겠는가? 졸업생이 찾아오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없는데 말이다.


태산이는 커다란 덩치를 가진 아이라 어릴 때도 아이 같지 않았지만, 워낙 착한 아이라서 좋아했던 아이였다. 녀석은 말썽을 부리고 공부에 소홀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열을 올려서 빡세게 공부를 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리고 그 빡세게 공부하던 시기 때문에 우리를 여러모로 안타깝게 만들기도 했다. 오랜만에 나타난 태산이는 양손 가득 커피를 사들고 왔고, 선생님들에게 푸념 아닌 푸념을 늘어놓았다. 태산이의 푸념은 왜 자신을 그때 더 혼내주지 않았냐는 내용이었는데, 그 소리를 듣고 다 같이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때 그렇게 욕을 먹고도 부족했냐고 농담을 던졌는데, 태산이는 잘 안다며 웃었다. 공부를 안 한 것은 자기라고 말이다. 


애석하게도 아이는 지난해 수능에서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고, 재수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태산이는 공부를 안 하던 1학년과 달리 2학년은 정말 열심히 불태워서 공부를 했었다. 워낙에 영특한 것도 있었던 것 같지만, 그 시기에 녀석의 노력은 정말 최고였다. 잠도 줄이고, 매일을 빡빡하게 공부했다. 녀석의 그런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성적은 쑥쑥 올랐다. 이대로 고3까지 잘해서 수시를 쓸 것을 권했지만, 태산이는 오히려 다른 생각을 했다. 수시가 아니라 정시로 대학을 가겠다는 것이었다. 고1 성적 탓에 본인이 생각하는 상위학교에 수시를 넣을 수는 없으니, 오르고 있는 모의고사 성적을 믿고 정시로 가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문제는 지난해 수능은 문이과의 통합으로 인해, 문과 아이들이 수학을 고득점 받기 쉽지 않았고, 태산이는 완벽한 문과생이었다. 문과생 치고 수학을 잘 보는 것이었지, 이과생들을 다 이길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 한 해 더 고생하면서 저도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는지, 볼멘소리를 한 것이다. 정시 쓰는 자기를 좀 말려주지, 고1 때 공부를 좀 만 더 열심히 하라고 해주시지 그랬냐고 말이다. 물론, 우리는 모두 다 했다. 선생들이 매일 하는 일이 학생들에게 제발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 열심히 하라는 소리니까. 


태산이의 곁에서 많은 어른들이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열심히 하라는 말을 했음에도 본인이 느끼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노력은 스스로 해야 하는 문제이니까 말이다. 이 나이인 내 친구들도 학창 시절 이야기를 하면, 그때 조금만 더 열심히 할 걸 하는 소리를 하고는 한다. 나 역시 지난날을 생각하면 그런 소리가 나온다. 아 그때 조금만 더 열심히 할 걸. 그러고 보면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후회하는 동물인가 싶기도 하다. 이번 수능은 더 잘 준비해서 좋은 결과를 얻길 바라는 마음으로 응원도 하고 조언도 해서 보냈다. 내년 이맘때는 웃으면서 녀석을 만나면 더 좋겠다. 태산이가 이번에는 절대 후회하지 않도록 오늘에 최선을 다하길 응원한다.



*어제 저희 집 인터넷 장애로 인해 올라오는데 문제가 좀 있었네요.

작가의 이전글 해외 살이 아이들의 국어 공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