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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선생 Jun 01. 2022

해외 살이 아이들의 국어 공부

국어는 도구 과목입니다.

*모든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국어 선생이기 때문에 하게 되는 조금 특별한 수업이 있다. 바로 외국에서 온 학생들의 수업이다.



우주는 해외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5학년 무렵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내가 아이를 만났을 때는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우주는 그 학년에 맞는 어휘력을 갖추지 못했었다. 딱히 한국어 대화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니 아무도 우주의 상황을 짐작하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중학생 우주의 어휘력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낮았다. 원래 내 수업에서 국어 어휘는 중요한 부분이기도 했지만, 우주가 모르는 어휘를 하나하나 정리해 주었다. 귀찮을 정도로 아이들 어휘를 챙기고 있는 나를 처음엔 다른 과목 선생님들이 이해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2년 정도가 지난 어느 날, 우주의 담당 사회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선생님, 그 단어 하는 거 좋은 거 같아요. 우주가 어휘력이 좋아지더니 사회를 이제 곧잘 해요." 이후로도 우주는 꾸준히 성장했고 목표하던 대학 입학까지 성공했다. 국어가 도구과목이라는 말은 정말이지 이럴 때 여실히 증명된다. 어휘 학습은 아주 작게 내리는 보슬비라서 티는 안 나지만 땅 속 깊숙하게 촉촉하게 해 주기 때문에 결국 그 땅에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게 한다. 아주 오래 걸리지만 말이다.


강이는 해외에서 중학교 1학년 과정까지 마치고 온 경우였다. 한국어 발음이 살짝 어눌한 것에 비하면 의사소통면에서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수업 시간에 대답하고 이해하는 부분을 보아도 모든 것이 괜찮다고 깜빡 속을 뻔했다.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정해진 시간 안에 필기를 하고 문제를 풀면서였다. 강이의 필기 속도는 현저하게 느렸다. 물론 귀국한 지 반년도 안 되었을 무렵이라 어색해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지문이 길어지고, 문제를 읽고 이해하여 답을 맞혀야 하는 상황이 되자 강이는 다른 하위권 친구들보다 속도가 배로 느려지기 시작했다. 어떤 문장은 모국어처럼 이해했지만, 어떤 문장은 강이에게 외국어처럼 인식되고 있었다. 가끔은 적절한 단어가 한국어로 전환이 되지 않는 문제까지 보였다. 강이의 부모님 중 한 분이라도 한국분이 아니었다면 이해가 좀 더 되었을까. 앞서 사례로 말했던 우주의 경우보다 강이가 더 심각한 수준이었는데, 사실 우주는 부모 한 분이 외국분이었다. 때문에 우주는 정확하게는 이중언어 구사자였다. 반면 강이는 양친이 한국 분임에도 불구하고 현지에서 한국어 교육에 다소 소홀하셨던 것으로 보였다. 강이의 손 위 형제는 보다 더 심각한 경우로 집에서는 현지어로 여전히 대화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하늘과 바다는 아버지의 일 때문에 온 가족이 해외 거주 중이었다. 현지의 학교 생활을 하다가 그곳의 방학이 되면 어머니와 아이들만 한국에 들어와서 지냈는데, 그 기간 동안에 학원에 나왔다. 아버지의 해외 지사 파견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오면 첫째 하늘이는 고등학생, 둘째 바다는 중학생이 된다고 했다.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국제 학교를 다녀 영어는 걱정이 없지만, 수학은 한국 교육과정의 난이도가 걱정이라서 방학 특강을 시키신 것이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사실 국어였다. 주 생활언어가 영어로 바뀌어 버린 아이들은 영어로 사고했다. 때문에 아이들의 국어는 초등 저학년 수준에서 멈춰 버렸다.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수학 문제 역시 지문이 길어진다. 아이들은 그 문제를 이해하지 못해서 문제를 풀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점점 아이들의 국어가 엉망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부모님은 아이들의 국어 특강 수업을 요청하셨다. 학원 측에선 수학 수업이야 방학 특강으로 선행 수업이 있으니 괜찮았지만, 국어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때문에 결국 두 아이만을 위한 특별 수업이 진행되어야만 했고, 결국 해외 유학을 하면서 영어에 비용을 쏟듯이 국어에 공을 들여야만 했다. 그럼에도 그분들이 그 수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결국 아이들이 돌아와서 살아야 할 곳은 이 땅이기 때문이었다.


산이는 부모님을 따라서 해외로 나갈 예정인 초등학생이었다. 아직 어린아이였지만 돌아오면 한국에서 중학교를 다녀야 했다. 산이의 어머니는 그런 아이의 교육문제로 상담을 했다. 꾸준하게 국어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드렸고, 산이의 어머니는 그것을 대비해서 아이의 수준에 맞는 책과 학습지를 넉넉하게 구매하셨다. 수년 치를 한 번에 살 수는 없으니 당장 일 년 정도를 대비해서 나가신다고 했다. 현지에서 아이를 가르치는 것에 고민이 많으셨지만, 매일 조금씩 꾸준히 하는 것만 잊지 않으셨다면 산이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 잘 지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도 내가 만난 아이들의 경우는 긍정적인 사례가 더 많다. 국어 학습을 우려한 부모가 부족함이 없게 신경을 쓰다 보니 나와 만났기 때문이다. 하늘과 바다의 사례처럼 매년 주기적으로 한국에 들어와 특별 수업을 받아도 될 형편이 되지 않는다면, 해외 살이 학생의 가장 현명한 선택은 산이의 어머니가 택하신 방법이다. 책을 챙겨 나가서 꾸준하게 독서 활동이라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강이나 우주처럼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국어 실력이 아이의 다른 학습까지 방해하게 될 것이다. 아이의 성실함으로 비교적 잘 넘기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아이가 성장할 기회를 빼앗는 것이다.


특히 주의해야 할 나이 때는 초등 고학년부터 중등까지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의사소통의 범위를 넘어서 고차원적인 언어를 습득해 나가는 시기이며, 추론적 사고를 학습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아예 머물고 있는 현지에서 대학 졸업까지 마친다면 모르겠지만, 한국으로 돌아와 고등학교 생활을 한다거나 대학에 진학할 거라면 국어가 부족한 것은 치명적이다.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해 영어권 국가로 유학을 나가는 이유는 그래야 더 많이 저 자주 더 자연스럽게 더 풍부하게 영어를 접하기 때문이다. 언어라는 것이 원래 그렇게 학습이 되기 때문에 그런 방법을 택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국어도 언어다. 다른 언어로 생활하는 곳에 오래 지내면서 아이들의 국어 실력이 좋아지지 않을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내 사촌은 아주 어린 시절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초기에는 한인들이 많이 있는 LA에 살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이주했고 긴 시간 동안 내 사촌이 접한 이웃들은 한국인들이 아니었다. 부모님이 완벽한 한국어 구사자고, 집에서는 한국어만 사용함에도 내 사촌은 한국어로 말하는 것이 어설프다. 병원이라는 단어를 몰라서 hospital이라고 말한다. 알아듣는 말의 수준도 그렇게 고차원적인 단어들은 아니다. 어쩔 수가 없다 사촌에게 한국어는 외국어이니 말이다. 그러나 딱히 그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 사촌은 국적이 미국이고, 그곳에서 대학을 나왔고, 직장을 다니며 배우자는 한국계가 아닌 미국인이다. 앞으로도 그 가족은 잠깐의 여행 정도로만 한국을 방문할 것인데, 코로나 이전에도 그 방문주기는 5년이었으니 남은 삶 동안 얼마나 더 한국에 올지 모른다. 그러니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에 한국으로 돌아와 삶을 이어나가야 한다면, 현지에서 국어 공부를 멈추면 안 된다. 그리고 한글만 떼었다면 우리에게 그건 큰 어려운 일도 아니다. 가정 내에서 부모와 꾸준히 한국어를 듣고 말하고, 수준에 맞는 한국어 책을 꾸준히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래야 한국에 돌아왔을 때, 아이들이 학교 수업을 문제없이 따라간다. (문화적 차이로 인해 갈등을 겪는 아이들도 있다는 것은 참고하시길 바란다.)


첨언이지만, 이런 학생들을 지도할 때마다 드는 의문은 공교육의 부재다. 한국인이지만 해외에 거주하다 온 아이들, 해외에서 한국으로 이주해서 생활하는 아이들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국어 교육이다. 그런데 그 아이들 누구도 학교 교육의 틀에서 보호받는 것을 보지 못한다. 나에게 오는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가정 형편이 여유가 있는 경우이다. 그래서 드는 반문이다. 그렇지 못한 가정의 아이들의 국어 교육은 어디서 이루어지는가? 도구 과목인 국어가 되지 않는 아이들은 학습에 있어서 과연 동등한 출발선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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