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A고교의 학생들은 잔뜩 뿔이 나있었다. 지난 1학기 중간, 기말고사에 담당 선생님이 교과서 작품이 아닌 문학작품들을 출제하셨다. 비교적 유명한 작품, 다른 교과서나 모의고사에 출제되었던 작품들이 고교 시험에 나오는 일은 흔하기에 사실상 문제가 안 되는 일이다. 문학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교과 목표이니 어떤 작품을 통하든 관계는 없다. 그러나 이번 A학교의 경우는 나도 좀 당혹스러운 경험이었다. 지난 시험에 선택된 교과서 밖의 문학 작품들 대부분이 기출문제가 없는 새로운 작품들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검색 서비스를 통해서도 관련 작품에 대한 문제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학부시절 학생이라도 된 마음으로 해당 작품들을 분석해서 어설프게라도 예상문제를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나눠줘야 했다. 우리가 좀 대형학원이거나, 국어 전문학원이었다면 함께 머리를 맞댈 선생님들이 더 있었을 테지만, 애석하게도 우린 아주 작은 동네 학원이고 국어 선생이 나 하나라 매우 부실하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비교적 중간고사는 잘 넘겼다. 함께 예측하고 연습했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 그리고 기말고사에 다시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심지어 이번에 시험에 포함되는 작품은 출간된 지 채 일 년밖에 되지 않은 것이라서 서평 하나 찾아보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때문에 지난 시험에도 고생을 했던 경험이 있는 우리 아이들은 잔뜩 골이 났었다.
문학을 좋아하는 문학도의 입장에서 해당 선생님의 취지는 너무 좋다고 생각했다. 신인 작가의 신간이기 때문에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고민을 담은 신선한 작품이었다. 수업이 아니었다면, 나는 해당 작가와 작품을 추천해 준 담당 선생님이 고맙다고 느꼈을 것이다. 죽어 있는 텍스트가 아니라 정말 살아있는 진짜 문학을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싶으셨을 그 마음이 너무 감사하지 않은가. 선생님이 우연히 읽게 된 작품이 너무 괜찮아서 아이들과 같이 읽어보고 싶으셨다는 말씀도 하셨다고 했다. 좋은 작품을 발견해서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나누고 싶은 마음. 같은 문학도로서 그 마음을 너무 잘 알고, 거기에 큰 사랑이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런데 내가 마냥 문학도가 아니란 사실이 슬프다. 입시 강사로 봤을 때, 아쉬운 것은 그 작품으로 글쓰기 수업이나 토론 수업을 진행하시고, 지필 고사는 좀 지양하셨으면 좋았을 걸 하는 것이었다. 고등에서 수업만 들으면 다 풀 수 있을 만큼 쉽게 문제를 출제할 수는 없다. 변별력의 문제가 발생하면 등급이 난리가 나고, 당연히 담당 선생님은 난이도가 있는 문제를 출제하셔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선생님의 진심은 퇴색된다.
A학교의 두 시험은 한 번은 난이도가 쉽게, 한 번은 난이도가 높게 나왔다.
첫 시험은 담당 선생님이 예고하신 대로 수업만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였다. 수업시간 내내 잠만 잔 게 아니라면, 최소한 선생님이 나눠준 프린트만 읽었다면 맞출 수 있는 문제였다. 문제는 그 바람에 사실상 시험의 의미가 모호해져 버렸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해당 부분은 오답자가 거의 없는 상태가 되어서, 다른 단원들에서 성패가 갈리면서 오히려 한 문제가 등급을 가르는 파급력만 강해졌었다. 이를 반면교사 삼으신 건지 다음 시험은 난이도가 높아졌다.
첫 시험도 마찬가지였지만, 어찌 되었든 사교육에 있는 내 입장에선 아이들의 시험을 도와야 했다.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소위 말하는 기출문제나 자료가 없는 작품들은 당연히 아이들 혼자만으로 준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더욱이 출간된 지 일 년밖에 되지 않은 문제의 그 소설은 나조차 벅찼다. 나는 혼자 이리저리 연구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문제를 만들어 주었고, 사실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겨우 위기를 넘겼다. 해당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아이들 중에 과연 사교육의 힘 없이 해낸 아이가 몇이나 있을까? 단언하건대 다섯 손가락도 안 될 것이다. 왜냐면 국문학 전공자인 사교육 선생들을 이제 갓 문학을 배우는 고등학생 아이들이 이기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너무 빤하다.
문학도의 마음은 너무 잘 이해가 된다. 좋은 작품을 알려주고 싶고, 아이들에게 작품을 보는 눈을 키워주고 싶으실 것이다. 그건 교사의 진심이라고 생각된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고등 교육의 경우 입시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문학 작품을 소개받고 감상문을 쓰는 과제를 수행할 때까지는 그래도 몇몇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자기 힘으로 비평문을 써보면서 나에게 쑥스러운 듯이 자랑하던 아이도 있었다. 그게 지필고사로 넘어가자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자신의 글에 뿌듯해했던 그 친구는 그 시험을 준비하며 변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본인이 느꼈던 기쁨은 이미 날아갔고, 너무 쉽게 나와서 겨우 한 문제로 등급이 밀린 시험에 분노했고, 너무 어렵게 나와서 머리를 쥐어뜯은 시험엔 짜증을 냈다.
이상과 현실은 늘 거리가 있다. 문학도의 마음으로 입시를 준비할 수는 없다. 아니 애초에 문학을 시험지에 욱여넣는 시도부터가 문제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