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이 많았다.
무슨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나.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보다 어린 삶에 생기는 모든 문제는 내 죄 같았다. 한 살이라도 나보다 어리다면, 내가 그보다 일 년이란 세월을 더 살았다는 것에 죄스러워지곤 했다. 조금이라도 나이가 많은 내가 더 잘했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은 곧 나의 죄가 되었다.
그 봄에 꽃다운 아이들을 바다에서 허망하게 잃은 그때.
나는 한 달이 넘도록 눈물이 마르지가 않아서 괴로웠고, 그래서 모든 것에서 멀어지는 길을 택했다. 뉴스를 보는 것이 힘이 들었다. 여전히 그 이야기를 꺼내면 나는 눈물부터 난다. PTSD라는 말을 감히 붙이는 것도 죄스러울 정도로 나는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때 나도 상처 입은 것이 분명했고 PTSD를 겪었다는 것이다.
내 첫 제자들의 나이가 스물다섯이다. 그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나는 감히 내 아이들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코로나 시국에 대학을 보낸 아이들도 많다. 다들 대학 생활의 낭만을 즐기지 못해 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던 것이 고작 몇 달 전의 일이다. 그리고... 그 또래의 젊은 청춘들을 다시 허망하게 보냈다. 아니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귀한 목숨을 우리가 놓쳐버렸다는 것, 그게 죄가 아니겠는가.
백화점이 무너져서 아주 긴 시간 끝에 겨우 생존자를 꺼내던 모습, 너무 어린 목숨을 앗은 순식간에 불타 오른 가건물의 화마, 지하철역에서 검게 솟아오르던 그 검은 연기. 어린 나이였어도 그 모든 순간들이 머리에서 지워진 적은 없었다. 어린 날에 나는 그런 사고들을 보면서 어른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저런 일이 벌어지게 그냥 두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고, 저런 사고에서 내가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생각했었다. 우리는 더 나아지고 있기는 한 건가? 과거에서 나아가고는 있는 걸까? 피 흘리지 않고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일인가?
이제 어른인 나는 이 모든 것들이 다 내 탓인 것만 같아서 죄스러운데...
정작 우리 모두를 대신해서 우리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의무를 가진 국가는 죄의식이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