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회사에 이례적인 프로젝트가 떨어졌다.
A급 규모의 매출과, 잘 만 하면 향후 그 수 배 이상의 잠재력이 있는 건이었다.
다만 어려운 점이 있었는데, 금번 프로젝트와 동일한 수준의 건을 경험해본 사람이 회사에 없다는 것이었다.
회사는 급히 TF를 조직했다.
(발주처가 업체를 늦게 선정하여 착수일이 바로 코앞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아주 촉박했다.)
부장님 세 분, 기획실장님, 경영지원부 팀장과 과장까지 한 팀이 되어 몇 번이고 회의를 열고 현장을 다녔다.
그리고 TF에서의 실무자는 필자였다.
발주처 담당자와 연락을 취하고, 현장을 답사하고, 수십 개에 달하는 서류를 준비하고, 현장에 필요한 인력과 비품을 주문 조달하고,
그리고 본사에 복귀해 다시 TF회의를 주선하고.. 하면 할수록 짜증이 치밀었다.
회의를 가지면 이미 결정되어 진행되는 사항들이 번복되고, 지적 사항들과 설계 변경 요구 사항들이 빗발쳤다.
(물론, 회사는 업무가 크건 작건 조심스레 한 스텝, 한 스텝을 밟아 나가야 한다. 설계내역과 과업내용의 작은 문구가 큰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초반에 협상을 잘못하면 당연히 이윤이 나야 하는 거래도 손실이 나기 십상이다.)
누구는 그저 노트에 글을 끄적이고만 있고
누구는 과업서도 설계서도 안 보고 말만 하고 있고
누구는 그 말만 하는 사람의 말에 동조하거나 반박 하고만 있었다.
그 중에서 “51페이지의 가번 항목은 장기간의 운영에 차질이 있을 수 있으니 내가 발주처와 담판을 짓겠다.”고 나서는 사람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필자는 한 시가 바쁜데 결과도 성과도 안 나오는 회의를 도대체 왜 해야 하나 싶은 짜증이 매번 밀려들었다.
그 즈음 아침 출근길에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데 문득 생각이 들었다.
‘열 명의 조언자보다 한 명의 실무자가 있는 게 더 낫다’고.
아무리 경험 많고 지식 많은 사람들이 떠들어댄다 한들 몸소 움직이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음을(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얼마 전에 뼈저리게 깨달았다.
물론, 규모가 있는 기업일수록 관리자와 중간관리자, 그리고 헤드는 필수다. 실무자가 일을 마냥 열심히 한다고 해서 회사의 일이 다 되는 것은 아니다.
한 발치 뒤에서 업무 진행의 방향과 가닥들을 컨트롤하고 직원들을 케어해주며, 또 그 윗선에 적시에 보고를 해줘야 기업은 주춤거리지 않고 항해할 수 있다.
그런데 모두가 관리자를 자처하면, 그러면서 정작 자신은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어떤 분야에서든 실무를 배제하면, 그 집단은 기초가 흔들리게 되는 것이며 그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체리를 수확하는 일꾼이 없는데, 창고를 잘 관리한다고 해서 수익이 어떻게 나겠는가?
방금 위에서 규모가 있는 기업은 관리자가 필수라고 했다. 필자는 규모가 있는 어느 집단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덧붙이는 건데, 규모가 적더라도 적용되는 거 같다.) 그러기에 그 집단을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 그 구성원들의 ‘실무’ 또한 필수라고 생각한다.
하늘에서 떨어진 돈으로 부자가 된 사람은 없다. 부자들은 많은 사람이 함께 일궈낸 경제에서 기회를 얻어(운도 없다고 할 수 없다.) 부를 쌓게 된 것이다.
정계에 있는 사람들도 한 사람, 한 사람의 표를 얻어 정치를 하는 것이다.
학생이 없으면 선생님도 없고(논점이 좀 다르지만),
부부가 관계의 끈을 끊어버리면 시부모, 친정의 의미도 와해되어 버리게 된다.
글을 쓰다가 흥분해서 내용이 좀 삼천포로 빠졌다.(죄송합니다.)
잘못 빠진 김에 하나 더 말씀드리고 싶다.
부지런히 체리를 따는 사람, 부자는 못되지만 적절한 임금을 받고 우리나라 경제에 몸담고 있는 사람, 하나의 투표권을 매번 구사하는 사람, 가족과(답답하고 짜증나는 일투성이더라도) 화목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맡겨진 일에 책임을 지고 (관리자가 책임지라고 말한 것도 아닌데) 일하는 실무자,
ps. TF 구성원 중에 한 부장님이 필자가 고군분투하며 지쳐가는 모습을 보시더니 얼마전 본인이 '담당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그 부장님이 책임을 지고 프로젝트를 진행한 순간부터 현재까지 스케줄표에 맞춰 업무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중간중간 놓치는 것이 발생하고 완벽하진 못하지만)
책임을 지겠다는 사람 단 한 사람의 등장이 얼마나 큰 의지가 되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