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를 앞두고 있으면 발표 때 말을 절거나, 단어를 까먹거나, 질문자의 날카로운 질문에 답변을 못하고 쩔쩔매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운전에 대해서 상상할 때면 옆 차들이 자리를 내주지 않아서 차선변경을 못하거나, 앞차가 갑작스레 제동하여 앞차를 박게 되는 이미지가 그려진다.
회사에서 새로운 과업을 떠맡게 되면 거래처가 비협조적으로 나오거나 매섭게 굴고, 나는 일을 제 시간에 끝내지 못하고, 직원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상사에게 호되게 비판을 당하는 등의 이미지가 ‘즉시’ 그려진다.
그리고 이 불안한 상상들은 불안한 감정이 되어 나를 지배한다.
불안한 감정이 들게 되면 나는 평소와는 다른 사람이 된다.
움츠러들고, 전화기를 들어 거래처에 연락하기를 꺼려하고, 전화를 하더라도 비굴하게 굴고, 주변 직원들의 눈치를 살핀다.
도대체 무엇이 원인인지는 모르겠다. 불안한 상상은 내 오랜 습관이기도 하다. 대학 때도, 사회생활에 뛰어들어 일을 하면서도 이 불안한 상상 때문에 일상이 편하지 못했다.
그래서 불안한 상상에 빠지지 않으려고 해봤으나, 안 됐다.
영화 인셉션의 아서가 사이토에게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말하면서 ‘무엇을 생각하지 말라고 알려주는 것은 그것을 생각하지 않게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러다 최근에 알게 된 것이 있다.
며칠전, 중요한 발표자리가 있었다.
내가 일하는 회사의 거래처들 중에서 두 번째로 큰 고객이 될지도 모르는 곳에 ‘제안발표’를 하는 건이었다. 나는 부담에 짓눌렸다.
대본을 다 외우지 못할 것이라는 압박감, 질의응답에 명쾌하게 답변하지 못하리란 걱정, 고객사에 과연 신뢰를 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
이런 것들 때문에 며칠을 퇴근도 못하고, 잠도 못자고, 입술은 트고, 숨통은 조여들어왔다.
그렇게 발표 당일, 나는 발표를 마쳤고 함께 갔던 우리 팀은 질의응답에 충실히 답변했다. 나는 적당히 만족했다. 생각했던 것만큼 실수했다. 우리 팀도 내가 예상했던 것만큼 버벅댔고, 간결하게 답하지 못했고(잘 답변한 것도 있었다.), 전문가스러운 면도 조금 부족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을 전해주려 한다.
최근에 깨달은 아주 중요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부정적인 생각은 그 길이와 깊이가 너무도 짧아서 ‘내일 있을 일’이면 오직 그 일에만, ‘한 달 뒤에 있을 일’이면 오직 그 일에만, ‘1년 혹은 5년 뒤에 있을 일’이면 오직 그 일에만 매달리고 목매게 한다.
그 시간이 전부인 것처럼 우리에게 착각을 불어넣는 것이다.
짧은 생각은 불안한 감정만 불러일으키고, 지금 당장의 이 가장 중요한 ‘현재’에 집중하지도 못하게 만들며, 지금 이 순간을 그냥 흘려버리도록 만든다.
결국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흘려버리게 되면, 우리는 모든 삶을 흘려버리는 삶으로 지내버리게 된다. 자기 삶을 제 3자의 시선으로만 바라보다가 가는 것이다.
(우리 삶은 과거와 미래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오직 ‘현재’로만 이루어져 있다.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사느냐가 과거로 남는 것이고, 지금 이 순간을 사는 모습이 미래의 시간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중요한건 ‘지금 어떻게 사는 것'이냐다.)
발표를 잘하든 못하든, 도로에서 옆 차가 공간을 주던 주지 않던, 과업이 잘 해결되든 그렇지 않든,
그것으로 결코 끝이 아니다.
우리는 계속 살아간다.
뒷이야기는 이어진다.
이와 반대 되는 예시로, 신데렐라가 왕자와 결혼하고 평생 행복했을지 누가 확신하겠는가?
왕자가 어여쁘고 성격 좋아 보이는 여인과 단숨에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라면, 또 다른 비슷한 여인을 만났을 때 금방 사랑에 빠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는가?
· 발표를 못했으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강점을 강화하면 된다. 고객사와 연이 닿는다면 한 번 연락해서 무엇이 부족했는지 물어보는 것도 좋다.
· 차가 자리를 안 내주면 다음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사고가 난다면(안 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보험사를 부르고 최대한 서로가 손해 보지 않게, 마음 다치지 않게 애쓰면 된다.
· 과업이 잘 해결되지 않으면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세상은 일로써 돌아가는 거 같지만, 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양해를 구하면 그러지 않는 것보다 훨씬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성과가 안 나면 상사에게 혼나면 그만이다. 스스로에게 아쉬움이 있다면, 배우고 노력하여 역량을 키우면 된다.
우리의 생각이 혹은 실제 상황이 우리를 낭떠러지로 인도하여 더 이상 갈 수 있는 곳이 없는 것 같을 때,
그렇게 삶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라.
뒤 돌면 그만이다.
뒤에서 원수나 적군이 쫓아오고 있다면, 용서를 구하면 된다. 화해하면 된다.
그러고도 안 되면, 싸우거나 죽어야지 별 수 있겠는가.
그런데,
당신이 이길는지 누가 알겠는가?
ps. 생각의 한계를 타파하기 위해 마지막 멘트로 ‘당신이 이길는지 누가 알겠는가?’하며 마쳤지만, 이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란 것도 덧붙이고 싶다. 우리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인해 이 삶과 사회를 영위하고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