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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정서랍 Feb 28. 2024

나이만 먹으면 절로 어른이 되는 줄 알았지!

그런데 아니었다?!?!

어느날 학생이 내게 물었다.

"선생님도 무서워 하는 게 있어요?"

학생들에게 평소에 스스럼 없이 대하는 나로선 딱히 대답을 거리낄 것이 없었다.

"그럼! 쌤은 인형을 무서워 해."

그렇다. 어릴 적 봤던 영화 <사탄의 인형> 덕분에 인형을 무서워한다. 인형뽑기에서 인형을 뽑아도 환호성과 함께 옆에 있는 친구에게 줘 버린다. 나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싫다. 밤에는 더욱. 같은 이유로 인물사진이나 그림을 방에 걸어두지도 않는다.

"무슨 어른이 그래요?"

학생이 와-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무슨 어른이 이렇지?

"인형이 왜 무서우세요?"

"그냥 시선이 싫어."

"그럼 시선이 무서운 거 아니예요?"

"너가 쳐다보는 건 무섭지 않잖니."

"아하."

학생은 수업을 듣다가 다시 내게 물었다.

"술에 취하면 무슨 기분인가요?"

"그런 건 부모님한테 배워야지."

"운전하는 거 재밌으세요?"

"처음엔 재밌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네."

"대학교 가면 정말 연애 하나요?"

"연애는 너 나이에도 할 수 있는데?"

"아직은 좀 부끄럽네요."

"공부 열심히 하면 여자친구가 생길 거야."

"선생님도 공부 열심히 하셨어요?"

"윽."

"솔직히 빨리 어른이 되고 싶긴 해요."

"그렇게 즐거울 건 없는데...."

"운전도 하고 싶고, 수강신청이라는 것도 해보고 싶고요."


음, 그렇네. 나도 나이 때, 그러니까 중학교 3학년 즈음엔 같은 생각을 했었지.


그때는 20살이면 당연히 대학생이 될 줄 알았다. 당연하단듯이 운전을 하고 자연스레 연애를 할 줄 알았다. 무난하게 취직을 하고 절로 어른이 될 줄 알았다.


국어와 영어는 자신이 있었고 사회탐구 중 경제는 눈 감고도 만점을 맞았으므로, 당연히 남 부럽지 않은 대학교에 갈 줄 알았다. 내신 또한 나쁘지 않았기에 최저만 맞추면 되는 수능이었다. 그러나 수능 1교시, 언어 시간에 기침이 멎질 않아 교실에서 쫓겨나야 했다. 정확히 20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우루루 몰려온 선생님들의 안내를 받아 양호실로 자리를 옮겨 시험을 이어갈 수 있었다.


당연히 결과는 폭망. (우습게도 경제는 만점이었다!) 인생에 절대 없을 줄 알았던 재수를 고민하고 있을 때쯤 친구들과 약속한 제주도 여행이 다가왔다. 모두들 이미 원하는 대학에 합격 통보를 받았기 때문에 가는 길 내내 내 눈치를 보기 바빴다. 그러던 와중 공항으로 향하는 전철에서 내 휴대폰을 울렸던 문자를 아직도 기억한다.


비록 하향이지만 내 수능성적으로 어림도 없었던 대학교의 합격문자. 전철에서 기쁨의 춤을 췄고 각자 떠들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웃으며 축하박수를 쳐 주었다. 그날 제주도에서 친구들에게 술을 샀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면허를 땄지만 내가 운전하는 것을 두려워 한 어머니 덕분에 쭉 장롱면허였다. 반항심이었을까, 군인일 때 휴가를 나와서 렌트카를 빌려 단독사고를 냈고 돈을 왕창 물어주며 잔뜩 혼이 났다. 제대를 하고 나선 몇 번이나 차를 빌려서 혼자 심야드라이브를 했는데, 그 덕에 지금은 꽤나 능숙하게 차를 몰고 있다. 


연애도 마찬가지였다. 잦은 실수와 미숙함을 보였고 거리조절이 어려웠다. 사랑은 상대방과 인생 절반을 나누는 일이라는 번지르르한 말은 알고는 있었지만 마음으로 배우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돌이켜보니 그렇다. 저절로 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당연한 대학생도, 당연한 운전실력도, 당연한 연애도, 당연한 취직도 없었다. 그때는 그때만의 선택과 고충이 있었다. 그런 시간이 켜켜이 쌓여가며 나라는 사람을 만들었다. 비록 먼지만 묵고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을지언정 아예 없던 일이 될 수는 없는 것들. 가끔 불현듯 떠오르며 피식 웃게 만드는 순간들. 한때는 나의 전부였지만 지금은 잊은 것들.


어른이 되니 세상이 재미 없다고 말하는 어른들은 분명 이를 떠올리지 못하고 있으리라. 그간의 삶에 지난한 시간과 즐거움과 배움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두의 삶이 드라마 같았던 것을.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을 절로 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긴 순 거짓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른이 된다는 것은 더 멋진 일일지도 모른다. 수업이 끝날 때즈음 나는 학생에게 말했다.

"아까 한 말 취소! 어른이 되는 건 생각보다 재밌어."


너는 앞으로 많이 넘어지고 무수한 상처를 얻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한다는 것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일 거야. 셀 수도 없이 많은 경험과 추억이 함께 올 테니까.


학생은 고개를 갸우뚱 하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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