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말 자연인 Jul 05. 2022

도윤이의 신나는 우주여행

짱구 에피소드 중 단연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짱구의 신나는 우주여행 편이다. 짱구가 콜라를 마시고 응모권을 모아 우주여행 체험을 가게 되면서 재밌는 일이 벌어진다.


짱구는 미리미리 우주 비행 훈련을 해야 한다며 아빠를 닦달했다. 짱구 아빠는 하는 수 없이 어린아이의 꿈을 깰 순 없다며 대충 짱구에게 맞장구를 쳐준다. 어디 짱구가 그리 호락호락한 아이던가. 그렇게 대충 하면 출세할 수 없다며 아빠를 다그친다. 주눅 든 짱구 아빠는 전력을 다해 그럴듯하게 짱구를 로켓에 태우고 발사 준비에 들어간다. 짱구를 의자에 앉히고 뒤로 눕혀 천장을 올려다보게 하고, 실로폰을 가져와 이것저것 누르기도 하고, 숟가락을 구부려 마이크처럼 쓰고, 손전등 불빛을 로켓 점화하는 것처럼 사용했다. 곧이어 의자를 붙잡고 흔들면서 두두두두 진동시키며 그렇게 짱구는 우주로 나가게 된다.


짱구 아빠의 도움을 받아 혼신의 노력 끝에 달나라 탐사에 투입된 짱구가 A자 사다리에 묶여 무중력을 체험하고 있던 찰나 엄마가 푸딩을 먹으라며 부르자 네 하고 쌩하니 달려가는 모습에 짱구 아빠는 망연자실한다. 곧이어 명대사가 나온다. "나도 저렇게 생각 없이 살아봤으면."


한창 민원에 시달리고 퇴근 후 저녁을 먹을 때마다 해맑은 아들을 보며 “에휴 나도 저렇게 생각 없이 살아봤으면” 이란 말을 남발했다. 아이의 미소가 피로회복제 같았지만 머릿속에 뒤섞여있는 민원 내용이 모두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아내는 그만하라고 했다. 아이를 너무 무시하는 처사라고 했다. 그 뒤로는 가끔씩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어느 날 갑자기 짱구 우주여행 에피소드가 생각나 식탁의자, 실로폰, 손전등 등을 가져와 거실에 세팅해놓고 아들을 불렀다. 아들이 뭐냐며 물었지만 그런 게 있다며 걱정 말고 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이이잉 철컥 입으로 효과음을 내면서 의자 등받이를 바닥으로 눕히던 순간 아들이 싫다며 내려달라고 했다. 균형감각에 이상을 느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 것이다. 만화는 만화인데 말이다. 그대로 로켓 발사 놀이는 접었다.


최근 누리호 2차 발사가 있었다. 동시에 육아휴직 중인 백수 아빠 엄마가 아들에게 가까이서 실제 로켓 발사를 구경시켜줄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온 것이다. 우리는 민간인이 접근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자 했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발사하는 순간부터 쪼그맣게 볼 바에는 산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가장 크게 볼 수 있는 곳을 원했기 때문이다. 슈필라움에서도 꽤 가까운 거리다. 발사 한 시간 전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아들과 단둘이 온 아빠도 있었고 부러운 캠핑카를 가져온 부모도 있었다.


발사 상황에 대한 실시간 영상을 보면서 우리도 다른 사람들이 설치해놓은 망원렌즈가 향하는 방향을 대충 어림잡아 의자 방향을 설정했다. 그 사이 아들은 바닷가 자갈밭에서 손인사를 받아주지 않는 어떤 누나에게 계속해서 아는 체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돌을 던지고 싶다는 아들을 데리고 물가로 가고 있었는데 최근에 산 조금 큰 빨간색 크록스가 말썽이었다. 신발이 바위에 박혀 아들이 그대로 고꾸라져 이마에 멍이 들었다. 그 신발 좀 신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냐고 화를 냈다.


그렇게 예정된 발사 시각이 다가왔고 영화에서 처럼 땅이 진동하진 않았다. 굉음을 울리고 산등성이를 막 벗어난 로켓이 우리 눈에 아주 크게 보였다. 찌지직 소리를 내며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나는 로켓이 가시거리에서 사라질 때까지 추락하진 않을까 생각하며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우리 딸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끌려왔을 테고 아들은 로켓이 무엇인지는 알았으나 잠깐 로켓 발사 순간에 흥미를 가지다 유튜브에 더 꽂혀있었다. 그날 아들은 로켓에 앉아 무사히 달나라에 도착해 바닷가 누나를 만났을까.


슈필라움에 복귀하면서 우리는 로켓을 가까이서 본 보람이 있다며 공감했고 뒷 자석에 앉은 아들도 로켓이 하늘로 찌지직 올라갔다며 좋아했다. 아들의 의식 속에 로켓 발사 장면이 어떻게 저장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모래놀이가 더 좋아 보인다.


우리는 짱구 아빠처럼 아들과 딸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평생 그들의 꿈을 서포트해줄 수 있을까. 또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아무런 걱정 없이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내 시선으로 본 짱구 에피소드의 백미는 짱구가 버리고 간 A자 사다리에 짱구 아빠가 허리를 묶어 우주를 유영하며 아내에게 뭐하는 짓이냐는 구박을 받으면서도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 한 달 살이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