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트렁크가 터지게 한 달 살이 짐을 챙기면서 바닥에 가장 먼저 실은 것은 패들보드와 자전거 두대였다. 날씨 좋은 날 패들보드를 타고 제주의 해안가 기암괴석을 감상하고 또 자전거로 딸을 태워 아들과 나란히 제주 해안을 달리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쉽게도 패들보드를 타며 주상절리 구경은 못했지만 아들과 패들보드로 협재해변을 즐길 수 있었다. 물을 무서워하는 아들이 껌을 준다는 말에 순순히 구명조끼를 입고 패들보드에 바람을 채우기도 전에 올라가 노 젓는 시늉을 했다. 패들보드에 공기를 꽉 채우고 아들과 패들보드 위에 앉아 노를 저어 바다로 나갔다.
근처 방파제 모래 해변에서 수영하고 있던 아내와 딸에게 갔다. 바다가 잔잔해 도윤이는 안정적으로 앉아있었고 아내와 딸의 튜브를 패들보드 앞뒤에 묶어 바다 기차놀이를 했다. 에메랄드빛 제주바다에서 가족과 함께 누리는 호사였다.
안타깝게도 아들과 둘이서 협재해주욕장으로 가던 중에 풍랑을 만나 중심을 잃은 도윤이가 물속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협재해변 일대는 수심이 아주 얕아서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도 파도가 부서지는 곳이 많았다. 다행스럽게도 무릎 높이 수심이라 아들을 바로 물에서 건져냈다. 하지만 아들은 크게 울며 내 몸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 뒤로 다시는 패들보드를 타지 않았다. 완강해 보였다.
아들은 이제 파도가 치는 것을 무서워한다. 아들은 한 번씩 그 생각이 나는지 패들보드에서 데굴데굴 굴렀다고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웃기만 할 뿐 유튜브를 보여준다고 해도, 껌과 사탕을 준다고 해도 탈 생각이 없다고 했다. 아들과 함께 패들보드를 같이 타는 게 나의 로망이었는데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까지 걸릴 시간에 씁쓸하기만 하다.
어쩌다 아침 수영을 마치고 아내가 딸아이를 재울 때 아들과 자전거로 동네 한 바퀴를 돌기도 했다. 자동차로 한림 하나로마트를 가면서 지났던 길을 자전거로 달렸다. 현무암 돌담 정겨운 길을 벗어나 도로를 조금 타다 편의점에 들러 스크류바 두 개를 사서 후르릅 빨면서 계속 달렸다. 아들 녀석은 페달이 없는 자전거를 발로 바닥을 차면서 잘도 탔다. 얼굴에 와서 부딪히는 바닷바람이 시원했다. 자전거 위에서 바라보는 제주바다가 너무 포근해 보였다.
그러다 지쳐 방파제 그늘막에 앉아서 바닷속을 응시하면서 아이스크림을 마저 먹었다. 너무 맑아서 주머니에 핸드폰이 없었고 아들이 없었다면 그냥 뛰어들고 싶었다. 결국 그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하지 못해 아쉽다. 포구 마을을 지나고 있었는데 동네 할머니가 개가 집을 나갔다며 혹시 봤냐고 물었다. 도윤이한테 물어보니 못 봤다고 해서 겸연쩍게 웃으며 할머니께 못 봤다고 했다. 방파제 끝에 있는 정자에 누워 조금 쉬다 아들과 빨간 자전거를 뒷자리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갔다. 잠에서 막 깬 딸아이와 온 가족이 점심을 먹으며 오후엔 무엇을 할까 아내와 고민했다. 한량 부부의 제주도 일상이었다.
우리가 머물던 이층 집에서 바라보면 비양도가 보였다. 해질 무렵 방파제에서 비양도 쪽으로 산책도 많이 했었다. 근심 없는 나날이었다. 딸아이를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 아직은 악력이 부족해 혹시나 떨어지진 않을까 걱정하며 석양 속으로 사라지듯 자전거를 몰았다. 아들 녀석도 빨간 자전거로 나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유자재로 곡예하듯이 돌아다녔다. 자전거 가져가길 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