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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말 자연인 Jan 16. 2023

제주 한 달 살이 3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여행지는 우도다. 제주 서쪽 치우친 곳에 자리를 잡아 한 달 살이를 하는 동안 그곳에서의 대척점, 성산일출봉이나 우도는 멀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아내와 나의 분명한 목적지였다. 별로 한 것도 없었는데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간다고 느낄 즈음 우도행을 결정했다. 일기예보를 주시하며 바람과 파도가 잔잔한 날을 골랐다.


역시 차는 크고 볼일이다. 제주 입도 전 아빠 차를 빌린 터였다. 팰리세이드라는 차인데 아들 녀석이 카시트에 앉아서 발을 툭툭 차도 발이 엄마 자리에 잘 닿질 않으니 넓고 쾌적했던 모양이다. 나는 이런 대형차로 차박을 할 셈이었다. 협재 쪽에 있으면서 가끔 트렁크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위치에 주차를 하고 뒷 좌석을 다 눕혀 간단히 돗자리를 펴고 그 위에 그야말로 집에서 쓰는 이부자리를 펴서 네 식구가 누워서 바다를 하염없이 쳐다보곤 했다. 차박 예행연습이었고 코로나 시대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고받음이 없는 우리 공간이었다.


어쨌든 날씨 좋은 날 배를 타고 우도로 들어갔다. 유명하다는 짬뽕을 점심으로 먹고 꽤 좁은 섬 우도에 차박 할 곳을 찾아 여기저기 쏘다녔다. 중간에 땅콩아이스크림도 먹고 아들과 같이 보트도 탔다.


눈 시리게 푸른 바다와 하늘, 우도등대 아래의 수직절벽은 정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시선이 수면에서 시작해 톱니바퀴 돌듯 천천히 목을 뒤로 젖히면서 바라본 기암절벽은 평생 잊지 못할 영화에서의 느린 화면처럼 생생히 남아있다. 잊히기 전에 또 가보고 싶은 풍광이었다. 절벽 아래서 패들보드로 천천히 노 저으며 타지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깝다.


우리가 탄 보트는 해식동굴도 들어갔는데 규모가 꽤 컸고 천장도 높았다. 마지막으로 돌아오는 길에 곡예 운전하는 보트에 도윤이는 죽을 맛이었다. 내가 운전대를 잡고 제어하지 못하는 빠른 이동물체에 있는 느낌을 나도 싫어한다. 특히나 얼굴에 물이 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도윤이는 보트 양옆으로 휘날리며 얼굴 정면으로 날아오는 바닷물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런 도윤이를 꽉 잡아주며 고개는 절벽을 뒤를 바라보며 짜릿하고 짧은 체험을 마무리했다.


우리는 차박족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는 화장실이 딸린 작은 주차장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보트에서 본 절벽이 잘 보이는 곳이었는데 지명이 특이했다. 톨칸이라는 곳이었다. 먼저 아이들을 내려 도윤이는 빨간 자전거를 태워 돌아다니게 하고 다연이는 유모차에 태워 아내가 산책을 했다. 그다음 카시트 두 개를 운전석과 보조석에 각각 두고 트렁크를 열어 의자를 모두 눕혀 공간을 만들었다. 그 위에 숙소에서 챙겨 온 이부자리를 펼쳤다. 아내와 다연이가 하루 묵을 공간이었다.


제주 오기 전에 한여름의 슈필라움에서 도윤이와 함께 썼던 자충매트와 2인용 백팩킹텐트를 가져와서 우도에서 하룻밤 요긴하게 썼다. 나와 도윤이의 침실은 우리 차 바로 옆에 피칭했다. 우리 뒤로는 루프탑 텐트를 펴놓은 부부가 있었고 옆으로 대형 SUV에 차박텐트를 결합한 몸이 좀 안 좋아 보이는 아들과 함께 온 부부가 있었다. 또 그 옆으론 프리다이빙 웻슈트를 입고 돌아다니는 아저씨의 캠핑카가 있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도윤이가 길 끝에서 엄청 엄청 큰 포클레인을 봤다며 자랑을 했다. 직접 가보니 정말 큰 대형 굴삭기였다. 가는 길에 해안가 현무암 지대가 멋들어졌다. 그 아래로 절구통만 한 몽돌이 많은 해수욕장이 있었는데 그 앞의 물빛은 정말 파랬다. 딱 봐도 수중이 흐리지 않고 가시거리가 꽤 나올만한 바다였다. 역시나 자유의 몸이 아닌지라 스노클링은 무리였다.


우도에서 보내는 밤의 백미는 따로 있었다. 훈데르트바서라는 오스트리아 건축가의 철학이 담긴 곳이 있었는데 밤에 거니는 그 밤거리가 이색적이었다. 날씨가 가을 초입에 다다라 밤공기의 싱그러움이 느껴지고 오스트리아 노래가 길거리 스피커에서 조용히 들려와 흡사 오스트리아 밤거리를 걷는 느낌이었다. 우도에서 느낄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해 의외로 나른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다만 그날 아내와 대판 싸워 그 분위기를 혼자만 느껴서 아쉬울 따름이었다. 보나 마나 이상하고 유치한 걸로 싸웠을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아내와 아들딸을 데리고 그 거리를 다시 걸어봤다. 역시나 좋긴 했지만 못내 나만 아는 아쉬움이 남았다. 마지막으로 딸아이를 둘러업고 톨칸이 아래로 내려가 수직절벽을 최대한 가까이에서 보고 또 감탄하고 돌아왔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협재 숙소로 복귀해 짧게 남은 일정을 알차게 보낼 궁리에 머리가 아팠고 육지 집으로 돌아갈 걱정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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