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는 바보다. 돌이 훨씬 지났는데 아직도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돌이나 풀데기를 집어 기어코 입에 넣어본다. 그리곤 인상을 쓰면서 내뱉는다. 하지 않을 때도 된 것 같은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한다.
가끔 쓰레기통에 버려진 봉지에 묻은 부스러기 맛을 봐야 직성이 풀리기도 한다. 간밤에 아빠 엄마가 몰래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를 먹은 것이 얄미운지 꼭 그런다. 미간을 찌푸리며 으 지지 하지만 이미 일이 벌어지고 난 뒤라 어찌할 도리가 없다. 앞으로 그러지 말라는 말에 응응하는 딸아이를 한심하고 귀엽게 째려보기만 할 뿐이다.
뭐가 그렇게 궁금한지 화장실 변기에도 꼭 손을 반팔 옷자락이 젖을 정도로 넣어보고 이리저리 휘젓는다. 어쩔 땐 맛도 본다. 더러워 죽겠다. 잠시 침대에 몸을 뉘어 쉬고 있을 때 아내가 큰 소리로 여보하고 부를 땐 꼭 이 상황이다. 속상해서 딸아이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따끔하게 때린 뒤에 딸아이는 울면서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다음에 또 한다. 딸아이는 바보임이 틀림없다. 방금 전에도 변기에 방울토마토를 담갔다 입에 넣었다고 한다.
한 번은 퇴근을 빨리하고 아이들과 집 앞을 산책할 때였다. 우리 집 근처에 사는 내가 싫어하는 팀장과 산책하는 길에 혹시나 마주칠까 봐 출퇴근차가 차고지에 도착하기 5분 전에 부랴부랴 아이들을 재촉해 집으로 향했다. 다행히 우리의 시야에 팀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딸아이를 안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던 찰나 밖을 보니 팀장의 뒤통수가 보였다. 도윤이에게 저 사람이 팀장이라고 했다. 그러자 도윤이가 “아빠 저 사람이 아빠 괴롭히는 사람이야?”라고 물었다. “그래 저 사람이야”라고 말했다.
엘리베이터가 집 앞에 도착하고 현관문을 열자마자 크록스를 신은 채 집안으로 달려간 도윤이가 아내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엄마엄마 큰일 날뻔했어 아빠 팀장님한테 잡혀갈뻔했어.” 하고 일러바쳤다.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산책길에 팀장님을 마주쳤으면 도윤이가 팀장님 앞에서 무슨 말을 했을지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딸아이도 요즘 때가 됐는지 내 핸드폰을 집어 들고 귀에 갖다 대며 뭐라고 중얼중얼한다. 도윤이가 그랬던 것처럼 손전화기를 들어 네 과장님 하며 흉내 내면 얼마나 귀여울지 상상만으로도 흐뭇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격무에 시달리다 보니 바보 같은 딸아이를 보면 역시나 생각 없이 사는 딸아이가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