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AI 사용기
일주일에 세 번씩 전화영어를 하고 있는데 내가 선택한 수업은 1~2분 정도 길이의 로이터 뉴스를 미리 듣고 대본을 읽어본 후, 이 뉴스에 나온 표현을 연습하고 뉴스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다. 챗지피티(ChatGPT)가 2022년 말에 대중에게 처음 공개된 이후 유난히 AI 관련 뉴스가 늘어나면서 매주 다섯 개의 뉴스 중 적어도 한 개 이상은 AI 뉴스가 올라오고 있다. 전화영어 선생님과 나 모두 AI의 미래에 대해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기 때문에 AI 관련 뉴스를 다루는 날에는 또 AI 뉴스냐면서 함께 불평을 하는 경우가 점점 잦아지고 있다.
내가 AI에 대해 회의적인 이유는 개인적으로 AI 소프트웨어를 많이 사용해 보지 않은 데다 작년에 읽었던 『권력과 진보』라는 책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주변 후배들 중에는 챗지피티나 디플(deepl) 등의 유료 버전을 구독하면서 영어 자료 번역, 간단한 코딩 등을 업무에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는데, 난 AI에 대한 불신이 크기 때문인지 본격적으로 사용해 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권력과 진보』는 경제학자인 대런 아세모글루(Daron Acemoglu)와 사이먼 존슨(Simon Johnson)이 함께 쓴 책이다. 그들은 AI 기술이 실질적으로 생산기술의 발달에 기여했다는 증거가 없으며 AI 기술이 가장 발전한 중국에서 생산 과정의 혁신보다는 감시 기술의 고도화에 주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들어 AI의 미래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던 중 최근에 번역에 특화된 AI인 디플을 자주 사용해 볼 기회가 생겼다. 박사과정을 졸업한 지 어느덧 4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졸업논문의 첫 번째 챕터를 여러 군데 학술지에 투고하였고 실패를 맛봤다. 마침내 작년에 한 학술지에서 수정 요청(major revision)을 받았고 그 요청을 토대로 논문을 다시 작성하여 올해 초에 제출을 하였더니 두 번째로 경미한 수정 요청(minor revision)을 받았다. 그 요청사항 중 하나가 뜻을 이해하기 힘든 영어 문장이 많으니 논문 전체를 교정받아보라는 것이었다.
사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으로서 어색하지 않은 영어 문장을 쓰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비싼 돈을 주고 원어민에게 교정을 맡겨봐도 명백한 문법 실수를 고쳐주는 정도지 문장을 이해하기 쉽게 다듬어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에 난감했다. 문득 디플의 존재가 떠올라서 영어 문장을 다듬어주는 기능(write)을 써봤는데 생각보다 그럴듯하게 영어 문장을 고쳐주는 걸 보고 내가 지금까지 AI를 너무 과소평가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덕분에 논문의 문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디플을 이용하여 고칠 수 있었고 앞으로도 영어로 된 글을 쓸 때 자주 이용하게 될 것 같다. 나의 부족한 영어 쓰기 실력을 충분히 보완해 줄 수 있는 도구를 찾았다는 생각에 영어 글쓰기에 대해 근거 없는 자신감도 살짝 생겼다.
다만 당분간은 우리말을 영어로 번역하거나 내가 쓴 영어 문장을 수정할 때 참고하는 정도의 용도로만 디플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영어 문서를 디플을 이용하여 통째로 우리말로 번역한 문서를 읽어본 적이 있는데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논문을 수정할 때도 대부분은 뜻이 동일한 상태에서 표현을 좀 더 자연스럽게 고쳐주는 정도였지만, 가끔씩은 내 원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수정안을 제시할 때도 있었기 때문에 전적으로 믿을 수 없고 반드시 한 번 더 확인해야 했다. AI가 아무리 발달했다지만 아직은 내가 직접 개입할 필요성이 높아 보였다.
이렇게 AI를 쓰기 시작한 김에 챗지피티도 잘 활용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미 일부 연구자들은 논문을 쓸 때 선행연구 부분을 AI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쓰기도 한다고 들었다. (이러한 관행이 연구윤리에 위배될 것 같긴 한데 확실히는 모르겠다.) 아마 아직은 나의 AI에 대한 믿음의 정도가 높은 편은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활용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활용도를 조금씩 높여가야 나중에 정말 AI가 필요할 때 잘 쓸 수 있겠다 싶다. 물론 그 과정에서 AI가 내 생산성을 높여줄 수는 있겠지만 내 생산성이 애초에 낮다면 AI를 활용해도 큰 의미는 없다는 사실도 명심해야겠다.
* 제목 사진 출처: https://biz.heraldcorp.com/view.php?ud=2024010200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