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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네 Mar 27. 2022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100일 글쓰기 카페: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시간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언 강 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되리니 - 후략'


처음 이 노래를 만난 것은 시민단체모임의 뒷풀이에서였다. 2005년 그당시 나는 한동안 '김광석'을 뒤늦게 알고 '일어나', '서른 즈음에', '사랑했지만',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등을 들으며 매일매일 김광석에 빠져 있을 때였다. 새로 만들어진 시민단체의 준비모임에서 만나 총무와 사무국장으로 다른 사람보다 좀더 가까운 거리에서 그를 볼 수 있었다. 앞으로 절친이 될 운명을 예견하듯 그는 김광석처럼 나의 이목을 끌며 '부치지 않은 편지'라는 노래를 불렀다.


시민단체의 특성 때문인지 스무 명 남짓한 남자들 사이에서 한두 명이었던 여자 중에 한 사람인 나는 총무를 맡았다. 1차 모임에서 단체활성화 방안과 관련된 열띤 토론장이 끝나면 2차는 또다시 호프집에서 정치적, 종교적 사안을 놓고 더 골치아픈 논쟁을 이어가곤 하였다. 처음에는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반박과 재반박으로 이어지는 토론이 흥미로웠으나 술기운이 들어간 언쟁은 결국 모임의 금기어들이 탄생되었다. 우리 모임에서는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총무로서 많은 사람들과 전화 통화를 하고 각자의 형편을 알게 된 친분관계도 있지만 많은 남자들 사이에서 여자의 발언은 간혹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2차에서 번번이 반복된 언쟁을 피하고 친밀한 관계형성뿐만 아니라 노래를 좋아하는 나의 사심까지 들어가서 몇 차례 노래방에서 2차를 하게되었다. 당시 사적인 모임에서 2차 노래방이 코스처럼 진행되던 때이기도 하였다. 


시민단체모임이 무슨 친목모임이냐는 몇 사람의 강력한 항의로 2차 노래방은 몇 차례로 끝이 났지만 그때 사무국장의 '부치지 않은 편지'를 듣게 되었다. 김광석 노래라는 사실이 놀라웠고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에 대해서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일을 참 잘하는 사람이었다. 또 배울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웃을 때 소년처럼 순수한 얼굴을 하는 사람이다.


사무국장은 말부터 행동까지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고 섬세한 사람이었다. 처음 대면했을 때는 나보다 나이가 한두 살 정도 위인 줄 알았다. 차분차분한 목소리로 대화를 주도하는 말솜씨에 다른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사람이었다. 그가 하는 모든 말은 진정성이 깃들어 있었다. 특히, 나의 절친은 말할 때와 먹을 때 특유의 성격을 엿볼 수 있었다.


재미난 이야기가 생각나면 먼저 짧게 웃고 시작한다. 언어적 습관일 수도 있는데 말하기 전부터 장면을 떠올리고 있는 듯하였다. 그러면 듣는 사람조차 함께 웃기 위하여 최대한 이야기 속의 장면을 상상하며 듣게 된다. 낮은 톤으로 천천히 전달하는 말의 흐름 속에서 어느덧 사람들은 빠져들게 된다. 평소 나는 사람들과 대화에서 이해되지 않은 상황이나 인과관계의 오류, 논리적 모순을 발견하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곧바로 질문을 하며 말머리를 세워 짚고 넘어가야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하지만, 절친의 말솜씨는 말머리를 세울 필요가 없었다. 모든 이야기는 친절하고 논리적이며 세밀하게 묘사되기 때문이었다.


나는 밥을 먹을 때 가족들로부터 여러 번의 주의를 받았다. 너무 '쩝쩝'소리를 내고 먹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들이나 남편으로부터 쩝쩝소리에 대한 경고까지 먹고도 그 소리를 내지 않고 먹으면 음식이 맛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쩝쩝거리면서 밥을 먹게 된다. 정말로 어려운 자리에서 쩝쩝거리지 않고 밥을 먹다보면 어느새 밥맛이 사라지곤 하였다. 


그런데 나의 절친이자 풀잎같은 사무국장은 먹을 때 섬세함이 빛을 발하는 사람이었다. 함께 술을 마실 때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와 함께 술을 마신 사람들은 대체로 만취하기 일수였다. 거푸 잔을 권하면서 말장단을 쳐주고 흥을 돋우다보면 영락없이 앞자리의 사람은 곤드레만드레가 되곤 하였다. 그런데 작은 체구의 사무국장은 한번도 만취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섬세하고 세심한 사무국장은 그렇게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며 나의 절친이 되었다. 매사 직설적이고 할말이 많은 나의 가정사에 대해서 이말저말 이야기를 하다보니 절친은 내 가정사의 상담자가 되었다가 때로는 내담자가 되기도 하였다.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자체가 맑은 날과 흐린 날이 반복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절친의 아내를 알지 못 한 상태에서 모든 것이 절친 아내의 잘못일 거라고 짐작했다. 돈벌이가 안 되는 일만하면서 풀잎처럼 번번이 쓰러져도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으며 묵묵하게 자기 길을 걸어가는 절친의 편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런 꺼닭에 매번 서툴게 절친의 이야기에 개입하고 충고를 하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참 현명하지 못한 조언자이고 상담이었다. 그래도 진심어린 조언탓인지 절친은 끝까지 내 말을 경청해 주었다. 반면에 나의 절친은 한번도 나의 불평많은 인간관계나 가정사에 대해서 충고를 하지 않고 내 편이 되어 들어주었다. 그래도 친한 친구가 되었다는 것이 신기하긴 하였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아니 헷갈리는 사람을 만나면 그사람에 대해서 인간관계 경험이 많은 절친에게 묻곤 하였다. 그런데 절친은 내 질문에 응답 원칙이 있었다. 좋은 사람의 경우 확신에 차서 그 사람의 장점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데 세간의 평판이 나쁜 사람의 경우 흐지부지 모른다고 하거나 침묵하였다. 처음에는 재촉하며 그 사람의 평판의 끝을 계속 듣고 싶어하였지만 침묵의 의미를 어느덧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은 남편과 절친의 차이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문제는 우리 집에 함께 살고 있는 남자도 절친과 비슷한 사람이라는 거였다. 말이 신중하고 소년처럼 웃고 먹을 때 얌전한 사람이었다. 절친과 남편은 많은 공통점과 작은 차이점을 갖고 있었는데 어이없게도 소통에는 엄청난 차이를 불러왔다.


절친은 나에게 세상에 물들기 쉬운 직업 세 가지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경찰, 기자, 창녀라고 하였다. 그는 오랫동안 직업이 기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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