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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네 Feb 02. 2023

귀여운 어머니

100일 글쓰기 카페: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시간

어제는 어머니께서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어머니께서 동생 편에 보내주신 피굴을 잘 먹었다고 전화를 미리 드렸어야 하는데 너무 늦었나 싶어 '아차' 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흥분된 목소리로 책 이야기를 하셨다. 내가 연말에 출간한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시간" 책을 고향집에 두고 왔는데 어머니께서 보셨나 보다.  

설명절에 찾아간 고향집에서 책을 꺼내놓자 어머니는 반가워 하시며 꼭 읽겠다고 하셨다. 서울에서 대학원에 다니는 조카나 읽게 하려고 오빠 딸을 위해서 가져간 책이었다. 책의 주인을 밝히지 못 하고 어머니께는 글씨가 너무 작아서 보시기 어려우실 거라고만 하였다. 책을 꼭 읽겠다는 어머니의 말을 건성으로 대답하였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책 내용이 너무 좋고 재미가 있다고 하셨다.  

내가 쓴 글이고 여러 사람의 글을 엮은 책이지만 어디가 그렇게 재미가 있었는지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께 얼마나 읽으셨냐고 물었다. 차마 어떤 내용이 그렇게 재미가 있었느냐고 묻지는 못했다. 그랬더니 어머니께서는 1페이지를 읽으셨단다. 아, 그럼 서문을 읽으셨구나 싶었다. 11P 작은 글씨체를 읽으셨다는 것이  다행스럽기도 하고 딸이 지은 책을 자랑스러워 하며 피드백을 해 주시려고 직접 전화까지 하신 팔순을 넘기신 어머니가 고맙기도 하였다.  

몇 번이고 책 내용이 너무 좋다고 하셨다. 정말로 니가 쓴 것이 맞느냐고 묻기도 하셨다. 이번이 다섯 번째 책인데 어머니께 책을 드릴 생각을 못 했다. 몇 페이지를 더 넘기면 어머니 이야기도 나오는데 그 부분은 아직 안 읽으신 듯하셨다. 진짜로 니가 쓴 책이 맞느냐고 묻는 어머니의 칭찬에 멋쩍어서  직업이 글쓰기 선생이고 작가라며 얼버무렸다.  

이번 설명절에 고향집에 갔다가 너무나 아이처럼 변해버린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힘이 들었다. 미래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두려움에 가벼운 몇 마디 말만 주고 받았다. 말끝에 어머니의 이성을 믿지 못 해서 동네 사람들 흉보며 구업을 쌓지 말라고 겁을 주었다. 집집마다 자식들 사정이 다르니 엄마 자식들 자랑은 절대 마을회관에 가서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까지 했었다. 전화통화를 하다가 명절에 했던 당부가 생각났다. 순간, 그 말이 걸렸다. 자식들 자랑을 인생의 낙으로 삼았던 어머니께 새로운 자랑거리가 생기신 듯하다. 바로 내가 낸 책이다.  

이번 어머니 단속은 그냥 포기해야 겠다. 어머니가 새로 발견하신 자랑거리를 모른 척 해 주기로 했다. 셋째 딸이 책을 썼는데 너무 좋은 말을 잘 썼다고 동네방네 자랑하실 어머니를 그냥 감사하며 이해하기로 했다. 자신의 험난한 삶 속에서 보람된 것을 찾고 계시는 귀여운 어머니 모습을 인정하기로 하였다. 셋째 딸을 위해 칭찬과 격려를 해주려고 전화까지 하신 어머니께 고맙다고 하였다.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사랑하기로 하였다.

 "엄마, 전화해 줘서 고마워요. 이렇게 책을 읽고 재밌다고 말해주니까 다음에는 더 잘 써 볼게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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