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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Mar 27. 2020

"너도 애자야?"

비장애 형제 '디노'의 이야기

비장애 형제자매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은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내 형제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과 사회의 시선으로 인지하는 것.


처음 오빠에게 장애가 있다고 인지한 건 아주 어릴 때였어요. 엄마가 어릴 때부터 오빠는 장애가 있다고 알려주셨거든요. 정확히 어떤 장애가 있고 어느 수준인지 들었던 때는 초등학교 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왜 그랬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엄마는 저를 앉혀 놓고 말씀하셨어요. 오빠는 다운증후군이라는 장애가 있는 사람이고, 그래서 생김새가 다르고 지적장애가 있다고요. 


어릴 때부터 밖에 나가면 어른들이 

“너는 오빠가 저러니까 부모님한테 잘해야 한다”

라는 말을 하잖아요. 그럴 때마다, ‘오빠가 저런 게 뭐지?’라고 생각했는데, 그때 알았어요. 오빠가 장애가 있어서 그런 말을 했던 거구나.


처음 오빠의 장애를 알게 되었을 때 저는 별 생각이 없었어요. 어른들이 그런 말을 할 때면 ‘오빠가 저런 게 뭐가 어때서? 그렇다고 해도 나랑 뭐 크게 다를 게 있나?’ 하는 반발심이나 반항심이 들었죠. 솔직히 그땐 저도 오빠도 어렸으니까, 우리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오빠는 그냥 장애가 있고 세상 사는데 조금 불편한 요소를 가졌을 뿐인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저랑 오빠는 별개의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사회의 시선으로 제가 장애인의 동생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 건 초등학교 때였어요. 오빠랑 제가 같이 있거나 같이 다니는 모습을 누가 보았는지, 학교 내에 소문이 돌았던 모양이에요. 아직도 그 순간이 정확히 생생하게 기억나요. 줄 서서 급식을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머리띠를 하고 단발머리를 한 여자아이가 갑자기 저한테 다가와서는 귓속말로 이렇게 말했어요.


“너네 오빠 애자라며? 그럼 너도 애자야?”


그 친구에게 저는 “누가 그래?” 하고 대꾸하고는 그대로 돌아섰어요. 급식을 받아서 제 자리로 돌아왔는데, 먹지도 못하고 다 버렸어요. 부끄러웠고 수치스러웠어요. 무엇보다도 화가 났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 ‘애자’라는 단어는 심한 욕이었으니까요.


‘오빠가 왜 애자야? 우리 오빠는 그런 나쁜 소리를 들을 만큼 잘못한 게 없는데 왜 그런 말을 들어야 하지?’ 속이 부글부글 끓으면서 화가 많이 났는데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속으로 삭혔어요. 그 친구한테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했죠. 그게 제일 분해요. 머리채라도 잡고 싸웠어야 했나 싶어요. 그 날 저는 사회에서, 또래 집단에서 생각하는 장애인과 그 형제들에 대한 인식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어요.


지금 그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화가 나요. 모든 사람들에게요. 장애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래서 장애를 가진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냥 불쌍하고 측은하게 생각하거나 모자란 사람 취급하는 게 화가 나요. 그리고 그렇게 다른 사람에 대해 알 생각도 없이 단편적으로만 판단하고 자기 생각에 갇혀버린 사람들이 불쌍해요.





Written by 디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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