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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Apr 10. 2020

나는 내가 왜 피곤한지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비장애 형제 '새잉'의 이야기

나는 늘 피곤했다. 어렸을 때의 나는 분명 힘이 넘치고 생기발랄하고 어디서든 당당한 아이였는데 10대를 지난 어느 순간부터 극도로 무기력해졌다. 아침이 되면 온몸이 퉁퉁 부은듯한 절망적인 통증을 느끼면서 눈을 떴고,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길에는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쪼그라드는 기분이 들었다. 축 늘어지는 몸뚱이를 억지로 곧추세워 수업의 쳇바퀴를 돌고 나면 다시 집에 왔을 무렵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어 밥 먹을 기운도 없었다.


입맛이 없어 침대에 누우면 쟤는 방에만 처박혀 있니, 밥도 안 먹고 잠만 잘 거니, 먹은 게 없으니 기운이 없지, 억지로 더 먹고 힘내서 공부해야지, 다른 친구들은 홍삼과 커피를 들이켜고 새벽까지 공부한다더라, 속사포 같은 잔소리가 나를 수없이 찔러댔다. 미간을 찌푸린 채 기절한 듯 잠이 들면 불안한 악몽에 시달리다가 심장이 아파 동틀 녘에 깨곤 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왜 피곤한지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공부가 힘들어서 그러려니, 입시를 치르는 학생들이 다 그렇지 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더 열심히 문제집을 풀지 못하는 나를, 집에 오자마자 드러눕는 나를, 힘내서 새벽까지 버티지 못하는 나를, 웃지도 않고 매력 없이 무뚝뚝하게 짜증만 내는 나를 채찍질하고 미워하고 다그치기만 했다. 반포의 전망 좋은 아파트들이 앞다투어 한강의 리버 뷰가 얼마나 멋진지 뽐낼 때, 나는 넘실거리는 한강의 물살을 보며 어떻게 하면 고통 없이 익사할 수 있을까 매분 고민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우울한 지도 알지 못했다. 내가 공부를 못하고 성적이 안 좋아서 쥐구멍 속 생쥐처럼 초조하게 바들바들 떠느라 지쳤다고 넘겨짚었다. 마음을 대범하게 먹고 내가 더 열심히 살면 악순환이 해결되리라 굳게 믿었다. 나는 내가 아픈 원인이 나 말고 다른 곳에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의 우울함이 분노에서 기인했다는 것도 더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내가 얼마나 가족들을 죽도록 혐오하는지, 그것을 얼마나 격렬하게 표현하고 싶은지, 내 고통보다 더 날카로운 칼날로 얼마나 그들을 상처 내고 싶은지 나 자신도 알지 못했다. 나는 이 모든 게 다 내 탓인 줄 알았다. 나는 실패작인 나를 안고 10년 넘게 죽지 못했다.





P.S. 제가 가장 떠올리기 싫은 기간을 쓰느라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자꾸 잊으려고 노력해서 그런지 이 시기에 있었던 일이 유독 잘 기억나지 않기도 해요. 그리고 가족들과의 관계 문제도 분명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분명 제가 잘못해서 생긴 결과들도 있었기 때문에 모든 걸 다 가족들 탓으로 돌리는 것 같은 죄책감도 들어요. 아직까지도 왜 그랬는지 명확하게 잘 모르겠고 지리멸렬한 시간들이라 인생에 있어 가장 수치스럽고 혼란스러운 기억이에요. 


그런데 이 기억을 제 나름대로 정리해서 반듯하게 놓지 않으면 끊임없이 제 발목이 잡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조금씩 더 고민해 보려고 해요.





Written by 새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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