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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비장애형제들의 쓰담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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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Oct 19. 2020

가족은 지옥불입니다

비장애형제 '나니'의 이야기

“가족은 지옥불입니다. 본인은 본인 갈 길 가면 돼요. 너무 뒤돌아보지 마세요. "

관상을 보러 갔다가 관상가 아저씨의 말 한마디가 내 숨을 쉬게 만들었다. 나는 잘 살아 볼 거라고 늘 안간힘을 쓰면서 살려고 노력하고, 그 결과 인간관계, 연애, 대학, 취업·· 누구나 고민하는 이 모든 것들이 나는 나름대로 잘 해결되고 있었다. 하지만 가족들이 내 앞길을 막는다고 생각했다. 특히, 장애를 가진 나의 언니.

비장애인 형제로서의 삶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희생’이다. 단지, 장애가 없다는 이유로 장애 형제에게 양보하고 배려하고 봉사하며 살아간다. 장애인 형제야 그렇다 치고 부모님들까지 나를 힘겹게 만든다. 내가 무슨 가장도 아니고 매번 나의 손길 없인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부모님의 갈등, 부모와 장애 형제와의 갈등을 조율하는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도 오롯이 ‘나’의 몫이다. 나의 쓸데없이 높은 ‘책임감‘은 이런 역할을 더 강화시킨다.

부모님과 장애 형제와의 사이에서 책임감이라는 무거운 짐을 힘들게 끙끙대며 들었던 적이 있다. 회사에서 갑작스러운 관리자 역할을 하게 되면서 회사에 신경 쓸 일이 너무나도 많았는데 집안일까지 함께 신경 쓰기에는 아직은 어린, 이제 막 20대 중반이 된 나에게 너무 벅찼다. 하필이면 중요한 이 시기에 언니가 집에만 있게 되면서 언니의 신경질적인 성격이 더 심해졌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엄마의 갱년기가 너무나 심하게 왔다. 내가 아는 엄마가 아닌 것처럼 늘 쳐져만 있었고 이러다가 엄마를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늘 누워만 있었고 언니는 늘 혼자 밖을 나돌아 다녔다. 언니와 엄마의 트러블은 항상 나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왔다. 업무를 하는 중에도 수시로 걸려오는 언니와 엄마의 전화를 해결해야만 했고 나는 너무 지쳤다.

나의 책임감은 회사를 버리는 쪽을 택했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내가 집에 있으면 엄마도 언니도 다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언니를 내가 케어하면 엄마가 조금은 숨을 쉬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퇴사를 결정했다. 퇴사 이유를 팀장님에게 말할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팀장님은 나에게 왜 말을 하지 않았냐며 미안하다고 까지 했다. 나를 잡을 수 없는 이유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팀장님도 대표님도 아무도 나를 잡지 못했다. 그렇게 회사를 나오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27살이 되었을 무렵, 나는 너무나 지쳐있었다. 엄마는 ‘너라도 살려면 나가서 살아라’라는 말을 했고, 나는 다시 취업을 함과 동시에 처음으로 독립을 했다. 하지만 독립해 있는 동안 몸은 다른 곳에 있어도 마음은 항상 집에 가 있었다. “ 오늘은 별일 없었어?”라는 질문을 하고 엄마의 하소연을 들어주면서 내가 없는 집안은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는 ‘책임감'에 오래 나가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독립 5개월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가족은 지옥불입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한결 가벼워졌다. 불지옥에서 벗어나면 되는 것을 왜 나는 그곳에서 고통받고 있는지 이제야 깨달음을 얻었다. 가족을 모조리 무시하고 살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그들의 인생에서 나라는 존재가 ‘가족’ 일뿐,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는 ‘신’은 아니라는 것을 나 스스로가 자각했다. 평생 내가 가족을 책임질 수 없기 때문에 이제는 나 없이도 가족들이 잘 지낼 수 있게, 그리고 내가 내 인생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가족들을 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

Written by 나니

*본 에세이는 <2020년 상반기 나는 북클럽 '읽어봐요, 대나무 숲!'>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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