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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Dec 10. 2020

꿈을 좇는 삶은 사치인가요?

비장애형제 '딸기'의 이야기

2011년 2월 , 나는 스물두 살이었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겠다며 그 당시 꿈만 같던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그다음 해 여름, 사랑스러운 막냇동생이 정신 병동에 첫 입원을 했다. 동생의 모습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전화기 너머 당시 상황을 전해주었던 엄마의 말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난다. 이 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발작과 같은 광기 어린 분노 증상으로 동생의 양 손과 발을 침대에 묶어놓고 엄마가 보호자로 동생을 24시간 지켜봐야 했던 상황이었다.


공포 영화에서나 볼 법한 참담한 모습으로 동생은 일주일 입원 기간 동안 여러 검사를 받았지만 그 어떤 문제도 찾아내지 못했다. 얼마나 괴로운 시간이었는지 엄마의 목소리는 완전히 넋이 나간 사람 같았고 두 살 차이 나는 여동생은 그 당시 스트레스로 급격한 체중감소를 겪었다. 우리 가족은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유학 중이었던 나는 가족과 함께하지 못했다. 당시 교제 중이었던 남편의 도움으로 유럽에서 체류할 수 있었고 전공 특성상 유럽에서 꿈을 이루고 싶었기에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사실 유학생이 체류에 대한 걱정 없이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감사할 일이 참 많았는데도 가족들에게 힘이 되지 못하는 나 자신을 원망하고, 스스로에게 터무니없는 높은 기준으로 나 자신을 괴롭히며 살았다. 동생으로 인해 우리 가족의 삶은 180도로 뒤집어졌는데 내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은 너무나 낭만적이었고 안락하였다. 그 괴리감이 너무나도 커서 스스로 불행하기를 자처하고 내 마음도 지옥을 사는 게 , 나 없이 힘든 시간을 보내는 가족에게 차릴 수 있는 예의라 착각하며 지냈다. 유학 생활 내내 동생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마다 온실 속 화초 같은 꿈을 좇는 삶은 나에게 부당한 일처럼 느껴졌고, 동생을 위해 전공을 바꿔야 하는 건 아닌지 몇 번이나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가장 최근 동생이 안 좋았던 때는 2018년 겨울부터 2019년 3월이었다. 또다시 찾아온 동생의 문제 행동은 폭력적인 성향과 함께 불면 증상으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나빴다. 그때 처음으로 엄마가 너무나 지친 목소리로 "네가 벨기에에서 일하고 있는 시설로 동생을 보낼 방법이 없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동생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은 그곳밖에 없는 것 같다." 고 하셨다. 너무 힘들어서 전화기를 사이에 두고 엄마도 나도 울었다.


엄마는 임신 중 당신의 부주의로 동생이 지적장애를 갖게 된 건 아닐까 자책하는 마음의 짐을 지고 계신다. 그러면서 나와 내 동생에게는 "늘 ㅇㅇ는 내가 데리고 잘 살 거니까, 너희는 너희들 인생이나 잘 살아라." 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런 엄마의 노력과 바람이 너무나 허무할 정도로 동생의 장애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늘 씩씩하고 꿋꿋하게 동생을 돌봤던 엄마도 동생이 안 좋아지는 주기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오다 보니 미래에 두려움을 갖게 되셨고 그에 대한 부담감을 첫째 딸인 나에게 처음으로 비치시고 말았다.


우리 가족 모두, 엄마도 아빠도 나도 여동생도 각자 다른 방식으로 아팠다고 생각한다. 너무 아파서 내 꿈을 내려놓으려던 때가 몇 번 찾아왔는데 그때마다 동생 때문에 전공을 바꾸는 건 옳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되든 간에 '내가 아닌 동생을 위해서 사는 건 안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어쩌면 아픈 동생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걸 몇 번의 갈 등 끝에 비로소 인정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결론을 내리기까지 괴로움에 얼마나 발버둥 쳤는지 모른다. 동생에 대한 걱정과 가족들 생각에 울면서 막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날이 몇 번이었던지, 누가 보면 '저 사람 정말 미쳤나' 했을 거다.


그런 날이 여러 번 있었고 그러다 어느샌가 어떤 실낱같은 희망처럼 엄마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그게 나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 역설적이게도 동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려서 내 꿈을 포기하려 고 했는데, 그 순간마다 포기하지 않고 내 꿈을 붙잡았더니 나는 그토록 바라던 내 꿈을 이뤘고 더불어 내 동생을 위해 더 큰 꿈, 새로운 소망도 갖게 되었다. 지난 8년 동안 동생을 통해 아주 지독한 정신 훈련을 받으면서 나의 삶은 동생까지 품고 갈 수 있도록 더욱 단단히 자리 잡아가며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여전히 내 마음은 연약하고 그래서 언제라도 별의별 근심 걱정에 빠질 테지만 그래도 이만큼 지나온 세월이 있으니 전보다는 좀 더 차분하게 문제 상황을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또 나와 같이 어려움을 겪는 다른 비장애형제분들도 그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Written by 딸기

*본 에세이는 2020 상반기 나는 북클럽 '읽어봐요, 대나무숲!'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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