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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Dec 22. 2021

가족을 위해 나를 죽이거나, 나를 위해 가족을 죽이거나

3화. 비장애형제들의 새로운 미래 찾기 by 은아

2화. [장애인 학대는 어디에나 있다]에서 이어집니다>


2021년 9월 초. 일요일 오후 2시.


정아는 활동지원사님과 산책을 보내고 언니와 만나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지금 정아를 담당하고 계신 활동지원사님은 따뜻하고 인내심 있게 정아를 기다려주는 분이라 정아도 잘 따랐다. 하지만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고 좋은 분을 만나기 까지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첫 번째, 엄마를 설득하기


엄마는 몇몇 활동지원사들이 발달장애인을 학대하는 사례를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정아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싶지 않아 했다. 목격한 학대 사례에 대해 관리기관에 제보를 하기도 했지만, 그 사람에 대한 명확한 처벌은 없었다고 했다. 


정아도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예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이 살아가려면 제도를 이용해야 한다고, 엄마를 설득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두 번째, 중증 발달장애인을 맡겠다는 사람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


대부분의 활동지원사들은 중증 장애인을 기피했다. 이용자가 경증 장애인이든 중증 장애인이든, 활동지원사들이 받는 금액은 크게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일의 강도와 관계없이 동일한 대가를 받는다면 쉬운 일을 선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세 번째,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기다리기


몇 개월의 기다림 끝에 만나보았던 한 활동지원사는 본인이 볼일이 있을 때는 남편에게 정아를 맡기겠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용자를 타인에게 맡기는 행위는 금지되어 있다. 그럼에도 활동지원사의 공급보다 수요가 월등히 많은 현실에서 많은 장애인 가족들은 눈감아 줄 수밖에 없는 듯했다.


그렇게 몇 달 동안의 기다림 끝에 정아는 현재의 활동지원사님을 만날 수 있었다.




사실 언니와는 따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다.


“언니, 앞으로 이렇게 부모님이 안 계시면 정아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 본 적 있어?”


“왜 없겠니. 계속 생각만 하고 있지.”


언니도 정아의 거취에 대해 누구 못지않게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문제이기에 입 밖으로 꺼내 들춰내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 가족이 모두 수면 아래로 꽁꽁 감춰두고 싶었던 ‘정아와의 미래’


엄마의 입원으로 부모님이 없는 상황을 겪어보고 나서야 그 문제가 코 앞에 닥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은아야, 내가 정아랑 같이 살 수 있을까?

그냥 눈 딱 감고 내가 정아와 함께 살면 되려나 싶다가도, 또 너무 막막하단 말이지.

너희 형부도 있고, 애도 둘이나 있고, 나도 직장도 다녀야 하니까."


"언니 그럼 그룹홈은 어떨까?"


"나도 알아 봤는데 그룹홈도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닌 것 같아. 들어가려는 사람은 많은데 기관 수는 너무 적잖아. 

그리고 그룹홈은 ‘신변처리가 가능한 사람, 낮 시간 동안 근로가 가능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는 거야."


"그럼 정아는 꿈도 못 꾸겠네. 일상생활 하나하나를 다 누군가 도와줘야 하잖아. "


"정말 마지막 보루로 장애인 거주시설은 어떨까 생각해 봤어."


"언니, 요즘 '탈시설'이라고, 장애인들이 거주시설에서 나와서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쪽으로 바뀌고 있대. 앞으로 장애인 거주 시설은 점점 없어지게 될 것 같아. 시설은 못 간다고 생각해야 할 거야.”


머리를 맞대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언니와 나는 그저 씁쓸히 웃으며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어렵다, 정말.”




‘장애인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아간다.‘는 탈시설, 커뮤니티케어 정책에 정아의 삶도 고려가 되고 있을까? 정아가 미래에도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재의 정책에서는 24시간 사람의 지원이 필요한 정신적 장애인에 대한 고려는 거의 없어

정아가 정책의 수혜를 받을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단순히 건축물로써의 ‘집’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발달장애인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24시간 생활 전반과 의사결정 과정을 지원하는 촘촘한 ‘인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또한 그 인력은 지금의 주간활동서비스, 활동지원서비스 제도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으로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발달장애인의 삶을 지원하는 사람들에 대한 엄격한 교육, 관리, 평가, 그리고 그에 따른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져야만 ‘인적 안전망’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장애인 정책에서 이러한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결국 정아를 비롯한 발달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게 생활하는 방법은
가족들이 희생하는 것뿐이다.


최근 코로나19의 상황에서 발달장애인 자녀를 죽이고 어머니 본인도 목숨을 끊은 사건들이 떠올랐다. 노숙인 시설의 상당수가 발달장애, 정신장애인이라는 기사도 생각이 났다. 


나와 언니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나는 나의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우리 가족은 서로를 죽이지 않고, 서로를 버리지도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2021년 9월 초. 일요일 오후 6시.


정아와 긴급돌봄기관으로 가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간병인을 구했다는 것이다. 온몸에서 긴장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엄마에게는 자신 있게 ‘내가 정아가 적응하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이야기했지만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었나 보다. 


다행이라고 얘기하면서도 엄마에게 언니와 나눴던 이야기들을 전했다. 언니도 나도 각자 생활이 있으니 언제까지 도울 수 없다고, 정아가 가족으로부터 독립해서 살아가는 연습을 지금부터 준비해 나가야 한다고 얘기했다.


“엄마,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어. 우리 집도 엄마 아빠 없을 때를 대비해야 해. 생각하고 있는 대책이 있어?”


“대책이 뭐가 있겠니.
한 날 한 시에 죽는 게 대책이야.”


“아이참! 그게 말이야? 정아 죽이고 엄마도 따라 죽는다는 게 대책이야?”


엄마는 꼭 이렇게 한 번씩 분통이 터지는 말을 던진다. 당장 대책을 마련할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하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막막한 엄마의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을 죽이고 본인도 자살하겠다는 말은 언니나 내가 정아를 돌봐주지 않으면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협박처럼 들린다.


또 다른 자식인 내 생각을 한다면 이런 말을 입에 담을 수 없을 것이다. 뭐라고 엄마에게 쏘아붙이려다 엄마가 환자라는 사실을 상기하고 참기로 했다. 엄마가 회복되면 진지하게 다시 얘기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비장애형제 모임 나는(It’s about me!)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혜연에게 주말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혜연은 정말 고생 많았다고 하면서 특히 나 자신의 삶을 포기하려 하지 않고 지켜내려 한 행동들을 응원해주었다. 


“만약 예전의 언니였다면 직장도 그만두고 동생을 돌보러 가지 않았을까? 비장애형제로서의 정체성이 너무나 중요했으니까.”


그랬다. 예전의 나였다면 비장애형제로서 동생을 돌보기 위해 현재 나의 삶을 포기해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비장애형제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내 전부는 아니다. 


나는 장애가 있는 동생이 아닌 ‘나’라는 사람이 중심이 된 삶을 살고 싶다.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이런 고민들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혜연도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고, 그동안 비장애형제 모임 나는(It’s about me!) 안에서도 미래와 관련된 다양한 고민들을 나눠왔다. 


커리어와 결혼, 출산과 부모님의 노후, 그 과정에서의 장애형제의 거취…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많은 비장애형제들이 앞으로도 나 자신을 중심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고 했다. 어떤 비장애형제들은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는 미래에 장애형제가 어떻게 살아가든 모르는 척하는 방법밖에 답이 없다고 했다. 


나를 포함한 많은 비장애형제들이 걱정하고 있는 ‘미래’.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모두 최악인 상황.


그렇다면 우리들의 목소리를 모아 보는 것은 어떨까? 막막하다고, 답답하다고 말하는 것을 넘어 우리들의 각자가 가진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함께 얘기하고, 머리를 맞댄다면 어쩌면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미래에 내가 나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는 것과 장애형제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을까?” 


많은 비장애형제들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이미 부모님의 부재로 인해 원했던 삶을 포기하고 장애형제의 삶을 책임지고 있는 분들도 있겠지요. 혹은 장애형제와의 연을 끊은 분도 계실지 모릅니다.


우리 비장애형제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으며,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여야만 이 상황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It’s about me!) ‘새로운 미래팀’에서는 비장애형제들의 고민과 목소리를 가시화하기 위해 비장애형제들을 인터뷰하고 글과 영상으로 담아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필요점과 대안들을 가족과 사회에 제시하려고 합니다. 


앞으로의 미래가 고민인 분이나,
현재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는
비장애형제라면 누구든,
저희에게 연락을 주세요. 


내가 가진 고민이 크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 분 한 분의 목소리가 너무나 소중하니 고민하지 말고 말씀해주시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아래의 신청서를 작성해주시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인터뷰 참여 신청> https://forms.gle/jTc5XUc8L8WF3zME9



Written by. 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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