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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Jan 09. 2022

현직 사회복지사인데요, 저도 답이 없어요

비장애형제 '보람'의 이야기 ① - by 은아, 혜연

나의 삶을 지키면서 장애형제가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막막하기만 한 장애형제와의 미래. 
나 혼자 이런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을 텐데.
다른 비장애형제들은 앞으로의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 나가고 있을까?
비장애형제모임 나는(It's about me!)에서는 
다른 비장애형제들의 이야기를 찾아 나서기로 했습니다.


매서운 찬 바람이 불어오는 2021년 12월의 어느 날, 


첫 번째로 만난 비장애형제는 사회복지사로서 장애인가족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보람(36)님이었습니다. '나는 북클럽'에서 나눈 비장애형제들과의 시간이 일상에 큰 활력이 되었다는 보람님은 앞으로의 미래도 함께 고민해보고 싶어 바로 인터뷰를 신청했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독립해서 가족들과 떨어져 살고 있는 보람님에게는 두 분 부모님과 최중증 발달장애를 가진 한 살 아래의 남동생이 있다고 했습니다. 






유리가 없는 집


(은아) 동생 분의 장애 정도에 대해서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보람) 제 동생은 정말 최중증이에요. 말을 못 하고 자폐적인 성향도 있어요. 자해도 했고요. 어릴 때 동생이 말을 못 하니까 머리를 박거나 손으로 쳐서 자꾸 유리를 깨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 집에는 유리가 없었어요. 책상에도 유리가 없고 창문은 다 뽁뽁이나 신문 같은 걸로 싸여 있었죠. 저희 가족은 햇빛을 못 보고 살았어요. (웃음) 그 정도로 중증이어서 온 가족이 너무 힘들었어요. 너무너무 힘들었고. 엄청 힘들었어요.


동생을 잃어버리기도 굉장히 많이 잃어버렸어요. 저도 학교 안 가고 전화 기다리고. 한 번은 정말 일주일 동안 잃어버린 적도 있었는데, 알고 보니 아들 없는 집에서 아들 삼아 데리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애가  이상하니까 일주일 만에 경찰서에 데려다준 거예요.


그런 증상들이 심하니 굉장히 어릴 때부터 신경안정제를 복용했는데요, 약을 복용함에도 불구하고 별 효과를 보지 못하다가 동생이 스물한 살에서 두 살 정도에 그 약이 맞는 거예요. 갑자기 증상이 많이 좋아졌어요. 그래서 지금은 동생을 두고 집을 나갈 수가 있어요. 엄마가 일도 하실 수 있게 되셨고요. 가족이 그제야 안정된 거죠. 안 그랬으면 저희 집은 부모님이 이혼하셨을 거고 저는 거의 떨어져 나갔을 거예요. 


(은아) '떨어져 나갔을 거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드셨나 봐요.


(보람) 맞아요. 사실은 대학교 때 집을 벗어나지 않았다면 저는 말라죽었을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우울증이 심했거든요. 자살 충동도 있었고. 그런데 부모님께도 말하지 않고, 정말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넘어왔어요. 새벽에 매일 깨서 울면서도 속으로만 삼켰어요. 


제가 부모님께 반항했을 때가 있었는데요. 동생이 안정되고 난 다음이었어요. 동생이 스물둘, 제가 스물셋쯤에 괜찮아졌잖아요. 그런데 동생에게 관심을 덜 줘도 되니까 엄마가 이제는 저를 양육하고 싶으셨던 거예요. 맨날 전화를 해서 뭘 해라, 뭘 해라, 뭘 해라… 저는 이미 혼자 다 커서 대학생이 되었는데 말이죠. 


몇 년 정도 참다가 처음으로 A4 몇 페이지 분량의 편지를 썼어요. 진짜 제 마음을 솔직하게 담아서. ‘어릴 때부터 이런 게 힘들었고, 엄마 아빠와 싸우는 것도 너무 싫었다. 엄마가 나한테 하는 것들 때문에 내 마음이 어땠는 줄 아냐. 엄마 아빠는 나에게 가족 간의 애정이나 애착, 화기애애한 분위기 같은 걸 느끼게 해 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엄마 아빠한테 아무것도 받은 게 없다고 생각한다. 경제적 지원 외에 감정적 지원을 하나도 받은 적이 없다.’ 이런 내용이었죠. 


그 편지를 주고 나서도 한동안 솔직하고 진지한 대화가 많이 필요했어요. 싸우기도 많이 싸웠어요. 밥상 던지고, 머리 끄덩이 잡고, 아빠가 처음으로 제 뺨도 때렸을 정도로. 그런데 제가 굴하지 않았어요. 그때 부모님도 깨달으셨던 것 같아요. 저와의 관계가 여차하면 정말 끝날 수 있다는 걸. 그래서 그때부터는 저와 거리를 좀 더 두셨어요. 많아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전화해서 그냥 일상생활 물어보고 동생의 큰 변화에 대해 말씀해 주시는 정도예요. 저도 도리는 다 하죠. 두 분한테 선언도 했어요. “동생이나 엄마 아빠에 대한 부양은 내가 할 거다, 근데 나에게 어떤 엄청난 애착과 애정 같은 걸 바라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그건 없다”라고.



내가 책임지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어요


(은아) 그럼 보람님은 이미 동생을 책임지겠다고 선언을 하신 거네요. 부모님의 반응은 어땠나요?


(보람) "우리 둘을 부양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동생은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 본인 돌아가시기 전에 죽이고라도 가겠다, 네가 책임지지 않게 하겠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어디서 배워오시나 봐요. 그 말이 너무 싫어요. 책임지지도 못할 말을 하시는 게. 그래서 사회복지사 되고 나서 한 번 진심으로 얘기한 적이 있어요. “엄마, 그건 말이 안 돼. 현실적으로 봐." 하고요.


제가 착한 딸이어서 동생의 부양을 책임지겠다고 결심한 게 아니에요. 현실적으로 봤을 때 답이 없기 때문이에요. 경증 발달장애인이라면 혼자서 생활할 수도 있겠지만 제 동생은 절대 그 정도가 아니거든요. 약을 복용해서 행동이 얌전해졌다고는 하지만 신변처리를 혼자서 못해요.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필요하고, 그 도움을 활동지원사나 다른 걸로 채울 수 없는 수준이에요. 생활 시설에 들어갈 수 있는 수준도 아니고요. 제가 생활시설 담당자라도 받지 않을 것 같아요. 


저도 사실은 대학생 때는 사회복지를 공부하면서 ‘내가 이 공부를 해서 동생을 진짜 좋은 데 보낼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사회복지사로 10년 간 일을 하면서 ‘아, 내 동생은 안 되겠구나’하고 느꼈어요. 제가 책임지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어요. 아이러니한데 우리나라는 가족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 가족이 책임져야 하는 거예요. 비장애형제라도 비장애형제가 책임져야 맞는 거죠. 버리면 나쁜 놈, 나쁜 가족이고. 


(은아) 현실을 더욱 잘 알다 보니 그런 결론을 내리셨군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동생에 대한 돌봄을 내가 책임지겠다는 결정을 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 같아요.


(보람) 저도 그래서 '나는 동생이랑 살기 전까지 하고 싶은 거 다 해야지. 혼자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후회 없을 때 얘를 만나서, 그때 동생을 돕는 마음, 동생이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좀 지내볼까.' 하는 생각을 해요.  


사실 옛날에는 동생이 되게 밉기도 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지금은 얘가 되게 귀엽게 느껴져요. 어릴 때는 막 짐덩어리 같은 느낌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동생의 상태가 호전이 되고 부모님이랑 관계가 정리가 되면서 저도 좀 안정이 된 거죠. 어차피 저는 비혼 주의자라서 결혼하지 않을 거고, 동생의 미래에 대한 다른 방법이 없으니 얘를 내가 책임져야겠다. 그냥 동생을 내가 봐도 되겠다 하고 정리가 되었어요. 또 ‘얘가 나보다 하루는 먼저 죽어야겠네.’ 이런 생각이 엄마처럼 들기도 하고요.


그때가 오면 후회 없는 마음으로 둘이서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고, 이것을 위한 최소한의 준비는 엄마가 해줬으면 좋겠어요. 엄마에게 얘기했어요. 내가 얘 목욕시키고 싶진 않다고 "나이 들어서까지 내가 목욕시켜야겠어? 남자 애를? 엄마. 인권 침해로 걸려."(웃음) 그래서 목욕 같은 것들은 엄마가 교육해줬으면 좋겠다고 말을 했죠. 될지는 모르겠지만. 


(은아) 동생과 함께 살게 되는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상상하고 계신가요? 또 그런 미래를 생각하면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어떤 것일까요?


(보람) 주간보호센터 이용이 거의 40대 후반에서 50대 정도에 끝나요. 그래서 저도 아마 그때는 은퇴를 하거나 직종을 바꿔서 비슷한 유사 직업을 찾을 것 같아요. 사회복지사가 워낙 일이 많아서, 사회복지사를 하면서 동생까지 같이 돌보며 살기에는 조금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한 10년 정도 더 일을 하다가 60대에는 동생이랑 지방 내려가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걱정되는 것은 말씀드린 것처럼 내가 동생의 신변 처리까지 다 해야 될 텐데... 50, 60대가 될 때까지 동생의 배변처리나 목욕을 도와줘야 한다니 그것까지 내가 꼭 해야 될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웃음) 이런 신변처리는 활동지원사 분들께 맡길 수 없어요. 목욕이나 면도, 대소변 처리, 옷 입히기, 이런 걸 해달라고 하면 아무도 안 하시거든요. 다 그만둘 거예요. 그래서 중증 발달장애인을 맡기시는 어머님들이 활동지원사 분들한테 따로 돈을 더 챙겨주세요. 발달장애인들이 활동지원사가 바뀌는걸 너무 어려워하니까. 계속해달라고 돈을 얹어주시는 편이에요. 


사실 저희 엄마가 작년 2월에 빙판이 넘어지셔서 고관절이 박살이 났어요. 엄마 간병을 아빠가 하셔야 하니까 동생을 돌볼 사람이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일을 그만두고 6개월 동안 동생을 봤어요. 활동지원사한테 맡길 수 없으니까요. 요청할 수 있는 일은 복지관 등하교, 간식 챙겨주는 정도죠. 목욕이나 면도나 대소변 처리나 옷 입히고 이런 일을 요청하면 아무도 맡지 않으려고 하니, 제가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어요. 6개월 동안 제가 키웠습니다.


(은아) 동생분을 돌보기 위해 이미 직업을 그만 두신 경험이 있으시고, 미래에도 또 직업을 바꿀 생각까지 가지고 계시는 군요. 그럼 만약에 동생분을 돌봐야 한다라는 조건이 없다면 다른 선택을 하셨을까요?


(보람) 그랬겠죠. 사회복지사를 계속 했을 것 같아요. 한 센터의 센터장까지 하지 않았을까요? (웃음) 그런데 생각해 보니 동생이 없었다면 애초에 사회복지를 안 했을 것 같아요. 원래는 글 쓰는 거 되게 좋아했어서 글을 쓰지 않았을까 싶어요.



장애형제의 곁에 아무도 없다면


(은아) 그런데 만약에 내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동생이랑 나랑 둘이서 살기로 했는데 내가 아파서 입원을 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람) 맞아요. 당장이라도 엄마 아빠랑 제가 한 차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 죽을 수도 있는 거고. 그래서 저는 엄마한테 빨리 하라고 닦달해서 동생을 기초수급자로 만들었어요. 수급자가 아니면 나라에서 봐주지도 않거든요. 제도가 변경이 되어서 30살이 넘으면 같이 사는 가족(부양의무자)의 재산을 보지 않고 장애인의 재산만 보고 수급자로 등록(주1)할 수 있어요.  


그리고 엄마 암보험 들어드렸어요. 일을 하면서 암보험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됐는데요.  이런 경우가 너무 많은 거죠. "어머니가 암에 걸리셨는데 애를 돌볼 사람이 없다, 한 부모에다가 친척도 없다." 아니면 갑자기 "암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얘를 위해서는 아무런 대책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복지관에서 일할 때 저도 비슷한 케이스를 봤어요. 갑자기 한 어머니가 암에 걸려서 입원을 해야 하는데, 발달장애인 혼자 남는 거예요. 그래서 도와달라고 저희 센터에 오셨죠. 저희가 전국 400개 생활시설에 전화를 돌려서 겨우겨우 지방 어디 시설에 보내드렸어요. 어머님은 그 사이에 암으로 돌아가셨고요. 다행히도 그분이 기초수급자로 인정을 받았는데요. 기초수급자한테는 한 달에 50만 원 정도 돈이 나와요. 그러면 시설에 원래 한 달에 한 번 내야 되는 이용료를 그 50만 원으로 충당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나마 요만큼의 안전망이라고 말씀드린 거예요. 진짜 요만큼. 




"사회복지사로 10년 간 일을 하면서
‘아, 내 동생은 안 되겠구나’하고 느꼈어요.
제가 책임지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어요."


남동생이 최중증 발달장애인인 보람님은 사회복지사로서 직접 일해보니 중증 발달장애인은 사회복지시설, 활동지원서비스 모든 곳에서 기피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동생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자신의 직업까지 버리고 동생을 돌보는 미래를 계획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사회복지사로서 느끼는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현실은 어떨까? 보람님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 다음화에 계속됩니다.



Written by 은아, 혜연


※ 비장애형제들의 새로운 미래찾기 프로젝트에 참여해주세요!

<인터뷰 참여 신청> https://forms.gle/jTc5XUc8L8WF3zME9


(주1)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하에서는 가구전체로는 급여별 선정기준을 초과하지만 가구를 분리・신청하면 기준을 충족하여 급여종류별 수급자로 선정될 수 있는 가구원 만 30세 이상의 중증장애인을 별도 가구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소득 및 재산 기준 확인 필요)

<보건복지부(2022), 국민기초생활보장사업안내, p.45> 
※ 가구 분리 시 기준 충족 별도가구 보장 (8) (조) 부모와 생계 및 주거를 같이 하는 30세 이상의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장애의 정도가 심한 등록장애인으로서 배우자가 없는 (손) 자녀, 또는 30세 이상의 만성질환, 희귀/중증 난치질환자 및 중증질환자 (암환자, 중증화상환자) 등으로 6개월 이상 치료/요양/재활을 요하는 미혼이거나 이혼/사별 등으로 배우자가 없는 (손)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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