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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Jan 17. 2022

'장애가 있는 노인'이 갈 수 있는 곳은 없어요

비장애형제 '보람'의 이야기 ② - by 은아, 혜연

"현직 사회복지사인데요, 저도 답이 없어요. - 비장애형제 '보람'의 이야기 ① " 에서 이어집니다.>


지금 당장의 미래


(은아) 보람님은 사회복지사로 일하시면서 많은 분들을 만나셨을 텐데요. 비장애형제도 만나보셨나요?


(보람) 그럼요. 제가 사회복지사로 9년 간 일하면서 대략 3천 명 정도를 만나서 상담해 본 것 같은데요, 그중에 비장애형제도 많았어요. 비장애형제가 찾아오는 경우 대부분은 부모님이 오랫동안 장애 형제를 돌보다가 돌아가신 경우예요. 


6, 70대가 된 비장애형제가 5, 60대인 장애형제를 데리고 오는 거죠. ‘우리 엄마가 8, 90세까지 장애형제를 돌보다가 돌아가셨는데, 지금 당장 이 친구를 돌볼 사람이 없다, 어떻게 해야 되냐.’ 하시면서요. 


그럴 때 사실 저희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나라 법은 장애인이더라도 65세 이상부터는 장애인이 아니라 노인으로 쳐요. 그러니까 장애인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가 없어요. 웃기죠. 장애인복지관이 아니라 노인복지관으로 가셔야 돼요. 



(은아) 그럼 노인 복지 서비스가 더 좋은 건가요?


(보람) 그렇지도 않아요. 활동지원(장애)과 요양보호(노인)를 비교해 보면 활동지원이 훨씬 더 서비스의 질도 좋고, 시간도 훨씬 더 많이 나오거든요. 그런데 그만큼 활동지원은 나라가 부담하는 게 훨씬 많으니까, 나라에서는 65세가 넘어가면 좀 더 수가가 낮은 요양보호로 넘겨 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문의하러 오시는 분들 중 절반 정도는 그럼 집에서 혼자 지낼 수 있게 요양보호사는 어디서 알아봐야 되는지 정도를 확인하고 가셔요. 나머지 반은 시설에 보내고 싶다고 하시죠. '내가 감당할 수가 없다, 그러니 시설에 보내면 좋겠다.'고요. 


하지만 장애도 있고 노인인 상태에서 들어갈 수 있는 시설은 없어요. 지금 건강한 장애인도 들어가기가 어려운데, 나이도 있고 노령 질환도 있고 심지어 장애도 있는데 받아주는 시설은 없죠. 시설에 살던 친구들도 노인이 되면 다 쫓겨 나오는 판인데요. 서울부터 부산까지 전국 시설에 전화해 보셔도 안 돼요. 그럼 다시 오셔서 결국 요양보호사는 어떻게 알아보냐고 물어보시는 거죠.


그런데 요양보호사를 신청하면 바로 되는 게 아니고 적어도 3개월에서 길면 6개월까지도 걸려요. 병원 기록이 있어야 요양보호사를 신청할 수 있는데, 병원 기록이 없을 때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3개월에서 6개월 이상 걸립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가셔서 신청하셔야 해요. 그래야 하루라도 빨리 되세요.” 하고 말하는 게 다예요.


이런 말을 하면서 저 스스로도 허탈하고 우울해요. ‘나도 저렇게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사회복지를 내가 왜 하지? 비장애형제로서의 나는, 내 동생은 어떻게 되는 거지?' 하는 막막함도 들고. 내가 사회복지를 하는 이유와 비장애형제로서의 나 사이에 충돌점이 계속 생기죠. 


(은아) 현재의 제도나 사회적 환경이 그대로 유지가 된다면 어쩌면 그분들의 모습이 우리들의 미래가 될 수도 있겠네요.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은아) 그렇다면 더 나은 미래, 즉 장애형제와 우리가 모두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으려면 어떤 것들이 갖춰져야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현재 탈시설이나 커뮤니티 케어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어떠한 점들이 보완이 되어야 할까요?


(보람) 현실적으로 말해보자면 성인이 되어서도 갈 수 있는 주간보호센터, 복지관, 직업훈련장, 보호 작업장 같은 공간이 장애인 인구수에 비례해서 훨씬 늘어나야겠죠. 그러면 그 시설들도 나이 제한 둘 필요 없고 계속 다닐 수 있게 되겠죠. 


지금 지역구 내에 살고 있는 장애인이 평균적으로 2, 3만 명이 넘어가요. 그런데 복지관은 많아야 두 개, 가족지원센터와 평생교육센터는 각각 하나 정도 있죠. 다른 소규모 기관들까지 합쳐봤자 지역 내에 장애인 관련 시설은 많아야 10개~15개 있거든요. 10개의 기관에서 2, 3만 명이 넘는 장애인들을 담당해야 하니 지역사회 내에서 커뮤니티 케어를 실행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사회복지사 입장에서는 현재 한 명당 담당해야 하는 인원수가 너무 많아요. 일본은 사회복지사 1명 당 이용자 2명, 많아봤자 1대 3이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1 대 10이에요. 1대 10. 아무리 적어도 1 대 5. 생활시설이든 이용시설이든, 보통 평균적으로 한 명의 사람이 10명을 보는 거예요. 한 마디씩만 해도 10명이면 10마디잖아요. 그럼 다른 일을 못하고 제대로 된 돌봄이 어려워지는 거죠. 학대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에요. 시설이 늘어나고 이용자가 분산된다면 사회복지사도 더 좋은 돌봄을 제공할 수 있겠죠.


(은아) 단순히 거주를 위한 '집'을 넘어서서 장애인들이 지역 사회 내에 나와서 생활할 수 있는 인프라가 정말 필요하겠네요. 현재는 너무 부족한 상황이고요. 더 나아가서 변화가 필요한 부분은 무엇일까요?


(보람) 궁극적으로는 당사자 입장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탈시설이고 커뮤니티 케어가 아닐까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저는 복지 시설이 경쟁 구도가 되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지금의 복지시설들은 세금으로만 운영되는 기관이기 때문에 크게 발전하지 않고, 발전이 굉장히 느리고 보수적인 기관들이 많거든요. 


미국에서는 PCP(Person-Centered Planning, 사람 중심 계획)(주1)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복지 서비스 이용자인 장애 당사자에게 집중하는 것을 강조하는 원칙인데요. 복지 관련 예산을 각 기관에 주는 게 아니라, 장애 당사자에게 개별적으로 줘요. “너 장애 있어? 학교 다녀? 그럼 너 치료도 해야 되고 학교도 다녀야 하니 돈 많이 필요하겠다.” 하고는 네가 알아서 쓰라며 충분한 돈(바우처)을 주는 거예요. 그럼 당사자가 정말로 자신에게 필요하고 자신이 원하는 서비스를 선택해서 받을 수 있죠. 


그러면 복지관이 필요 없거든요. 사설 치료센터, 사설 기관의 선생님들, 사설 집단 프로그램을 구성해 주는 소규모 센터들만 충분히 있다면. 일괄적으로 주어지는 서비스가 아니니 더 좋은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곳이 많아지고요. 그런 식으로 정말 본인이 원하는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게 해 주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제 동생을 볼 때도 정말 좋은 활동지원사가 와서 열심히 일해주겠죠.



(은아) 복지서비스를 받기 위해서 초조하게 줄 서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니 꿈같은 얘기네요. 우리나라에서도 언젠가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보람) 결국 예산이 늘어나야 해요. 건조해 보일 수도 있지만 결국 다 돈 문제예요. 복지 관련된 예산이 많이 늘어나야 하고, 특히 각 지역구 별로 장애 인구수에 비례해서 늘어나야 하는 거죠. 우리나라에 장애 관련 인프라가 너무 없고, 장애 인프라가 없는 건 예산이 없기 때문이고, 예산이 없는 건 정치적인 이유가 굉장히 크다는 걸 너무 많이 느꼈어요. 


활동지원서비스도 마찬가지로 발달장애인에게는 주어지는 시간이 한정적이죠. 제 동생이 중증 발달장애인이지만 아무리 많아봤자 한 달에 100시간 남짓이에요. 발달장애는 신체장애에 비해 더 적게 주거든요. 정말 중증의 신체장애는 제가 얼마까지 봤냐면 한 달에 700시간까지 봤어요. 보건복지부에서 주고 서울시에서 추가 시간을 더 줬거든요. 


(은아) 왜 발달장애는 안 되나요?


(보람) 연금공단의 장애를 판단하는 분이랑 얘기해보면 “걷잖아. 손가락 움직이잖아요. 어색해도 화장실은 가잖아요.” 그럼 지원이 필요 없대요. 그것도 결국 예산인 거예요. 돈이 없으니까 이 분들이 굉장히 깐깐하게 보기 시작한 거거든요. 그래서 복지 예산을 늘리려면 계속 얘기할 수밖에 없는 거죠. “우리 어렵다, 문제 있다” 하고 이야기하고, 삭발하고, 책도 내고 이러면서요.


(은아) 맞아요. 지금 이렇게 우리가 미래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도, 당장의 변화는 사실 없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얘기하지 않는 것보다는 어떤 변화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생기겠죠. 


보람님, 오늘 솔직한 얘기들 들려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앞으로 함께 고민해 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장애도 있고 노인인 상태에서
갈 수 있는 곳은 없어요.

비장애형제이자, 사회복지사인 보람님은 노년이 된 장애형제와 함께 찾아온 비장애형제들에게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허탈함과 우울함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보람님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 비장애형제인 우리들과 장애인, 장애인의 가족들이 암담한 미래를 예상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성인기의 발달장애인, 그리고 노년기의 발달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인프라와 서비스가 지역사회 내에 현저히 부족하기 때문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비장애형제 모임, 나는(It's about me!)에서는 이러한 현실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찾아가기 위해 우리들 비장애형제들의 목소리를 모아보려고 합니다. 


미래에 관해 고민하고 있는 비장애형제라면 누구나, 

비장애형제들의 새로운 미래찾기 프로젝트에 참여해주세요!

<인터뷰 참여 신청> https://forms.gle/jTc5XUc8L8WF3zME9



Written by 은아, 혜연


(주1) 발달장애인 지원체계가 잘 갖춰진 것으로 평가받는 미국을 예로 들면,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험인 ‘메디케이드’와 ‘어린이건강보험’(CHIP·메디케이드 자격을 갖추기에는 소득이 높지만 민간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가정의 어린이를 위한 제도)에서 발달장애 영유아(0살부터 혜택)·청소년·성인의 치료 비용을 연간 일정 한도 안에서 지원한다(주정부별 지원 한도는 제각각. 노스캐롤라이나의 경우 1년 약 5만6천달러(약 6590만원)). 장애인 당사자와 부모들은 거의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필요한 치료를 받고 각종 재활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한겨레21, 발달장애, 연 6500만원까지 지원하는 미국 주, 2019.11.26)
- 출처: https://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479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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