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으로_02
[1. 탈북]
그러나 정작 출발하는 당일에 나와 막내딸 둘이서만 떠나지는 못하였다. 이웃에 살던 할머니, 그 할머니의 아들인 상철이와 함께였다. 할머니는 83세로 내가 살던 마을에서 제일 나이가 많았다. 그리고 아들인 상철이는 두 다리가 없었다.
상철이는 과거 먹을 것을 마련하기 위해 막노동을 했는데 막노동판에서 사고를 당한 후 집에서 스스로 치료를 했었다. 의사에게 가거나 의약품을 살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없는 형편에 집에서 치료를 한다고 한들얼마나 했겠는가. 다리의 상처가 낫지 않고 썩어가는 바람에 잘라낼 수밖에 없었다.
둘은 여기서 그대로 있다가는 모두 굶어 죽는다며 하소연을 했다. 우리가 움직이는 모양새를 보니 중국으로 갈 준비를 하는 것 같더라며 자신들도 데리고 가달라 간청했다.
손자인 광성이가 중국에 있다면서 손자에게 데려다만 주면 된다는 거였다. 둘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우리도 이대로 여기에 있다가는 다 굶어 죽을게 뻔 하니 떠나려던 거였으니까.
그렇지만 문제는 할머니는 나이가 들어 걷는 속도가 느릿하고 상철이는 휠체어를 타는 형편이라는 거였다. 잠시간 고민을 했다. 초행길이라 내 몸 건사하기도 어려워 두 자식들도 두고 가려 한 터였다. 그렇지만 이 들을 두고 갔다만 이들이 어찌 될지 뻔했다. 두고두고 눈에 밟힐 것만 같았다.
그리고 상철이가 내 남편과 동창이었기 때문에 더 지나칠 수가 없었다. 비록 이미 죽고 없는 남편이었더라도 말이다. 어쩌면 강아지를 훔쳐 달아난 나와 내 딸들에게 감자와 전통편을 주었던 사람의 마음이 이런 마음이었던 걸까. 그렇게 나와 14살 먹은 막내딸 명희, 걸음이 느린 할머니, 휠체어를 타는 상철이. 4명의 중국행 여정이 시작되었다.
중국까지 가자면 주의해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국경 근처 군인들 눈에 띄지 않고 몰래 지나가야 한다는 것. 두 번째는 두만강 물에 휩쓸리지 않고 무사히 건널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세 번째는 중국으로 들어간 후 중국 공안(경찰)들 단속에 걸리지 않고 몰래 숨어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를 위해 우리는 국경지역 군인들의 근무교대 시간을 파악했다. 군인들이 교대하고자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도강을 시도하기 위함이었다. 우선 우리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옹기종기 국경지역까지 이동했다. 오다가 사고가 있을 것을 대비가 일찌감치 출발했는데 아무런 사고 없이 일찍 도착을 하였더랬다.
워낙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내가 파악한 교대시간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다. 배가 슬슬 고팠다. 요기를 해야 했는데 다들 워낙 없이 살다보니 챙겨온 식량도 없다시피 했다.
국경 근처에는 빈집이 더러 있었다. 국경 근처에서 살던 사람들은 모두 일찌감치 중국으로 도강하였기 때문이다. 개중 사람이 덜 올 것 같은 가장 허름해 보이는 집을 골라 몸을 숨겼다.
할머니와 상철이, 명희를 빈 집에 머물게 한 후 곧바로 먹을 것을 구하러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마침 멀지 않은 곳에 감자밭이 있었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몇 끼 때울 분량의 감자를 서리했다. 가만히 서리를 하면서도 심장이 달음박질 쳤다.
내가 단속에 걸리면 근처에 있는 명희와 할머니, 상철이가 덩달아 걸리는 건 시간문제였기 때문이다. 조심조심 감자를 서리하고 살금살금 땅을 기어 빈집으로 왔다. 연기가 나 들킬까봐 불도 피우지 못하고서 생감자를 그대로 씹었다. 소금도 김치도 없는 그냥 생감자였을 뿐이지만 그 때는 어찌나 달았는지 모른다. 지금 같아서는 거저먹으래도 못 먹겠지만 말이다.
어느 정도 요기를 마치고 군인들 교대시간에 맞춰 두만강으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는 콩밭이 가득했다. 늦여름 콩밭의 콩대들은 훌쩍 자라 야트막한 우리들 키만큼 높아져 있었다. 몸을 숨길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틈에 숨어 조심조심 이동했다. 강어귀에 다다르자 두만강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도강을 해야 할 때였다. 가장 얕은 곳을 수소문해 알아두었기에 나와 명희는 쉬이 건널 수 있었다. 그렇지만 할머니와 상철이는 아니었다. 할머니는 걸음이 느리고 몸에 힘이 없어 강물에 휩쓸릴 위험이 있었다. 상철이는 두 다리가 없기에 혼자서는 강을 건넌다는 게 어불성설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의 역할을 정했다.
명희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함께 두만강을 건너기로 했다. 두 사람이 함께 건넌다면 강에 휩쓸리는 게 그나마 덜 할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상철이를 업고 강을 건너기로 했다. 상철이가 내 목을 손으로 감게 하고서 배낭으로 서로를 묶었다. 가장 얕은 곳이라지만 강은 강인지라 금세 물이 가슴팍까지 차올랐다.
혼자 건너기도 힘겨운 깊은 물속을 다 큰 성인 남자를 업고 건너자니 여간 힘들지가 않았다. 게다가 다리가 있었으면 손으로 다리를 붙들기라도 하겠는데 상철이는 다리가 없어서 그럴 수도 없었다. 오로지 상철이가 내 목을 붙드는 것, 그리고 가슴팍에 묶은 배낭의 힘만으로 업어야 했다.
지금 와서 다시 하라 하면 정말이지 못할 짓이다. 그래도 산목숨인지라 어떻게든 죽을힘을 다해 강을 건너고 나니 숨이 턱까지 올라왔다. 들키든지 말든지 한동안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숨을 고르고 나서 우리는 후다닥 풀숲으로 가서 몸을 숨겼다. 저마다 젖은 옷을 짜서 다시 입고 사람 꼴을 갖춘 후, 다시 국경 근처 빈집을 찾아 머물렀다. 불가능해 보였던 일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남아 이국땅 빈집에서 첫 하루를 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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