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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 remember Apr 04. 2023

삶의 굴곡 한가운데. 04

중국으로_02

[4. 내 코가 석 자]



이제 문제는 나와 내 자식들이었다. 특히 딸들을 인신매매로 보낼 수는 없었다. 딸들에게는 내가 있었으니까. 연고가 없기는 나도 매한가지 였더랬다. 


그래도 인신매매 말고 다른 방도가 있을까 찾아볼 겸 나는 자식들과 함께 방랑생활을 하였다. 한 곳에 오래 머물렀다가는 공안에게 단속을 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전에 우리를 도와줬던 집에서 쌀과 된장 얼마를 얻어 챙기고서 이 곳 저 곳 살 곳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먹을거리가 떨어지면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가서 농사일 같은 소일거리를 좀 하고 먹을 것을 얻기도 하였다. 


하지만 점점 처지는 더 나빠져만 갔다. 이렇게 계속 같이 돌아다니다가 한 사람이라도 공안에 적발되는 날에는 그날로 모두 북송될 판이었다. 하루하루가 살얼음 판이었다. 어떻게든 거처를 마련해야 했다. 이래도 저래도 수가 없는 진퇴양난인 나날들이었다.


북에서처럼 굶어 죽지는 않더랬지만 신분도 불안정하고 연고도 없는 이가 자리할 곳은 없었다. 점점 내 처지가 자각이 되었다. 그 때 내 나이 43세 였다. 아직 중국에서 인신매매로 결혼할 수 있는 나이였다. 내가 인신매매로 소개한 아줌마가 어찌 살고 있을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인신매매는 인신매매지만 덜 위험하고 좋은 사내를 소개할 사람을 수소문해 찾았다. 그게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알고 지냈던 탈북민에게서 천진(天津: 중국 텐진)에 살고 있다는 어느 북한 출신 노친네를 소개받았다. 천진은 그나마 다른 곳보다 공안의 단속이 덜 했다. 그곳으로 가면 호구검사도 덜할 테고 걸릴 위험도 적을 터였다. 


곧장 천진으로 가서 노친네를 만났고, 인신매매를 당하되 가족들이 덜 흩어질 수 있는 사내를 소개해줄 수 없겠냐 물었다. 그 노친네는 한 사내가 있다 하였다. 그렇지만 딸들 모두를 받아줄 수는 없으니 나는 둘째 아들, 셋째 딸과 함께 그 사내에게 가고 첫째 딸 명숙이는 따로 다른 사내를 소개받아 시집 가는 게 어떻겠냐 하였다.


그렇게 나와 명숙이는 제각기 시집을 갔다. 



*구술사의 신변보호를 위해 신원을 알 수 있는 정보를 가상의 것으로 대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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