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으로_02
[5. 첫 번째 중국 남편]
내가 인신매매로 만난 첫 번째 중국 남편은 폭력적인 남자였다. 그는 언제고 날 구타했다. 그리고 구타한 사유는 오로지 ‘내가 그의 말을 잘 듣지 않아서’였다. 중국 남편은 폭력에는 열심이었지만 제 몸 씻는 데는 소홀했다. 그를 마주할 적에는 늘 그의 몸에서 나는 악취도 마주해야 했다. 그래도 살아남으려면 별 수가 없었다. 그저 참고 살아갈 뿐이었다. 명숙이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내에게 시집을 보냈지만 명남이와 명희는 지키고 싶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구타와 냄새에 숨죽이고 살던 어느 날, 집안이 사뭇 조용했다. 나는 명남이와 명희에게 밥 먹으라 말하기 위해 방문을 열었다. 조용했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잠시 외출을 나갔나 해서 기다렸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도 찾아오는 이가 없었다. 어둑어둑해지는 것을 지나 밤이 깊어서야 알았다. 명남이와 명희가 집을 떠났다는 것을. 며칠 전부터 명남이와 명희가 제 누이가 사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말을 했었더랬다. 그렇지만 자식들이 내 곁을 떠나는 게 싫어 허락하지 않았었다. 마침내 자식들이 날 버리고 떠났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자 황망한 마음이 들었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내가 연고도 없는 중국까지 온건, 이 냄새나고 폭력적인 중국남편을 참고 견딘 건 오로지 자식들을 허망하게 잃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 혼자였다면 북한을 떠나지도, 날 구타하는 북한 남편을 견디지도, 중국 남편을 견디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째 남편이란 자들이 제 아내들을 못 잡아먹어 난리들인지. 오로지 참고 또 참고 살았던 건 자식을 굶겨 죽이지 않으려, 떠나보내지 않으려 했었기 때문이었다. 자식들을 위했던 내 마음이 부정당한 것 같았다. 며칠간 밥도 먹지 않고 대성통곡을 했다. 그런 나를 중국 남편은 잠시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도망간 자식들이 널 생각했으면 널 버리고 큰 딸한테 갔겠어? 정신 차려라. 그렇게 울다 정신병 걸리면 널 내다버릴 거야.”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중국 남편의 말 한마디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버림받을 거라는 말을 듣자마자 자동적으로 수저를 들었다. 그 때 내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고 자식들에게 버림받았는데 날 구타하는 이 사람에게 마저 버림받을 수는 없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비록 그가 나를 아끼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한동안 그저 참고만 살았다. 날 때리든 냄새가 심하든 그냥 참을 뿐이었다. 늘 하던 삶, 늘 살던 그대로였다.
하루하루 그저 구타당하고 견디고를 반복하던 어느 날, 옆집에 또 다른 탈북 여성이 인신매매를 당해 시집을 왔다. 그 집도 중국 남편에 탈북민 아내 부부였다. 처음에는 알콩달콩 둘이서 잘 사는가 했는데 곧이어 그 집도 남편이 아내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내가 얻어맞을 때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더니 그 여성이 구타당하는 것을 보게 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렇게 사는 것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거 같았다. 자식들도 없는데 계속 구타당하며 이 집에 있자니 아무런 희망도 없었다. 그의 곁에 있다가는 먹고 살기는커녕 구타당해 사망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이 집에서 떠날 결심을 했다. 그렇게 첫 중국인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끝이 났다.
*구술사의 신변보호를 위해 신원을 알 수 있는 정보를 가상의 것으로 대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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