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으로_02
[6. 두 번째 중국 남편과 강제 북송]
나는 곧 브로커를 통해 두 번째 중국 남편을 소개받았다. 이번에는 자식들까지 같이 살지 않아도 되니 선택의 범위가 이전보다 넓었다. 그는 순흥치 라는 중국 남자였다. 두 번에 이은 불행이 처음에는 순흥치에게 별 기대를 하지 않게 하였었다. 그런데 지내고 보니 그는 처음 중국 남편과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
우선 첫 번째 중국 남편이 날 돈 주고 사온 사람으로 대했다면 순흥치는 날 아내처럼 대해줬다. 그가 날 대하는 모습을 보며 아내는 원래 이렇게 존중받으며 살아가도 되는 거였었구나 하는 걸 알았다. 그는 마냥 술만 마시지도 날 때리지도 않았다. 심지어 그는 내가 아프다 하면 때때마다 병원으로 데려가 의사에게 보였다. 정말이지 그와의 생활은 행복했다. 결혼생활이 행복할 수도 있다는 걸 그와 함께하여 배웠다. 그와 함께 사는 동안 북한 남편의 술주정, 첫 번째 중국 남편의 구타와 냄새는 차츰 잊혀져 갔다. 그 끔찍했던 날들이 하루하루 잊혀져 가는 것이 신기했다. 그 즈음 자식들에게도 내가 다시 재혼한 사실을 반갑게 알렸다. 순흥치와의 생활은 시간이 흐르는 걸 견디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세월을 보내었다. 즐거운 세월이 견디는 세월과 다른 건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흘러간다는 거였다. 그렇게 흘러가듯 지내오던 평온한 세월에 어느덧 파문이 하나 일었다.
제 누이에게 도망갔던 명남이가 다시 내게 돌아왔다. 명남이는 누이 명숙이가 시집간 곳에서 잠시 숨어살다 제 발로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명남이의 일터 사장이 무척이나 못된 사람이었다. 그 직장에서 명남이는 구타를 당했고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야 했다. 뼈가 빠지게 일을 하고 사장한테 맞고 직원들에게 따돌림 당하고. 그렇게 살았다고 한다. 명남이는 그 직장에서서 9달을 버텼다. 9달을 버티고 버티다 더는 참지 못하겠어서 내가 사는 곳으로 도망쳐온 것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명남이네 직장 남정네들이 내가 사는 곳으로 찾아왔다. 명남이를 데려가겠다는 거였다. 구박은 있는 대로 했으면서 데려가긴 왜 데려 가겠다는 건지. 얻어맞고 구박 받으며 산다는 게 정말이지 사람 피 말리는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아는 터였다.
명남이더러 돌아가란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세상 어느 어미가 제 자식을 구박받는 곳으로 보내고 싶겠는가? 그래서 명남이네 직장 사람들에게 맞섰다. 자네들이 명남이를 살갑게 대해줬다면 명남이가 도망쳐 왔겠느냐고. 내 말을 듣고도 무어라 할 말이 많던 그들은 내가 끝끝내 명남이를 내놓지 않자 나를 공안에 고발해 버렸다. 불법으로 밀입국한 북한사람이라는 죄명이었다. 2000년의 어느 날, 평온한 날이 마무리 되었다. 그렇게 나는 북송되었다.
[7. 재탈북과 한국행]
잠깐의 감옥살이 후 나는 곧바로 다시 중국으로 도망 나왔다. 국적은 북한 사람이지만 이제 내가 살아갈 곳은 중국인 터였다. 돌아와서 곧바로 순흥치를 다시 찾았다. 그는 나를 위해 마중을 나왔다.
내가 감옥에 간 사이 명남이는 결혼을 하였는데 중국 아내와의 사이에서 재희라는 딸을 하나 낳았다. 명희도 시집을 가 성운이라는 아들을 하나 두고 있었다. 그러나 제 안타깝게도 명남이는 중국 처가에서 천대를 받았다.
명희도 마찬가지였다. 중국말을 능숙하게 하지 못하는 밀입국한 이민자가 환영받을 곳은 정말이지 드물었다. 어미로써 자식들이 홀대받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한국으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북으로 돌아갈 수는 없고 중국에서 더는 살지 못하겠으니까. 북에서는 못 먹어서, 중국에서는 천대받아서 살 수가 없었다. 같은 민족인 한국은 그래도 내 자식들을 품어줄까 하는 기대가 들었다. 명남이와 명희를 먼저 보내기로 했다. 대신 명남이의 딸 재희와 명희의 아들 성운이는 내가 보살피기로 했다. 보살핌이 필요한 핏덩이들을 두고 낯선 곳에 자리 잡기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빨리 자리를 잡고 살아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명남이와 명희는 2006년 11월 15일 한국으로 갔다. 또 다른 시작이었다.
*구술사의 신변보호를 위해 신원을 알 수 있는 정보를 가상의 것으로 대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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