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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 remember May 23. 2023

삶의 굴곡 한가운데.04

03_한국으로

4. 태국 이민국에 입소하다(1)     


2007년 12월 14일, 조선 땅에서 아이들을 낳고 평범하게 살던 내가 중국에서 살다 태국을 거쳐 대한민국으로 오면서 정말로 많은 경험을 하였다. 이 넓은 세상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치 별난 사람들이 살았다. 나도 자식들도 손자손녀들도 조카도 그 많은 이들 중 하나였다. 낯선 이민국에 세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입소해 생활하는 것을 뭐라 표현하면 좋을까? 다들 혼자 오거나 아이 하나를 데리고 왔을 뿐이었다. 홀로 아이 셋을 데리고 온 건 그 많은 이들 중 나 하나였다. 홀로 있다는 고독감은 어찌할 수 없었다. 고독감은 타지에서의 적응 스트레스나 양육 스트레스보다 더 지독했다. 고독감을 지우려 아이들을 핑계로 다른 사람들과 일부러 다투기도 했다. 약간의 다툼은 짜증과 화를 불러왔다. 짜증과 화는 고독감을 잠시 덮어줬다. 


그러면 떨쳐지지 않던 고독감을 잠시 잊을 수 있고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러나 고독감은 아주 지독한 것이여 잠시 가리워질 뿐 으레 다시 날 덮쳐왔다. 누울 자리도 없이 사람이 빽빽하게 있는 것과 고독감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마음 터놓을 이가 없다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순흥치 생각이 났다. 그에게는 기댈 수 있었다. 그는 날 존중해줬다. 함께 있으면 마음이 놓였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잡혀가지 않고 잘 살아보자고 한국까지 가는 건데 이리 마음이 편치 않아서야 떠나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내게는 손자손녀들과 조카를 한국으로 보내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우선은 해야 할 일만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는 태국의 이민국 숙소에서 생활했다. 사람 수에 비해 누워 잘 자리가 부족해서 권리금 형식으로 일정금액 돈을 낸 사람만 누워서 잘 수 있는 처지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돈을 내지 못한 사람들이 웅크리고 앉아 졸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셋째 딸 명희가 한국에서 돈을 넉넉히 보내주어 비교적 풍족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이 돈이면 이 곳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편히 쉴 수 있는 잠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내게 그들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돈이 있는데도 그냥 지나치자니 마음에 걸렸다. 없이 살았지만 돈이 어떤 것인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무릇 돈이란 내가 쓰지 않고 쌓아두면 내 기분만 좋을 뿐이지만 필요한 이에게 쓰이면 그제야 의미가 있는 것이라. 그래서 돌고 돌아 돈이라 그랬다. 돈을 쓸모 있게 쓰기 위해 같은 숙소를 쓰는 다른 사람들 몫의 권리금을 모두 내어 잠자리를 마련했다. 다 같이 힘든 처지에 나와 내 가족들만 편히 지낼 수는 없었다. 



*구술사의 신변보호를 위해 신원을 알 수 있는 정보를 가상의 것으로 대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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