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02
그 뒤로는 학교에 갈 수 없으셨어요?
14살이 되었을 때, 다시 학교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단다. 제일 가까운 중학교를 찾았는데,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한 시간 이상 배를 타고 고개를 넘어야 학교에 갈 수 있었어. 그때도 교장선생님을 찾아가서, “제가 돈은 없습니다. 학비는 고기를 낚아서라도 갚을 테니 저를 입학시켜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얘기했단다. 무슨 어린 애가 혼자서 공부를 시켜달라고 찾아오니까 처음에는 우스운 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하지만 서너 번을 계속해서 찾아갔더니 결국 한 번 다녀보라고 해주셨어.
하지만 1년도 채 다니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단다. 초등학교 때 기초를 쌓아두지 못해서 그런지 친구들이 공부하는 내용을 잘 따라가지 못했어. 그리고 당시에는 굶는 날이 많았기 때문에 공부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단다. 친구들은 싸온 도시락을 먹고도 배고프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도시락은커녕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학교를 갔었지. 앞에서 선생님이 수업을 하면 하얀 분필이 밥으로 보이기도 했어. 지금도 떠올리면 눈물이 나는 일이 있는데, 하루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어. 이틀 동안 굶어서 너무 배가 고파 남의 밭에서 몰래 마늘쫑을 몇 개 잘라 먹었단다. 주인이 나를 발견하고는 “이놈 새끼! 남의 마늘 다 캐먹는다!” 라면서 막 때리는 거야. 정신없이 두들겨 맞고 있는데, 내 뒤에 오던 학교 선배가 “쟤는 엄마도 죽고, 이제 아버지도 없어요. 형제들도 약하고 돈을 벌지 못해 밥도 제대로 못 먹어서 그런 거니까 이해해주세요.”라고 말했지. 그 말을 듣자마자 주인이 나를 보던 눈빛이 달라졌어. 그러더니 갑자기 같이 집에 들어가자는 거야. 들어가니까 고구마를 한보따리 주면서 집에 가서 삶아 먹으라고 하더구나. 그걸 받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구나.
그 일 이후로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인데 공부해서 뭘 써먹겠다고 그 때까지 기다리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지. 그 때를 계기로 내 힘으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결심을 했어. 가족들은 모두 멸치잡이 일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평생 어촌에서 그물을 당기며 살고 싶지 않았단다.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고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단다.
*구술자의 신변보호를 위해 신원을 알 수 있는 정보를 가상의 것으로 대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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