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유튜브 피드를 내리다가 '월 소득 1,500만원 포기하고 영국으로 떠나는 30대 부부'란 타이틀이 눈에 띄어 잠깐만 볼 요량으로 보다가 끝까지 시청하였다.
개발자 남편과 입시 강사 아내와 딸 아이인 가족이 남편의 오랜 꿈이었던 영국에 소재한 게임 회사에서 오퍼를 받아 영국으로 이주를 준비 중이었는데, 야무진 부부의 좋은 기운이 느껴지는 영상이었다. 영상을 보고 댓글을 보니 대댓글이 많이 달린 한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집안에 유학할 돈이 있다는 게 너무 부럽다.
솔직히 얼마나 많은 30대 부부가 이 부부처럼 한남동에 방 3개 이상 집을 구해서 살 수 있을까? 두 분도 열심히 커리어를 가꾸고 개발하며 연봉을 높은 수준으로 올리신 건 맞지만, 두 분이 직접 말하듯이 부모님의 도움을 받긴 하셨다. 남편분도 어렸을 때 프랑스에서 자라고 국제학교와 미국에서 고등 교육을 받으셨다고 하니, 있는 집안 자녀분이신 건 맞는 것 같다.
세상은 원래 불공평한 거...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능력과 조건 안에서는 최선을 다해보는 거구, 그 외에 내가 조절/제어할 수 없는 부분은 내려놓아야 하는거구. 바꿀 수 없는 부분을 계속 들여다보면서 신세한탄해봤자 본인만 괴로울 뿐이다.
한국인들의 주요 고질병 중 하나인 상대적 박탈감은 시도 때도 없이 여러 상황에서 드러나는 것 같다. 저 영상을 보고 유학할 돈이 있는 저 가정의 집안을 부러워하는 것보다 두 분의 열린 사고와 실행력에서 배울 점들을 찾아보는 게 더 이로울텐데.
저 위의 댓글에 대댓글이 달렸는데 아래 댓글이 눈에 띄였다.
주변에 보면 집안 사정이 너무 안 좋아 취업해서 번 돈 상당수가 부모님에게로 들어가는 몇 친구들과 몇 예외 상황을 제외하면, 나도 한국에서 직장 생활하면서 꾸준히 모으면 유학자금 정도는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미국같이 억대로 학비가 드는 곳은 힘들 수 있거나 자금을 모으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겠지만 유럽 일부 국가는 학비가 저렴하고, 유학하며 알바로 생활비를 어느 정도 벌 수 있어서 도전해볼법 하다. 그럼 누구는 공부도 힘든데 알바까지 병행하며 어떻게 하냐 하겠지만, 아니 준비자금이 부족하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공부만 하고 싶으면 한국에서 더 준비를 탄탄히 해오면 되구.
이십 대 중후반 해외 유학이 가고 싶어서 알아보다가 무료 학비로 유명했던 북유럽 국가 유학부터, 저렴한 학비로 잘 알려진 독일 유학, 싱가폴과 일본 유학, 기타 유럽 국가 그리고 인도 유학까지 방대한 리서치를 했던 경험이 있다. 정말 과장해서 전 세계 대학 사이트를 다 훑어보고 리스트업을 했어서 이대로 유학 에이전시를 차릴까 하고 우스개 소리를 했을 정도.
그러다가 가고 싶었던 독일 석사 진학을 위해 독일 유학원에서 상담을 받는데 내 학사 성적이 너무 안 좋아서 석사 지원이 힘들다는 것, 그럼 학사 지원은 안될까요 물어보니, 대학 수능 성적이 낮아서 또 안됨. ㅠㅠ
그래서 네덜란드와 영국 이렇게 두 곳을 두고 고민하다가 이십대 후반 영국으로 석사 유학을 결정하고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지난 몇 년간 직장 생활하면서 조금씩 모은 적금과 당시 다니던 직장에서 받은 월급에서 저축 비중을 늘려 허리띠를 빠짝 졸라매고 모았던 기억이 난다. 나의 경우는 서울에 부모님 댁에서 출퇴근하며 생활해서 자취하는 직장인보다는 돈을 더 많이 모을 수 있었지만, 중소기업에서 일했던 관계로 월급이 너무 겸손해서 절약과 소비 절제에 집중했었다.
그래서 삼십 대 초반에 올 수 있었던 영국 석사, 총 얼마나 들었을까?
2015년 9월에 영국 중부 중소도시에서 석사를 했을 당시 사용한 비용을 찾아봤다. 이미 8년 전이라 현재는 물가 인상을 생각하면 올랐겠지만, 대략적으로 참고는 해볼 수 있다.
아, 내가 유학했던 2015-2016년 당시에는 파운드 환율이 1파운드 = 1,810원이었다.
현재는 1파운드에 1,590원대으로 많이 낮아졌다. (본 글은 2023년 3월에 쓴 글이며, 해당 시기 환율 기준입니다. 2024년 5월 초 기준 1파운드 = 1,705원이네요.)
석사 졸업 당시 워홀로 전환하며 막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이제 돈을 좀 벌려고 하는 때, 정말 생각지도 않았던 브렉시트가 생뚱맞게 체결되어 파운드 환율이 뚝 떨어졌었다. 1년만 늦게 왔어도 학비와 생활비를 어마어마하게 아낄 수 있었을텐데! ㅠㅠ 눈물 닦엉.
참고로 영국과 일부 유럽 대학원은 일부 전공 제외하고 석사 기간은 1년이다. 아래는 2015년 기준 내가 지원한 영국 대학 석사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자금이다.
학비: 총 £13,250
생활비: 총 £7,380
(당시 런던 외 지방 도시에서 학업시 영국 정부에서 요구하는 최소 월 생활비 (집세와 생활비) £820 X 9개월)
위의 두 비용을 합치면 £20,630 이고, 현재 환율 기준 한화 3,300만원이다. 2015년 당시 기준으로는 약 한화 3,700만원.
저 위의 비용은 런던이 아닌 지방 중소도시의 네임밸류가 그리 세지 않은 대학에서 저렴한 생활비로 생활시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이고, 실제로 유학하며 비용은 더 들었다. 런던에서 유학했으면 학비도 생활비도 훨 올라가서 아마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1년은 더 했어야 올 수 있었을 듯.
영국까지 오는 항공편 비용과 초반에 필요한 생활 물품 및 식기 등 까지 생각하면 훨씬 더 여유있게 준비해야 한다.
영국은 교통비와 외식비가 비싸 도시간 이동하거나 외식이 잦으면 비용이 그만큼 늘어나고, 나같은 경우는 방학 기간을 활용해 서유럽과 동유럽 여행을 했기 때문에 지출이 크게 늘어났다. 여행을 생각하면 자금을 훨씬 더 여유있게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공부하면서 카페에서 알바를 하며 용돈을 벌어 충당할 수 있었고 (영국은 풀타임으로 학업시 주 최대 20시간까지 알바 가능), 내가 공부했던 곳은 왠만한 곳은 도보로 이동이 가능해 교통비를 아낄 수 있었고, 외식은 특별한 날 아니면 친구들 집에 놀러가 식사하며 많이 아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나 때는 가능했으니 너도 할 수 있다가 아니구요. 긴가?
나같이 집안에서 서포트 팡팡 해주지 않아도 한국에서 평범하게 학창시절보내고 직장 생활하면서 모은 돈으로 유학 자금 준비해서 영국에서 석사를 했으니,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길은 찾아보면 바로 앞에 보이는 길만 길이 아니고 다양한 갈래의 길이 있으니 낙담하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원본 영상은 아래 링크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