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할머니처럼 대담하고 유쾌하게 살고 싶어요
“토론토로 여행 가시나요?”
런던에서 토론토로 가는 비행 중, 옆자리에 앉아계신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할머니께 물었다.
“아니, 난 캐나다에 살아.”
이렇게 첫 물꼬를 시작한 대화로 이륙하기까지 드문 이어가던 대화는 중단됐다 기내식을 먹으며 다시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왔다구? 거기 사는 거 위험하지 않니?”
"미디어에서 과장해서 그렇지 실제로 사는 데는 아무 문제 없어요."
한국에 대해서 잘 모르는 외국인과 대화할 때 자주 나오는 북한과의 관계와 보안 문제를 시작으로 할머니와 본격적인 수다가 시작됐다.
83세의 할머니 젠은 어머니가 프랑스인, 아버지가 잉글랜드인으로 캐나다 프랑스어권인 소도시 출신이다. 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은 프랑스계 가톨릭인들이 주로 사는 작은 마을로 본인 가족만 영국계 성을 가진 가족이라 공산주의자라고 동네에서 은근한 따돌림을 받았다고 한다.
현재 그녀의 고향에서도 한참 동쪽에 위치한 눈이 무릎까지 내리는 소도시에 사는 그녀는 편의점을 운영하다가 50세쯤 네이티브 어메리칸 기념품 상점을 열어 남편과 함께 운영하고, 그리고 6개월 뒤 남편을 떠나보냈다. 사별하신 남편은 네이티브 어메리칸으로 52세에 돌아가셨고 그 당시 51세이던 젠은 자식들이 이미 장성하여 돌볼 필요가 없어 몇 년이 지나고 데이트를 시작하셨다.
젊은 시절 피워온 담배와 폐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전자로 인해 지금껏 두 번의 폐암 진단을 받은 젠은 첫 폐암은 양쪽 폐에 모두, 두 번째 폐암은 한쪽 폐암에서만 암이 발견되었고 두번 모두 치료를 받은 후 다행히 완치되었다고 한다. 현재까지도 와인을 비롯해 음주를 즐기고 운동을 전혀 하지 않고 혈압 및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 범위인 것은 건강한 식단과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 성격 덕인 것 같다.
남편과의 사별, 두 번의 폐암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마인드 셋의 자세로 삶을 적극적으로 일구어 나가며 인생을 즐기고 있는 젠.
평소에 스트레스를 잘 안 받는 그녀는 그 비결로 본인이 컨트롤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빨리 구분하고 제어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빨리 체념한다고 한다. 또 다른 이유로는 어렸을 때부터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게 격려하고 응원하는 부모님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쭉 긍정적인 성격을 꼽는다.
남편과는 플로리다에서 만났다고 하는데, 플로리다 해변에서 만나 남편의 적극적인 공세에 못 이겨 결혼하고 사별 후, 지금까지 총 세 명의 남자와 연애를 했다. 첫 번째 남친은 삼 년간의 연애 끝에 강한 케미스트리가 없어서 이별을 고했고, 두 번째 남친은 심장마비로 돌연사했고, 세 번째 남친은 심장이 안 좋아 장기간 간병을 할 자신이 없었기에 헤어졌다고 한다.
본인 나이가 되면 서로 안 맞는데도 굳이 부대끼며 관계를 이어나갈 필요가 없어서 그렇게 세 번의 연애를 마지막으로 연애를 쉬고 있다는데.
연애를 하지 않아도 남친이나 남편이 없어도 건강하고 활기차게 삶을 꾸려가는 그녀의 모습은 그녀가 보여준 그녀의 사진들 - 쿠바 해변가에서 수영복을 입고 찍은 사진, 친구, 가족들과 활짝 웃고 있는 사진 등에서도 잘 드러나는 듯 했다.
현재 꽤나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는 젠은 남편과 신혼 생활 당시인 1960년대에는 해외여행이 그리 흔하지 않았다며 인근 대도시인 몬트리올로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긴 했지만 그 외에는 열심히 일하는 남편과 본인이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얻은 수익으로 돈을 모으며 절약하며 재산을 불렸다. 모든 재정은 본인이 관리하고, 첫 집을 샀을 때 받은 모기지를 갚기 위해선 이 정도 자금이 필요하고 한 달에 이 정도 필요하다고 계산을 마친 후, 은행에서도 빌려주기를 꺼려 했던 규모의 주택 담보 대출을 5년 안에 갚은 이야기는 정말 흥미진진했다.
남편과 첫 집을 살 당시 당시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은 집을 사려고 모기지를 두 곳에서 받아야 했는데, 두 번째 모기지는 받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당찬 성격의 젠은 내가 기필코 되게 만든다며 모기지 담당자를 설득했고, 그렇게 받은 모기지를 5년 안에 갚아낸다. 마치 현대그룹의 정주영이 생각나는 불굴의 의지!
세 자녀를 키우며 절약하며 모은 돈으로 건물도 사서 세를 내주고, 언니 또는 여동생이 살고 있는 플로리다에도 콘도를 사서 날씨가 혹독히 추워지는 겨울에는 플로리다에서 겨울을 내고 캐나다로 돌아온다고. 멋지고 부러운 노후 인생이다!
캐나다에서 지켜야 할 매너 및 에티켓이 있냐고 물으니 먼저 상대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면 그들도 그럴 것이라규. 유니버셜한 법칙. 내가 대우받고 싶은 데로 상대를 대하기.
"캐나다에 유명한 음식이 푸틴 그리고 메이플 시럽 이 정돈 거 같은데, 꼭 먹어야 할 음식이 있나요?
"캐나다는 다양한 곳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란다. 중국 요리부터 멕시코 요리, 프랑스 요리 등 다양한 세계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야. 그래서 정말 다양한 요리가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생선 요리를 좋아해서 흰살 생선을 자주 먹어. 브루스케타 (Bruschetta)도 맛있으니 먹어봐."
혹시라도 본인이 현재 사는 디트로이트에서 2시간 거리인 마을에 오게 되면 연락하라는 말에 인사치레인줄로만 알았는데, 폰을 달라고 하시더니 불러주는데로 이름과 주소, 이메일 주소를 입력하라고 하신다. 내년에 남부 프랑스로 크루즈 여행을 가는 게 계획인데, 계획대로 될지는 모른다고 하신다. 본인 나이에는 내일 어떻게 돼도 모른다구.
비교적 젊은 내 나이에도 그 말은 적용된다고 말하려다 말았다. 들으시면 코웃음치실 거 같아서.
여행을 하며 이렇게 현지인과 연락처를 교류할 정도로 깊게 대화를 나눈 건 정말 오랜만이다. 예전에 배낭여행할 때는 여행 중 만난 인연들과 수첩에 서로의 연락처를 적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엽서를 보내고 만나고 그랬었는데. 그래, 이 재미에 여행을 했었지.
비행기가 착륙하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데, 젠은 가장 마지막까지 기다렸다가 모두가 내리면 휠체어를 타야 한다고 먼저 인사를 했다. 그래서 다른 승객들이 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풀 죽은 표정을 지으시길래, 가장 늦게 내려도 일단 내리시면 짐을 끌고 걸어가는 승객들보다 가장 빨리 입국 심사장에 도착하실 거라고 말하니 빙긋 웃으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주신 말은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고 인생을 즐기렴."
토론토, 시작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