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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의 뜻하지 않은 장점들

낡아 가는 것들에도 때때로 소중한 지혜가 스며 있습니다.

by 꿈꾸는 아재

나는 천성적으로 게으른 사람이다.


직관적으로 짚히는 대표 성향 하나 꼽아 보라고 해도 그렇고, 이런저런 나의 장단점을 모조리 섞는다면 그 빛깔도 게으름의 색채일 것 같다. 게으름을 고쳐 보려고 나름 노력도 해 봤지만 잘 안 바뀐다. 결국 오십 중반에 와서는 '나의 게으름은 남들의 그것과는 결이 다르다'는 교묘한 논리로 나와 타협을 하였다.


근본은 게으른 사람인데 현실에서의 속도는 늘 1.5배속 2배속을 요구받는 느낌이었다.

직장만 하더라도 마감, 마감, 마감에 쫓기기 일쑤였고 늘 최신 트렌드를 쫓아 결과물을 신속히 내놔야 하는 일이 많았다. 게으른 내가 아랫 직원들에게 자주 하던 말도 '유능해지려면 자고로 부지런해야 한다'는 채근이었다. 그러다 보니, 마이바흐급 대형차에 모닝급 경차 엔진을 달고 달리는 것과 같은 버거움이 잦았다.


그런데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의 게으름에는 장단점이 쌍둥이처럼 함께 붙어 있음을 느낀다.


단점부터 먼저 떠 올려 본다.

일단, 잘 미룬다는 것이다. 그나마 설레고 기쁜 일들에는 속도감이 있는데, 하기 싫고 안 좋은 일에는 마냥 궁둥이가 무거워진다. 공과금 납부라든지 집 안의 고장 난 시설물 고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학교 다닐 때 등록금 납부도 대체로 납기에 몰려서 냈던 것 같다. 그런데 뒤로 미루는 것에는 나름의 까닭도 있다. 안 좋은 꼴을 최대한 뒤늦게 확인할 수 있다는 '시한부 안도감' 때문이다. 게으른 자들의 비루한 변명하긴 하지만.


두 번째는, 찾아온 기회를 잘 놓친다는 것이다. 예컨데 재테크나 자산증식 같은 것들이다. 연일 상종가를 치고 있는 주식을 보면서 늘 '아~ 그때 샀어야 했나?' 하고 입맛을 다신다. 그러면서도 사는 적은 없다. 남들 집값 다 오를 때 속으로는 부러워 죽는데도 입으로는 '편안한 거주로써 집의 가치는 충분하다'라고 떠벌인다.


사람관계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한테 내가 먼저 손을 내밀기만 했다면, 내가 먼저 고개 숙이기만 했다면 어쩌면 그 사람의 마음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미적거리다가 사람도 잃고 기회도 놓칠 때도 있었다. 부러질지언정 휘어지듯 굽히지는 않겠다는 알량한 자존심이 명분이었지만, 그런 것들조차 생각해 보니 일종의 게을음이 영향을 주었다.


어쨌거나, 게으름의 댓가는 비싼 수업료와 이자율이 뒤따른다는 것이 최대 단점이긴 하다.


게으름의 단점은 이 정도로 언급하고

앞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매우 자기중심적 사고로 '나의 게으름은 남들의 그것과는 결이 다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게을음의 장점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을 해 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게으름으로 인한 장점보다는 단점이 훨씬 많은 건 사실이다. 그 점만큼은 쿨하게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으름으로 인해 파생되는 장점들을 내 삶의 가치처럼 부여잡을 때가 있다. 게으름의 직접적인 장점이라기보다는 2차 3차 방정식 수준의 장점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대표적으로는 한번 나와 인연이 생기면 사람이든 물건이든 오래간다. 충분히 버릴 수도 멀리할 수도 있었는데 (게을렀던 덕분에) 기회를 놓쳐서 오히려 귀해진 것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진득하고 진중하고 오래가는 사람'이라고 한다. 단점이 장점으로 덧칠된 것이긴 하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 그런 사람 아니라고 구태여 손사래를 치진 않았다. 그리고 '뭔가에 시선이 꽂히면 생각이 오래 머문다'는 것도 게으름으로 인해 파생된 장점이다.


고등학교 때 3년간 하숙을 했는데 한 친구랑 같은 방을 3년내내 같이 썼다. 대학 때 서울로 유학 와서는 고3 같은 반 친구와 학교 근처에 하숙집을 구했는데 결혼해서 나올 때까지 그 하숙집에서 같이 살았다. 군대 가기 전까지 살았던 그 하숙집에서 제대하고 다시 들어가서 살았는데 대학 졸업 후 결혼할 때까지도 일편단심으로 그 친구와 살았다. 게을러서 다른 하숙집 구해 볼 생각을 못한 바람에 그 친구와 긴 세월 우정이 굳어졌다.


가지고 있는 아파트도 오랫동안 꾸역꾸역 보유하고 있다. 비슷하게 출발했지만 재테크에 밝았던 지인들이 두세 번 둥지를 옮기면서 집값이 몇 억이 뛰었네 어쩌네 하는 동안 우리 아파트값은 내내 그 타령이다. 어떤 친구는 그게 바로 게으름의 보복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가장 힘들었던 시절 직장생활의 고단함을 그 집에서 둥지처럼 풀면서 살았고, 그 집 안에 꾸민 공부방에서 아이들이 시간을 많이 보내게 해서 사교육 없이도 아이들을 모두가 선망하는 대학에도 보냈다.


30년간 차를 한 번 바꾸었는데 지금 차는 16년째 22만 km를 몰고 있는 중이다. 큰 탈만 안 나면 5년은 충분히 갈 것 같다. 신혼 때 장만했던 전자레인지는 26년을 함께 하다가 재작년에 세상을 떠났다. 우리도 드디어 드럼 세탁기를 샀다면서 기뻐했던 그 세탁기는 여전히 18년째 함께 살고 있다. 절약정신이 투철해서가 절대 아니다. 무던히 게을러서 새로 나온 신상 호기심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의 게을음은 낡고 오래된 것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자연스럽게 옮겨져 왔던 것 같다.


게으름을 양분 삼아 쌓여 온 나의 일상은 직장살이에도 그대로 전이된 것 같다. 직장도 30년째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다. 스카우터들의 유혹도 몇 번 있었고 분노감에 욱해서 자발적 퇴사도 할 뻔한 적도 있었지만 번번이 이 게으름(?) 덕분에 주저앉았다.


사무실 내 전용 사물함에는 회사 다이어리가 20년 치 정도 보관되어 있다. 얼마 전에 옛날 다이어리를 들춰 본 적이 있다. 어느 해 어떤 날 회의시간 메모에는 "저 사람, 교통사고나 확 나버려라."라고 휘갈겨 있기도 했다. 힘든 사람 때문에 홧김에 적은 낙서였는데 지금 보니 피식 웃음이 난다. 게을러서 다이어리를 버리지 않은 덕분에 지금 큭큭거릴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게으름으로 인한 직장생활 속 장점은 또 있다.


하는 일의 특성상 나는 인사 재량권을 독립적으로 많이 가지고 있었던 편이다. 나와 함께 일하고 있는 아래 직원들 중 70% 이상은 10년 이상 같은 부서에서 일한 사람들이다. 아주 특별한 사유가 아니고서는 계속 함께 일하고 다른 곳으로 발령도 잘 안 낸다. 그들도 나도 서로가 찰떡궁합처럼 잘 맞아서가 아니다. 오래 같이 지내다 보면 단점도 많이 보이고 동료 간의 전우애도 시큰둥해질 수 있다. 역량도 태도도 천차만별이다. 일을 나이스하게 잘하는 직원도 있고 부족한 직원도 있다. 솔선수범하는 직원도 있고 무임승차 하는 직원도 있다. 일에 대한 평가나 보상도 늘 공평할 수도 없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에 대한 발끈함은 줄어든다.


각자의 위치에서 역량에서 또는 마음 가짐에서 언제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다. 뜨거운 여름처럼 일하기를 바랐으나 차가운 겨울처럼 얼어붙어 있는 직원을 보고 서운할 때도 솔직히 있었다. 그러나, 직장살이 사계절이 돌고 돌면 언젠가는 그 직원에게도 여름날은 오더라. 그것은 아랫 직원들이 상사인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였지 않을까 싶다. 나를 바라보던 선배들도 그러했을 테고... 그래서 요즘에는 일희일비하지 말자는 다짐을 더 많이 한다. 선배일수록 선한 게으름으로 기다려 줄 아는 끈기와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사람이 하는 일이라 생각에 따라서는 '빛'이 되기도 하고 '빚'이 되기도 하므로.


마뜩잖은 직원에게 벌컥 분노를 쏟아붓고 싶을 때가 생기더라도, (게으른 내가) 다른 일에 치여서 때를 놓치고 며칠이 지나버리면 그만 화가 누그러져 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발끈 감정은 누그러지고 객관적인 팩트와 피드백 사항이 속살 알맹이처럼 드러나기도 한다. 일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무엇을 살펴야 하는지 0.5배속으로 천천히 들여다본다. 관찰할 부분이 생기고 나름의 통찰이 나온다. 다른 사람들의 순발력과 신속함을 내 나름의《느림의 미학》으로 보완하는 것이다. 일상이든 일이든 부지런하게 안달낸다고 안 될 일이 모두 될 일로 바뀌지도 않는다. 앞만보고 달렸던 지난 세월 돌아보니 세상의 일은 그저 도도한 물결처럼 흘러왔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시간이 지나면 낡아 가는 것이 이치겠지만 그 속에서도 삶의 지혜는 여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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