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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때려 치고 싶은 날에는

때로는 함께 하고 있다는 희망 한 방울이 더 소중합니다.

by 꿈꾸는 아재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 회사 그만두겠습니다."


가슴에만 품고 다녔던 ‘사직’을 처음 입으로 뱉었던 어떤 날이 있었다.


배신감, 좌절감, 상실감이 홍수에 둑 무너지듯 터져 버렸다. 당시 내 맷집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왜 미련하게 견뎠냐고 동료들조차 혀를 내둘렀다.


사직서를 던지기 전 날, 형편없는 주량에 과음을 하고 거의 뜬 눈으로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술이 덜 깬 상태로 출근해서 부장님의 면전에 거칠게 ‘사직’을 내뱉고야 말았다. 그리고는 며칠간 휴가를 쓰겠다는 일방적 통보를 하고 나와 버렸다. 돌이켜 보면, 내 분노는 정당했지만 표현방식은 무례하고 무도했다.


바로 귀가하지 않고 사무실 근처 24시간 해장국 집으로 향했다. 국물 한 그릇에 소주 한 병을 시켜놓고 숙취 상태로 다시 소주를 연거푸 털어 넣었다. 곧바로 내 위치를 확인하는 팀장님의 전화가 왔다. 뛰어 오셨는지 금방 가게문을 열고 팀장님이 들어왔다. 팀장님도 앉자마자 소주 몇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아마도 내가 사고 칠까 봐 사표만큼은 막아 보라는 부장님의 특명을 받으신 듯 했다.


이후,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피 토하듯 분노를 쏟아내면서 마시고 또 마셨다. 그런데 몇 시간 동안 혀 꼬인 내 하소연을 들어주시던 팀장님의 마지막 말씀은 지금도 비교적 또렷하다.


“내가 너의 좌절감과 상처를 해결해 줄 수는 없다.

그럴 수 있는 능력도 지금의 나한테는 솔직히 없다.

그러니, 내가 너를 위해 힘써 보겠다고 약속도 못한다.

단지 내가 너한테 지금 약속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다. 지금 너의 분노와 상처를 다른 사람은 잊어도 나는 잊지 않겠다는 거다. 그러니 지금은 뭐라도 함께 찾아보자. 그만둔다는 그 마음은 잠시만 내려놓자.”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후부터 마음이 편안해졌다. 머리끝까지 차올랐던 분노가 마치 수면내시경 주사 한 방에 꺼져 내려앉아버리듯 스르르 녹아내렸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다음날 나는 사직서를 철회하고 (마음에는 없었으나) 부장님께 나의 경거망동을 사죄했다. 그리고, 그 이후 지금껏 나는 사직서를 마음에 품어 본 적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나 입 밖으로 꺼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실 그때 팀장님이 나에게 담보해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딱히 대응할 묘안을 준 것도 아니었고 해결해 준 것도 없었다. 그저 '지금 너의 상처를 오래도록 잊지 않겠다' '나는 네 편이다'라는 말 몇 마디가 전부였다. 배려로 포장된 위기모면용 희망고문이 아니라 투박한 솔직함이 내 마음을 붙잡았던 것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세월이 흘렀고 나는 어느 듯 회사에서 30년 차 선배가 되었다.


최근 어느 날 모 후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직언을 담은 너스레였다.


"부장님~ 얼마 전에 롯데백화점 가서 점심 사 주시고 석촌호수 걸으면서 어깨 한번 안 두드려 주셨으면 저 딴 회사로 튀었을지도 몰라요."

" 저 완전 사무실에서 육두품이잖아요. 성골 진골은 따로 있고... 제가 고생이 말이 아닌 건 아시죠? ㅎㅎㅎ"

"그래도 저 여기 좋고, 우리 동료들 너무 좋아하고, 여기서 계속 가 볼라구요"


나의 대답은 그 옛날 내 팀장님의 답변보다 옹색했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친구가 한 동안 정말 힘들었고 속앓이가 컸지만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을 구했음을... 그리고, 내가 한 역할이라고는 그저 믿어 준 것, 옆에 있어 준 것, 말 몇 마디 보태준 것이 고작이었다.


직장인에게 회사가 마음에 안 드는 걸 꼽으라면 꼽을 수가 없을 거다. 상사나 동료가 못 마땅한 이유도 한 손으로 꼽기 어려울 거다. 어느 회사든 블라인드는 집단 성토로 넘쳐 난다. 여기저기서 퇴사를 꿈꾼다.


낮은 성장 비전, 불합리한 업무 시스템, 불공정한 인사평가, 불공평한 업무분장, 불투명한 의사결정 구조, 저열한 괴롭힘 등등 이유를 들자면 밤을 새워도 모자란다. 그에 반해 날카로운 직언이나 개선 요구에는 답변도 궁색하고 해결책도 마땅찮은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일을 자주 겪는 상사는 그런 상황 자체를 맞닥뜨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다른 직원들로부터 그런 민란(?)의 조짐이 있다는 말을 전해 듣게 되면, 해결책을 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그 후배의 시선을 회피하거나 대화를 피하려 한다. 해결책이나 대안을 제시할 수 없다면 섣부르게 말을 섞지 말자는 심사다.


그러다가 어쩔 수 없이 마주하는 날이 오면 순간 위기모면하려고 맥락 없는 희망고문을 남발한다.


"미안하다. 다음번에는 너부터 먼저 꼭 챙겨줄게." (뭘 챙겨!! 몇 년을 챙긴다고 말만 해놓고선...)

"니 맘 이해한다. 힘들지?" (뭘 이해하는데... 이해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마세요!!!)

"이해해라. 회사가 다 그렇다는 거 알잖아!" (그런 회사 너나 가지세요!!!)

"니 입장 충분히 알겠는데 그렇다고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너님이나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그런데 긴 세월 직장생활을 해 오다 보니 이제 조금은 알겠다.

부하나 후배의 민원과 불만은 상당수 해결해 줄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많은 것들이 사람의 영역이 아니다.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일부 상사들은 그것을 해결해 줄 의지가 없고 그릇이 안되는 경우도 있다. 나도 그런 상사일 때가 많다. 심지어 오너조차 해결해 줄 수 없는 일들도 있다. 그 반대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소되는 것들도 있고 염려했던 상황이 아예 발생하지도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후배들도 안다. 애초부터 자신의 요구가 관철되기 쉽지 않다는 것을, 냉정한 정글 속에서 최소한 그대로의 나로서 인정받기 쉽지 않다는 것을... 많은 것들이 이번 생의 것들이 아님을...


그나마 '아무것도 아닌 그것' 정도라도 보여 줬더라면, 수많은 우리들이 그런 분노를 하지는 않았으리리라.


그저 진솔하게 얘기만 들어주기만 하더라도, 내 처지를 제대로 알아만 주더라도, 작은 공감과 지지만 한 번 해 줬더라도, 잘못했다고 인정만 했더라도, 그저 내 얘기 들어만 줬더라도....

쏟아놔서 후련해지는 그 마음이 어떤 때는 해결 이상의 카타르시스를 준다는 것을 많은 우리들이 잊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시어머니 며느리 시절 잊어버리듯이...


《선배가 되어 갈수록 기억해야 할 말들》을 다시 적어 본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내가 모르고 있어서 미안하다.”

"그 힘겨움을 나한테 먼저 알려줘서 고맙다."

“듣고 보니 내가 네 입장이었어도 그런 생각이 들었겠다.”

"너니까 그 정도로 견디고 있었구나."

“바로 해결은 못해 줄 것 같아서 정말 미안하다."

“나는 이것부터라도 먼저 해볼게. 너는 그것만 부탁한다."


한편,

생각해보니 회사나 사람은 달과 같아서 일년 365일 같지만은 않았다. 보름달 초승달처럼 차면 기울고 기울었다가 다시 차기도 한다. 좋았다가 싫어지고 또 좋아지기도 하고... 그래서, 회사에서 어떤 때는 내가 그 사람이기도 하고 그 사람이 나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견디기 힘든 직장의 하루도 살민 살아지더라. 흘러가면 사라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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