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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나는 말이야.

점점 꼰대가 되어 가는 것을 실감하기 전에 배워가야 할...

by 꿈꾸는 아재

얼마 전 어느 날이었다.


Ep. 1

경영진 보고서 준비로 마음이 분주한 날이었을 것이다. '백세시대, 시니어 세대 위험관리' 어쩌구 저쩌구 하는 내용으로 시작되는 보고서였다. 직접 만드는 보고서는 매번 예민해진다. 이 짬밥이면 익숙해질 만도 한데 잘 안된다. 분주히 보고서를 다듬고 있었던 그때, 밖에서 옥신각신 하고 있는 직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배) : "얌마~ FGI도 안 하고 요구분석 하면 어케!!"

* Focus Group Interview : 대규모 설문이나 진단 시에 계층별 대표 소수인원 집중 인터뷰)

"옛날에 나는 말이야. 무조건 몇 날 며칠 현장 다니면서 인터뷰 다 했어..."

(후배) : "지표분석 결과가 지난번과 거의 같아서 FGI 없어도 될 수준이라고 이미 말씀드렸는데요..."

(선배) : "그건 니 생각이지!! 아~ 씨! 너무 날로 먹으려고 하는 거 아냐?"


30대 후반 선배가 강한 라떼식으로 30대 초반 후배를 나무라고 있었다. 내 직속 부서원들의 업무 중 언쟁이라 개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몇 가지 피드백과 조정을 해줬다. "옛날에 나는 말이야."라고 후배를 다그쳤던 그 친구를 향해서는 말 대신 표정으로만 전했다. 알아서 새겼을 것이다. 눈치 빠른 친구니까.


'○○과장아! '옛날에 나는 말이야!'라고 했니? 근데, 너 태어났을 때 나는 이미 고등학생이었어!'

티 안 내려고 무던히 애쓰면서 타임캡슐에 봉인해 뒀던 나의 라떼 시절도 마음에서 해제되었다.


Ep. 2

90년대 중반 입사 후 사원시절 내 업무는 본사 기획업무였다. 야근이 일상이었고 하루살이처럼 일했었다. 부장님이나 팀장님이 야근 위문 공연을 핑계로 출몰하는 경우도 많았다. 어디서 이미 1차를 끝내고 오신 건지 거나하게 취해서는... 죽어라 야근을 달렸는데 그런 날은 술도 함께 달려야 했다. 그러다가 대리 1년 차 이른 나이에 영업직무로 발령이 났다. 당시 후선 부서 직원의 현장 영업직군 발령은 학도병 강제 차출 당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영업 지상주의였던 부장님은 '회사에서 빨리 크려면 영업 경험 얼른 하고 와라.' 라시며 새싹처럼 야들야들한 나를 영업전선으로 내몰았다. 지레 겁에 질렸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내가 만난 영업은 완전히 신세계였다.

그 시절의 영업은 원칙과 기준에 의한 질서보다 인간적인 무질서에 의해 주도되고 있었다. 영업에서 잔뼈가 굵은 선배들은 허허벌판에 깃발 하나 꽂고 맨땅에 헤딩하듯이 아노미 상태의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있었다.


월 마감을 끝내는 날이면 단골 술집에 자주 뭉쳤다. 훌륭한 선배들 노하우 배우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때의 선배들은 하늘이었고 하나같이 어른스러웠다. 금연 인식은 눈곱만큼도 없던 시절이었다. 매캐한 담배연기 가득한 술집 안에서 입에 25도 각도로 담배 하나씩 꼬나물고 선배들은 무용담과 조언을 넘나들었다. 거침없이 쏟아 놓는 선배들의 노하우는 인간계의 것이 아닌 신공이었다. 화장실 가서 토하고 와서도 들었다.


"야~ 내가 좀 살아보니 말이야. 인생도 영업이야!" "그거 내가 다~해봤어. 힘 빼지 마! 그건 제갈량 할배가 해도 못해!" "영업은 숫자만 믿어! 너 자신도 믿지 마!" "인간은 원래 존재 자체가 고통이야. 그런 인간 걍 무시해!"


영업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이치와 섭리도 꿰뚫고 있는 듯했다. 영업세계에서 체화한 선배들의 삶이 곧 제갈량이었고 니체였고 칸트였다. 어서 나도 빨리 자라서 저런 영업인이 돼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돌아보니, 인생 다 산 것처럼 허세부렸던 그 선배들 나이가 꼴랑 서른 세넷 정도였다.

산전수전 공중전은 근처에도 못 가본 애송들이였다. 그냥 애들이었다. 지금 누가 나를 그리 보는 것처럼.


Ep. 3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님이신 김형석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던 적이 있다.

베셀 《100년을 살아보니》를 집필하시고 난 직후에 하셨던 특강에서였다. 1920년생, 만 105세 이시다.

생각해 보니 공교롭게도 나는 거의 10년에 한 번 꼴로 교수님을 특강에서 뵈었던 것 같다.


그날은 80세의 고령에도 현직 활동을 하시는 지인분과 함께 교수님의 특강을 듣게 되었다. 그분이 워낙 배움에 열정적이신지라 맨 앞자리 앉자고 나를 꼬드기셨다. 원래 나는 튀는 걸 부담스러워하는지라 교육받을 때 절대 맨 앞에 앉는 스타일이 아니다. 어른의 강권이라 어쩔 수 없이 맨 앞자리에 함께 했다.


교수님의 90분 특강 내내 팔순의 수강생은 정말 열심히 필기를 하셨다. 이 세상 가장 보배로운 지식과 지혜를 만난 것처럼 눈 반짝이시며 깨알같이 적고 또 적으셨다. 속으로 '아~ 팔순의 내공은 단지 가슴으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배움을 적는 손목의 힘에서도 쌓이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순간 했었다. 교수님께서는 강의를 하시는 동안, 팔순의 노인이 맨 앞자리에서 열심히 필기하는 수강생을 신기한 듯 힐끔힐끔 보셨다.


강의가 끝나고 백세의 교수님이 오셔서 질문하셨다.

"강의 열심히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필기도 정말 열심히 하시는 것 같은데 실례지만 올해 나이가 몇 이우?"

그러자, 팔순의 수강생은 초딩생이 교장쌤앞에 선 것처럼 수줍어하시면서 답하셨다.

"저 팔십 밖에 안됐습니다. 한참 어립니다. 교수님!!"

팔순의 수강생의 답변에 교수님의 말씀이 더 압권이었다. "한참 좋을 때군요. 참 푸르른 때입니다 ㅎㅎㅎ"


세월이 흘렀는데도 교수님은 여전히 건강하시고 강연 활동도 하신다. 최근에는 《사랑이 있는 교육이 인생과 사회를 바꾼다》 신간도 집필하셨다. '100년의 지혜'를 통해 부모와 교사에게 자녀 행복교육에 '사랑'을 담는 방법을 말씀하고 계시다. 교수님의 글을 읽고 강의를 듣다 보면, 건방지게도 교수님과 생각을 달리하는 부분이 일부 있기도 하지만 그분은 분명 이 세상의 큰 어른이시다.


그리고, 팔순의 연세에도 눈과 귀를 열어 필기하시던 그 분이 직장생활 시작하실 때, 난 태어나지도 않았더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

그러나 듣는다는 것, 안다는 것, 행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더라. 내 경우만 놓고 보더라도, 가슴에서 머리로 갔다가 발로 내려오는데 완행도 이런 완행이 없다. 직장생활의 병장 격이 되다 보니 안 보이는 것들도 더 보이게 되고 아쉬운 것들도 참 많아진다. 꼰대도 그렇다. 나이가 들어서 꼰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꼰대가 돼서 늙어버리는 거 아닐까. 잔치를 즐겨야 할 서른즘에, 생각이 갇혀서 이미 끝장난 젊은 꼰대도 참 많다 .

눈이 안 보이면 요즘 백내장 수술 한국이 최고다. 그런데 '깊어진 마음의 백내장'은 화타가 와도 못 고친다.


생은 어쩌면 ‘시간을 견뎌 마음의 새 순을 틔우는 기간’을 배우는 긴 수업인지도 모르겠다.
젊을 땐 세상을 바꾸려 안간힘을 쓰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세상보다 ‘나’를 바꿔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지.
그리고 나중에는, 굳이 바꾸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다. 젊음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왜?”라고 묻는 사람의 특권이고, 늙음은 주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그런 거야”라고 단정 짓는 사람의 결과라는 말도 많이 하더라. 그래서 어쩌면 나이는 몸이 늙는 순서가 아니라 마음이 굳어지는 순서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생물학적 나이야 가는 세월 어찌 막을 수 있을까만, 배움을 가까이하고 작은 감탄을 잃지 않지 않으면서 마음의 나이 들어감을 더 늦춰가고 싶어진다. 그러면서 생각해 본다.


'옛날에 나는 말이야.....음;; 음;;'

돌아보니, 나는 딱히 한 것이 없었다. 더 늦기 전에 지금부터라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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