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시선을 나에게 담는 것이 아니라 나를 그의 시선에 얹는 것
나는 김훈 작가의 산문집 《자전거 여행》을 참 좋아한다.
물론 '칼의 노래'가 단연 불멸의 역작이다. 힘줄 굵은 손으로 식자재를 단 칼에 군더더기 없이 총총 썰어 놓은 듯한 간결 시원함이 느껴지는 책이긴 하다. 그래도 <자전거 여행>이 내 마음에는 더 들어온다.
《자전거 여행》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한 작가가 밥벌이의 굴레를 벗어나 몸과 감각을 회복하고 자신만의 새로운 문체를 얻겠다는 선언과도 같은 산문집이다. 「풍륜」이라는 자전거를 타고 2년간 전국을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담백하게 담아 냈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부분은 '전국을 누비면서 직접 보고 느낀 것들'로부터 탄생한 기가 막힌 문장들이었다. 한 마디로 현장이 문장 속에 살아 있다. 마음에 꽂힌 문장들은 반복해서 계속 다시 들춰 읽었다. 그 문장들이 "제발 이제 날 그만 쳐다보라."라고 지겨워할 정도로.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본 길을 작가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길은 다만 밀고 나가는 그 순간에만 있을 뿐이다. 길에는 본래 주인이 없다.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주인이다.' 가 보지 않고는 쓰기 어려운 길의 묘사다.
낙화하는 동백꽃을 보고선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러운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 버린다."라고 했다. 여수 향일암의 동백꽃을 보면서 썼단다. 향일암 갔을 때, 정말 백제가 무너지는 느낌인지 눈으로 확인한답시고 내가 주접을 떨었던 적도 있다.
일에 관해서는 '프로란,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시켜서 하는 사람도 아니다. 남이 시켜서 하는 일을 자기가 하고 싶은 일로 만들어서 하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2년간 자전거로 여행하면서, 고뇌하고 고뇌한 끝에 도달한 '작가로서의 밥벌이'에 대한 정의였을 거다.
읽다 보면 '와~ 무심하고 건조한 일상의 것들에 어떻게 저런 은유를 입힐 수 있을까?'라는 놀라움도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현장에서 작가가 직접 캐낸 살아있는 문장들이라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일을 하다가 문득 '현장'이라는 말이 낯설어지거나 헛갈릴 때 다시 들추어 보곤 하는 산문집 《자전거 여행》이다.
직장생활을 해 오면서, 내가 그나마의 능력을 인정 받아온 것은 현장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애쓴 결과라고 믿고 있다. 30년 중에서 영업현장에 7년을 있었다. 사실 그리 긴 기간은 아니다. 그렇지만, 영업현장에서 체득한 것들을 지금까지 우려먹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평가할 때도 '현장지향주의자'라는 인식이 대체로 많다. 내게 '현장'이라는 개념에 대해 눈을 뜨게 해 준 인식의 최초 발원지가 있었다.
대학교 시절, 방학 때마다 <책 대여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등록금, 하숙비, 생활비를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과외해서 번 돈으로는 충당이 되지 않아서였다.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를 해봤지만 배달도서관이 제일 짭짤했다. '찹쌀떡 판매장수와 빌딩 구두닦이' 중간쯤 방식이었다. 책을 가득 넣은 가방을 메고 빌딩을 타면서 책을 대여하는 일이었다. 종로 일대가 내 구역이었다. 신설동 사무실 책 서고에서 전날 주문받은 책을 찾아서 가방에 담아 배달해 주고, 당일에는 반납과 대여 주문을 받아 오는 형태였다. 주로 유니폼 입은 직장 여성들이 책을 많이 읽었다. 남성들은 술 먹느라 바빠서인지 책을 잘 안 읽었다. 책읽기를 안 좋아하지만 내가 딱해 보여서 빌리는 사람도 있었다.
첫날에는 전담 트레이너가 직접 시범을 보이면서 코칭을 해줬다. 빌딩 타는 기술, 기존회원 관리와 신규회원 유치하는 방법도 알려줬다. 주문받은 책 외에도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예비해서 메고 다니는 게 좋다는 팁도 알려 줬다. 그런데 단순했다. 가져다주고 걷어 오고, 기술이라 할 것도 없었다. 그러니, 극소수 회원이 아니면 대부분 무관심하거나 문전박대했다. 코칭받은 대로 처음에는 최대한 많은 책을 메고 낑낑대며 빌딩을 탔다. 그런데 부작용이 훨씬 컸다. 일단 가방이 너무 무거워서 빌딩 한 개만 타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땀이 범벅이 돼서 온몸에 쉰 내도 많이 났다. 거의 '한 푼 줍쇼!' 느낌이었고 길을 걷는 것도 천근만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의 VIP고객급 수준으로 책을 많이 읽었던 젊은 여성 회원이 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다. '나한테 관심 있나?' 약간 심쿵해서 약속시간에 그 고객의 사무실 옆 식당으로 갔다. 식사가 끝난 다음 그 분이 조심스럽게 꺼낸 말이 나에게 망치가 되었다. "친누나의 조언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줘요! 착하게 열심히 사시는 분이신 것 같은데, 이런 일 하지 말고 검정고시 봐서 대학 가시는 게 어때요?'라고 했다. 내 몰골이나 일 방식이 야반도주해서 상경한 시골청년 같아 보인 측은지심이었나? 얼굴이 화끈거렸다. '저 이래뵈도 괜찮은 대학교 다니는 학생이거든요.'라는 말은 입 안에서만 맴돌았다. 그 사람이 본 나의 모습이 진짜 나일 수 있으니까.
고민과 연구 끝에 방법을 확 바꿨다. 사무실 책 서고에서 책 목록을 싹 확인했다. 내 발품과 눈으로 확인했던 종로 일대의 가망고객들에게 가장 소구 할 수 있는 책을 장르별로 북리스트에 나열, 분류, 배열했다. 인기가 있을 만한 책별로 핵심요약과 서평을 담은 홍보전단지를 만들었다. 일명, <종로 일대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읽는 에세이 Top 50, 3분에 맛보기> 식이었다. 친분을 쌓았던 학교 앞 복사집 사장님께 부탁해서 제본을 했다. 책을 잘 소개할 수 있는 나만의 화법집도 만들어서 배달 나가기 전에 혼자 롤플레이 연습도 했다. 가방은 주문받은 책만으로 최대한 가볍게, 옷은 최고로 단정하게 확 변신했다. 그 결과, 그 일을 그만둘 때 내가 회원도 가장 많았고 인센티브도 압도적으로 많았다. 한 달 수입이 과외비 수입의 두 배가 넘었다.
지금처럼 서점이 활성화되지도 않았던 시절이다. 파워포인트나 엑셀도 없었고 인터넷도 없던 시절 치고는 꽤 획기적 방식이었다는 생각이다. 요즘 말로, 고객맞춤형 마케팅 또는 현장 니즈 중심 영업이었다.
내가 눈으로 직접 확인한 시장, 가망고객, 니즈를 담았던 것이다. 시대는 달라져도 본질은 같다고 믿는다.
직장인들이라면 가장 자주 쓰는 말,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가 '현장에 답이 있다.'라는 말이다. 기획이 공허로 흐르거나 매출이나 조직확대에 어려움이 생기면 약방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말이다. 비단 회사생활뿐만이 아니다. 개인적 삶의 통찰도 현장을 자주 강조한다. '삶의 체험 현장'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그러나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 현장에서 정작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얼마 전에 밑에 직원 두 명한테 똑같은 주제를 주고 현장 조사를 내보냈다.
주제는 같지만 각자 따로 지역을 선정해서 개별미션을 줬다. 그런데 다녀와서 리포팅한 두 직원의 보고서는 완전히 달랐다. 마치, 아프리카에 신발 시장조사 나간 두 세일즈맨이 타당성 보고를 상반되게 말한 것처럼.
핵심적으로 일단 현장을 바라보는 '개념'과 '시선'의 출발부터가 두 직원이 달랐다. 브레인스토밍을 통해서 개념의 출발부터 함께 다시 리뷰했다. 내가 즐겨 쓰는 용어인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를 얘기했다. 즉,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현장조사가 '누구를 위한 현장조사', '무엇을 담아내는 현장'이어야 하는가였다. 결론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장의 그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 '현장을 나의 생각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를 현장의 시선에 얹는 것' 임을 잊지 말라는 당부였다.
현장에 답이 있으려면 내 생각의 출발부터 달라야 한다. '나의 발품을 팔아, 그들의 시선을 찾아내고 그들의 시선에 나를 얹어, 우리의 길을 찾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가고자 하는 현장의 출발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어쩌면, 나의 시선으로 보느냐 그들의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현장에 답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또, 아직 내가 글쓰기는 초보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그 무언가를 나의 글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무언가에 다가가서 그 무언가의 글이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