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은 늘 서로 함께 간다.
나는 최근 몇 달간 매우 심란한 시절을 거치고 있다.
(글과 별개로, 브런치에서 만난 참 좋은 글들이 예상 못한 힘을 준 부분에 감사함을 먼저 전한다.)
복잡한 상황에서, 나를 완전히 상반되게 평가하는 말을 엊그제 두 사람으로부터 들었다.
"솔직히 많이 서운하다. 일하는 스타일이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너 많이 변했어. 실망스럽다."
30년 된 입사 동기의 말이었다. 최근 그 동기의 업무 협조 요청을 내가 거절한 후 듣게 된 말이었다.
그런데, 나의 업무스타일을 누구보다 잘 아는 동기가 '네가 변했다'라고 말한 것이라 가볍게 들리지는 않았다.
" 일하시는 스타일이 정말 변함이 없으세요. 늘 저희를 위해 주셔서 직접 찾아뵙고 감사 인사 드리고 싶어요."
영업직군 어느 현장 매니저 분의 말이었다. 내 소속 본부가 공중분해된다는 말을 듣고 평택에서 위로 겸 오신 거였다. 내가 권고사직 당할까 봐 위로를 더한 말이겠지만 '변함이 없다.'는 말도 진심으로 믿고 싶었다.
한 사람은 내 업무 스타일이 많이 변했다고 하고, 또 한 사람은 변함없이 한결같다고 하고...
같은 날 그들의 말을 듣고 난 후 생각해 보았다.
'나는 변한 게 맞나? 안 변한 게 맞나? 변했다면 뭐가 변했다는 것이며, 안 변했다면 무엇을 변치 않고 지켰다는 말인가? 변하지 않고 지켜야 할 것은 또 무엇인가?' 어수선한 시기라 생각정리가 잘 안됐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 한 번은 숨이 멎을 때, 또 한 번은 변화를 멈출 때.” — 알랭 드 보통
"절대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중심이다.” — 공자
내가 대학교 다닐 때 전설의 교양과목이 있었다.
<현대음악의 이해>라는 과목이었다. 매번 수강신청이 조기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수강 인원이 많아서 대강당을 강의장으로 썼을 정도였다. NL(National liberation)과 PD(People's Democracy)로 양분되던 학생운동의 캠퍼스 문화 잔재가 남아있던 시절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열풍이었다.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명확했다. '항상 시험문제가 똑같다는 것' 'A학점 못 받으면 바보라는 것'
중간고사는 리포트로 대체하고 기말고사만 시험을 봤다. 그리고 기말고사 시험문제가 매년 똑같았다.
'음악이란 무엇인가?'
시험주제는 항상 똑같이 '음악이란 무엇인가?'였다. 매년 시험문제도 변함없이 똑같고 학점도 퍼주다 보니 수강신청이 폭주할 수밖에 없었던 거였다. 저학년들의 학사경고가 많았던 시절이라 1~2학년생들이 많이 수강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등록금이며 생활비를 알바로 해결하고 있던 가난한 시골출신 학생이었다. 그 영향으로 그즈음 나는 허세 절었던 프롤레타리아이기도 했다. 그래서 '저딴 과목의 시험지에 내 고상한 필체를 헌납하지 않으리라'라고 호기롭게 다짐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군대를 제대하고 그 생각이 바뀌었다.
목표했던 진로분야에 평균학점이 부족해서였다. 곧바로 생각이 얍삽하게 달라져서 복학 후에 그 과목을 수강했다. 변심이 아니라 전략적 선택이라고 나를 세뇌했다. 그런데 어느 시절에도 나 같은 꼰대 학생은 있었다. 어떤 수강생이 항의를 했던 모양이다. 과목의 퀄리티와 변별력을 위해서 시험문제를 좀 다르게 출제해 달라고...
그런데 그 건의가 받아들여졌다. 수년간 똑같이 출제되었던 시험문제 주제가 드디어 달라졌다. 어떻게????
'도대체 음악이란 무엇인가?'
'도대체 음악이란 무엇인가?'로 달라진 시험주제의 기말고사가 끝난 한참 후였다. 친구와 캠퍼스를 걷다가, 벤치에 앉아 자판기 커피를 드시던 교수님과 마주쳤다. 궁금증이 많았던 시절이라 지나치지 못하고 기어이 질문을 드렸다. "교수님 과목 수강했던 학생인데요. 매년 시험문제를 똑같이 출제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이런저런 대화를 한참 나눴는데, 내 질문과 관련된 그분의 대답 핵심은 이랬다.
"현대음악은 정말 많이 변해왔고 그 장르도 범위도 다양하다. 그 변화를 전공자도 아닌 교양 신청학생들이 이해할 수도 이해할 필요도 없다. 그저, 수업시간에는 그 변화를 오감으로 재미있게 느낄 수 있으면 된다. 그리고 시험 때는 수업내용을 토대로, (전문적으로 정리된 시험족보가 아니라) 비전공자인 자신의 생각과 필체로 써 보는 정도로 충분하다. 음악의 변화는 즐겁게 이해하고, 대신 시험문제는 변함없는 것. 그 정도가 목표다."
변증법상의 변화만 생각해 봤을 뿐, 시험문제의 불변에 관해서는 도무지 이해를 못 했던 시절이었다. 그 교수님이 이천 년대 초반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지금도 가끔 그때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대학교 때 독수리 5형제로 남들이 부러워했던 친구들이 있었다. 25년 만에 지난주에 완전체로 다시 만났다.
이 친구들 중에는 25년 전에 미국으로 유학 갔다가 귀국하지 않고 미국에 사는 친구도 있다. 그리고 13년 전에 캐나다로 이민을 간 친구도 있다. 나머지 셋은 서울에 살고 있다. 미국 친구는 40년 지기다. 고등학교 동기인데 서울 올라와서 8년간 같은 하숙집 룸메였다. 서로 군대 갔다 오는 동안 룸메를 바꾸지 않고 기다렸다가 내가 결혼하기 전날까지 같이 살았던 친구였다. 내 영혼의 단짝 친구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나의 원픽 베프 자리에서 늘 밀렸는데도 서운해하지 않던 그런 친구였다. 몇 년에 한 번 들어오는 귀국시기가 서로 엇갈려서 다 같이 모인 적이 없었다. 더 늙기 전에 완전체로 꼭 만나자고 해서 이번에 극적으로 만났다. 내 상황을 예상치 못했지만, 조직이 해체되어 내 운명이 불투명한 시점에 친구들에게 심란함이 티 날까 봐 걱정이긴 했다.
어쨌든, 스무 살 독수리 5형제가 서른까지 완전체였다가 오십 대 중반이 되서야 희끗 중년으로 다시 뭉쳤다.
25년 만의 완전체는 어떤 모습일까?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나갔다. 그렇게 만난 25년 만의 첫 모습, 기쁨은 상상 이상이었다. 결론적으로 이번 25년 만의 모습들은 25년 후에도 이대로의 기억일 것 같다.
학창 시절, 서로가 어떤 색깔의 옷을 입고 어느 포장마차에서 술잔 기울이면서 어떤 인생계획을 꿈꿨었던지, 서로의 말투며 대화내용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우리는 완전히 변해 있었지만, 동시에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백만 년 만에 노래방에 가서 그 시절의 표정을 짓고 춤을 추면서 그 시절의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나이도, 얼굴도, 몸도, 건강도 변했다. 환경도 직업도 사회적 위치도 모두 다 변했다. 그런데, 눈빛만은 변하지 않았고 서로를 품는 기억과 태도가 변하지 않았다. 세상을 대하고 마주하는 시선과 따뜻함도 그대로였다. 더 좋았던 것은 그런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는 변함없는 내 생각이 좋았다. 그래서 눈물 나게 기뻤다.
세상은 변한다. 사람도 모두 변한다. 변화는 배신이 아니라 자연이다.
천년을 변하지 않을 남산 위에 저 푸른 소나무도 나이테도 변하고 뿌리도 변한다. 사람이 변한다는 건 결국 '같은 존재가 다른 껍질을 입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변화는 성장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변질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어쩌면 중요한 건 '얼마나 변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지키며 변했는가'가 아닐까?
결국, 우리가 변하지 않고 붙잡아야 하는 것은 '자신의 본질'과 '사람을 마주하는 태도'라고 믿는다. 그래서 삶의 지혜란, 변해야 할 때를 알고 지켜야 할 때를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되 본질의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진짜 어른의 품격이고 내가 지켜내야 할 삶의 태도라고 믿는다.
그런 이유로, 나는 지금 맞닥뜨린 이 심란한 상황을 막연히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마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