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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꽃

먼저 알아봐 주고 다가와 주는 사람이 꽃처럼 좋다.

by 꿈꾸는 아재

어린 시절 나는 꽃을 무척 좋아했던 머슴애였다.


요즘 꽃들은 피움을 당하고 떨굼도 당하는 재배종이 참 많다. 빛깔조차 제 힘으로 택하지 못하는 형형색색의 개량종도 많다. 그렇지만, 어릴 적 내가 좋아했던 꽃은 제 힘으로 피어 나고 스스로 지는 꽃들이었다.


도시학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내가 다니던 시골 국민학교에서는 꽃씨를 자주 나눠줬다. 그 시절 나는 워낙 꽃을 좋아했던 지라, 나눠 주는 꽃씨 외에도 계절별 꽃씨를 다 챙겨올 정도였다.


받아온 꽃씨로 집 울타리를 빙 둘러서 수선화, 제비꽃, 봉선화, 접시꽃, 국화꽃, 맨드라미 온갖 꽃을 심었다.

정확한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꽃들에게 저마다의 이름을 붙여 주었다. 이를테면 이쁜이, 갸름이, 오뚝이, 쑥쑥이 그런 식이었다. 사내자식이 계집애처럼 논다고 아버지와 형한테 핀잔을 들었던 적도 있었다.


꽃 중에서 하얀 가을 국화꽃이 나는 그렇게 좋았다.

늦가을, 장독대 옆 울타리에 서리 맞고도 꿋꿋하게 피어있는 국화꽃이 특히 좋았다. 굴하지 않는 늠름함에 끌렸다. 학교 마치고 돌아오면,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소년용 지게로 산에 나무를 해 온 후에 장독대 옆에 앉곤 했다. 비스듬히 내리쬐는 오후 햇살 품은 하얀 국화꽃은 정말 빛이 났다. 국화꽃 바라보며 장독대 바닥에 앉아 책을 자주 읽었다. 책을 읽다가 국화꽃을 향해 "늠름아! 이 詩 멋지지?"라고 물어보면서 아는 척을 해주곤 했다. 내 방 앉은뱅이책상 위에 국화꽃병을 늘 만들어 올려놨던 기억도 난다. 온 방 가득한 국화꽃향 맡으면서 늦은 밤 라디오 프로인 <별이 빛나는 밤에>도 자주 들었다. 국화꽃 향에 많이 취한 날에는 카셋테잎에 녹음한 음악도 더 들었다.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같은 곡들이었다. 그럴 땐 내가 근사한 애어른처럼 느껴졌는데, 그렇게 느끼고 있는 내가 진짜 근사해서 밤을 꼴딱 새 버리기도 했다.


길을 걷다가 만나는 꽃들도 아는 척을 많이 했다. 벼가 누렇게 익어 가는 가을이 되면 지천에 코스모스였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신작로에는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도열해 있었다. 걸어가면서 하이파이브하듯이 코스모스를 쓸고 갈 때 느껴지는 손바닥 감촉이 참 좋았다. 아는 척 해주는 나를 코스모스들도 반겨 주었다.


그런데, 꽃이라고 다 같은 꽃은 아니었다. 한껏 멋 부리면서 핀 꽃, 알아주든 말든 고고하게 핀 꽃, 아무도 기억 못 하는 들꽃 등 저마다의 꽃으로 피어 있었다. 그렇지만, 피지 말아야 할 꽃은 없었다. 눈길을 받지 못하는 꽃은 있었지만, 이름 없는 들꽃도 자기를 이뻐하는 사람은 반겼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다양한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닜다.

그런데 만나는 사람들이 꽃처럼 저마다 달랐다. 제 멋에 사는 사람, 그 자체로 결이 좋은 사람, 남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 함께 어우러질 때 더 빛나는 사람, 이름 없이 왔다가 저무는 사람 등등... 그렇지만, 그 누구도 있을 필요가 없는 사람은 없었다. 꽃 필 가치가 없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그런데, 저마다 다 달랐던 그 사람들에게도 하나의 공통점은 분명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나도 그랬다.

'나를 먼저 알아봐 주고 불러주는 상대방을 누구나 좋아한다'

나는 부끄럼 많은 내향인이어서 사람을 품는 재주는 부족한 사람이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생존(?)을 위해 나름대로 터득한 개똥철학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일명 <사람꽃> 만들기다. 사람도 꽃과 같아서 나를 먼저 알아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나를 기억해 주는 것' '보통명사가 아니라 특별명사나 고유명사로 나를 불러주는 것'은 생각보다 사람의 마음을 부풀게 만든다. 그릇부터 먼저 그렇게 빚으면 진심을 담아내기도 더 편리하다.


몇 년간 사내 전임강사를 한 적이 있는데 나름 인기강사였다. 교육생 이름 불러주기로 효과를 봤다. 교육신청이 완료되면 인사포탈에 있는 교육생들의 사진과 인적사항으로 만든 명단을 교육 전날까지는 항상 외워 두었다. 인원이 많을 때는 외우기 힘들었지만 활용 효과는 엄청 컸다. 교육 중에 "거기 노란 원피스 입은 여성분 답변해 보실래요?" 보다는 "○○에서 오신 ◇◇님 답변해 보실래요?"라고 질문하는 방식이다. 그러면, 대부분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우와~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그때부터 강사를 대하는 친밀도가 달라진다. 나에 대한 입소문도 달라진다. 모르는 교육생 이름 불러줬을 뿐인데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부서원들을 부를 때도 이름 앞에 긍정어를 붙여 부르는 것도 효과가 있다. "미소천사 ○과장이 그 후배 좀 챙겨줄래?" "척척박사 ◇차장이 이번 콘텐츠개발 PM 맡아줘!" 로 말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자기 충족적 예언의 일종인 <피그말리온 효과>와, '좋은 나'와 '나쁜 행동'의 불일치를 못 견뎌하는 <인지부조화> 이론을 현실판에서 나름대로 활용했던 예시다. 자신에게 주어진 좋은 이미지를 자폭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부서 직원들의 배우자와 자녀 이름도 다 외웠다. 부서 직원이 가장 많을 때는 사십 명이 넘을 때도 있었다.

효과는 이렇게 달라진다. "김 차장 큰 아들 이번 주 수능시험 잘 칠 거야!" 보다는 "큰 아들 승건이 이번 주 수능 대박 나도 기도할게!"라는 내 말이 상대방의 마음을 더 녹인다. 보통명사 대신 고유명사를 쓴 효과다.


외부업체 사람들과 미팅을 할 때도 활용할 면이 있다. 미팅을 마치고 상대방이 나가는 즉시, 받은 명함에 있는 상대방의 핸폰 번호를 입력한다. 그리고 십분 이내로 거의 예외 없이 상대방에게 먼저 문자를 남긴다.

"오늘 귀한 인연이 되어 기쁩니다. ○○○라고 말씀하신 부분은 너무나 큰 배움이었습니다." 식의 문자다. 그 사람이 주차장을 나서기 전에 내 문자를 보게 함으로써 첫인상의 초두효과를 극대화하는 거다. 또한 인상 깊었던 대화내용 언급으로, 미팅내용 전체를 보통명사에서 특별명사로 격상시켜 주는 효과도 있었다.


<사람꽃>을 만들어주는 나만의 루틴은, 내향형인 나에게는 꽤나 유용한 인간관계의 윤활유가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꽃 - 김춘수]
나 하나 물들어 나 하나 물들어 / 산이 달라지겠냐고 / 말하지 말아라 말하지 말아라 /
내가 꽃 피고 너도 꽃 피면 / 온 세상 꽃밭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꽃 피어 - 조동화]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계절을 품은 꽃이다.

어떤 이는 봄의 벚꽃처럼 화려하게 피어나고, 어떤 이는 서리 맞은 국화처럼 늦게야 꽃을 피우고 향을 낸다. 그러나 피어 있는 시간의 때와 길고 짧음이 그 가치를 정하지는 않는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도 있지만, 꽃을 바라봐 주고 알아주는 사람의 눈길 덕분에 더 빛나서 그렇기도 하다.


사람 꽃도 얼추 그렇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정원에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씨앗들이다.

동시에 누군가를 꽃피울 수 있는 정원사이기도 하다. 사람꽃을 피우게 하는 일은 거창하지 않다. 잠시 멈춰 그 사람의 온도를 느껴주는 누군가의 시선, 한마디의 이름 불림, 진심 어린 인사 한 마디가 누군가를 피어나게 한다. 그 단순한 순간들이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을 다시 빛나게 한다. 결국, 세상은 ‘사람꽃밭’이다. 나의 말 한 마디, 눈빛 하나가 씨앗이 되어 누군가의 마음에 싹을 틔운다. 꽃을 보듯 그 사람을 마주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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